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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Sep 27. 2015

#공중 목욕탕

그땐  목욕탕이 싫었다

추석을 며칠 앞둔 날

그때 동네의 목욕탕은 아마 일 년치의 식량을 벌었으리라.

열다섯 개의 동네가 뚜렷이 구분되진 않지만 차도를 중심으로 끊어질 듯 이어져 있던 행정구역상 하나의 동(洞)이었다. 크게는 상리. 중리. 하리로 구분되던 그곳에 목욕탕이 딱 하나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목욕탕을 자주 가지 않았다.

겨울에도 갈색 대야에 뜨거운 물을 붓고 집 마당에서 아이들을 씻기던 엄마들을 자주 볼 수 있었던 때였다.

하물며 여름이랴.

그래서 목욕탕은 명절을 위해 일 년에 두 번 가는 곳이었다. 추석하고 설날. 그 욕탕도 우리가 살던 상리에서 네  정거장쯤 멀리 떨어져 있어서 온 식구가 바구니에 수건과 비누같은 것들을 잔뜩 넣고, 걸어서 가든 버스를 타든 작심하고 떠나는 곳이었다.

 

욕탕 입구 옆 큰 개천에서는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찼으려니 하는 예감은 적중해서

 탈의실의 보관함은 다 찼고 여분의 파란 소쿠리도 거의 남지 않은 상황.  벌써 욕탕 안으로 통하는 문에 서린 허연 증기. 그 속에서 바글대는 사람들의 목소리들.

 추석 전날의 욕탕 안은  생지옥이었다.

 욕탕 문을 열면 먼저 뜨거운 기운에 숨이 턱 막혔고 허연 증기 안에서 사람들의 형체도 분간이 안되었다. 탈의실에서는 아득하게 들리던 사람들의 소리가 와글바글 끓었다.

그래서 같이 간 사람들은 저들끼리 고함을 질러야만 소통할 수 있었다.

  스무 명이나 앉아 있을 만한 작은 욕탕 안에 온 동네 어른들과 아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서 앉을자리도 없고 자욱한 안갯속에서 누군가가 욕탕에서 나가야만  겨우 앉을자리 하나를 마련할 수 있었다.

 엄마들의 무자비한 때수건에 몸을 맡긴 아이들의 끊이지 않는 울음소리와 그런 아이들에게 악다구니를 치는 엄마들의 소리와 욕탕이 무슨 수영장이나 되듯 물장구를 쳐대는 아이.  그런 아이들을 꾸짖는 어른들로 귀가 먹먹 해지곤 했다.

 힘들게 자리를 잡고 앉으면 몇 달간 묵은 껍질을 불려야 하기에 욕탕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야말로 욕조 안도 만원이다. 수제비처럼 담긴 사람들의 몸은 다들 뻘건 고추 빛이 되어서도 나올 줄을 모르고 욕조안은 인간들이 밀어낸 지렁이 같은 것들이 둥둥 떠다녔다.

그것은 당시 초록색 이태리타월의 위대한 업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 때밀이 타월이야 말로 길게 또는 짧게 피부에 상처를 내지 않고도 묵은 각질을 둘둘 말아서 제거해주는 위대한 신제품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엄마들은 그 타월을 지나치게 신뢰하였다. 아이들의 여린 피부에도 사정이 없었으니까.

아무튼

 그 불려진 긴 껍질들은 엄마들에 의해 수시로 욕조 밖으로 두둥실 밀려났다.  주둥이가 큰 수도꼭지의 물을 최대한 시원하게 틀고서 그 불린 것들이 물에 용해되기 전에 밖으로 떠내려 보내기를 여러 번.

그래도 물 빛깔은 여전히 뿌옇게 흐렸다.


사람들은 설날까지 적어도 6개월치를 밀어내야 했기에 서너 시간은 되어야 그 껍질 벗기기가 종료되었다. 특히 서넛이나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온 엄마들은 아이들을 먼저 씻기느라 정신없이 때밀이 수건으로 팔 운동을 하고 몸을 헹굴 때도 바가지에 물을 퍼서 머리 위에서부터 쏟아붓곤 했다. 아이들은 놀래서 방방 뛰고.. 그렇게 울며불며 지옥탕에서 나온 아이들의 얼굴을 터질 듯 빨갛게 익어 있었다.


욕탕 문을 열고 나올 때의 그 피부 바깥에서  밀려드는 시원함은 살아있다는 육신의 기쁨이기도 했다.

그 악다구니 속에서 무사히 살아 나온 아이들은 새로 산 깨끗한 속옷으로 갈아입으며 이제 맞이할 명절의 꿈으로 부풀어서 방금 전 욕탕 안에서의 숨 막혔던 고통쯤은 곧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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