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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Sep 05. 2018

#냄비밥의 반격

   아침 일찍 일어나 쌀을 씻어 물에 불려둔다. 며칠 전에 세 번 삶은 보리를 꺼내 불린 쌀과 섞어 밥을 짓는다. 하루의 밥이다. 이십 분 만에 완성된 밥. 고슬고슬한 식감이 간장에 슥삭 비벼도 맛나다.

여기에 시래기 된장국이나 된장찌개. 열무김치가 있다면 반 그릇은 더 먹어야 된다. 몇 숟가락 안 떴는데 

밥그릇은 이미 빈그릇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집 밥상은 반반으로 갈린다. 고기 밥상과 채소 밥상. 딸은 고기를 좋아하고 채소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얀 연기가 피어나는 밥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왜 나는 아침마다 귀찮은 일거리를 만들었는가' 하고 생각하기보다는 ' 왜 이렇게 맛난 밥맛을 잃고 살았던가'하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먼 옛날.

그때는 1970년대였다.

동네마다 전기 보온밥통이 유행이었다. 엄마들은 밥솥의 밥을 전기 보온밥통에 퍼 담았다.

매일 갓 지은 밥을 밥그릇에 담아 보자기에 싸서, 수건에 말아 아랫목에 넣어야 할 귀찮았던 

것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엄마들은 매일 밥을 짓지 않고도 뜨거운 밥을 먹게  되었다는 그 사실이 중요했다.

보온밥통에 며칠의 밥이 담겼다. 하루가 지난 밥통의 밥은 풀기가 다 빠져 부석거렸고 또 어쩔 때는 냄새도 났다.

그러나. 그 신세계. 밥이 식지 않고 시간이 지나도 따스하다는 그 놀라움이 그런 사소한 것들. 사실은 가장 중요한 사실들을 간과하게 만들었다.

엄마들은 밥통을 유난히 사랑하였다. 겨울에 동네 엄마들끼리 모여 뜨개질을 해서 밥통에 옷을 입혔다.

찬란한 밥통이었다.


그때 큰 뉴스가 떴다. 일본산 코끼리 밥통 사건이었다.

서울의 잘 사는 엄마들은 그때부터 이미 냄새 안나는 질 좋은 밥통을 알았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엄마들은 보온밥통의 단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밥에서 나는 냄새가 역겨워졌다.

보온밥통에 입혔던 옷을 벗겨버렸다. 딱 그 시점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보온밥통이 아니라 밥 짓는 전기밥솥이 나타났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집집마다 전기밥솥이 보온 밥솥의 자리를 꿰어 찼다.

엄마들은 보온만 되던 밥솥을 과감히 버렸다. 이제 불 앞에 앉아 매시간 밥을 짓지 않아도 된다는 그 사실이 기적 같았다. 엄마들은 기적같은 밥솥에 밥을 지나치게 많이 지었다. 어쩔때는 3일을 넘기기도 했다.

밥의 저장시간이 길수록 밥에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엄마들은  좀 똑똑해졌다. 얼마 후 그네들은 밥을 많이 짓지도 않고 며칠 씩 밥통에 밥을 저장하지도 않게 되었다.

전기 기술의 놀라운 변화 앞에 엄마들은 예전에 짓던 밥맛을 서서히 잃어버렸다. 아니지. 정말은 가끔씩 예전의 가마솥에서 짓던 밥맛을 그리워하였다. 이제 가마솥 같은 것은 희귀한 것이 되었다. 그래도 엄마들은 매일의 밥짓는 노동에의 해방이  맛없는 밥을 먹는 것보다 훨씬 좋았다.

어쩌다 식당에서 해 주는 가마솥의 밥맛을 찾아 옛날을 그리워하게 된 딱 그 시기였던 것 같다.



 충격적인 밥솥이 등장했다. 가마솥에 지은 밥맛을 가진 전기 압력밥솥이 등장했던 것이다. 그것은 외양도 찬란했다.

밥솥에는 밥물이 끓으면 미친 듯이 돌아가는 추가 달려서 밥이 다 되면 추의 회전이 멈추고 폭발하듯 솥 내부의 증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온 집안을 울리는 생명의 기적소리와도 같았다.

밥맛도 훌륭하였다.


시간은 늘 멈추지 않고 흐르고 흘렀다.  예전의 보온 밥 솥을 쓰던 엄마들은 이제 할머니가 되었다.

냄비밥에서 보온밥통의 밥 그리고 압력솥의 밥맛까지 다 맛본 그 딸들은 아주 바쁜 사회인이 되어 집에서 밥을 지을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전기 압력밥솥은 정말 편리한 밥 짓는 도구가 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이제는 레인지에 3분만 돌리면 바로 갓 지은 밥 한 그릇이 나오는 햇반까지.

그런 편리한 것들을 두고 불위에 밥을 직접 지어먹는 일은 정말 시간 낭비였다.


그 딸들의 딸들은  쌀보다는 밀을 더 잘 먹었다. 전기 압력솥의 인기도 예전만 못해졌다.

아침마다 밥을 먹어야 하는 세대들은 빵은 그저 간식에 불과했다. 아침에 빵을 먹었어도 밥을 먹지 않으면 허전하였다.

압력밥솥에서 기술은 더 이상 진화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 충격적인 기계의 발전이 있어야 했다.


어느 날부터 사람들은 전기에서 밥을 짓는 그 자체에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전기 압력솥의 편리함. 아침에 지어놓은 밥을 이틀에 걸쳐 먹을 때의 그 허전해진 밥맛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촉촉하고 기름진 밥알은 전기밥솥 안에서 생명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급격히 떨어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냄비에 밥을 짓자.

냄비밥을 처음 짓던 날이 생각난다.

그날 아침에는 된장국에 열무김치뿐이었다. 고슬고슬한 밥이었다.

밥맛이 예전과 달랐다. 그 밥에는 반찬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밥 짓는 그 순간들의 과정을 직접 경험했다.

쌀을 고르는 그 시간들. 씻는 것. 밥물을 맞추는 것. 밥이 끓는 시간을 눈여겨 보는 것. 뜸을 들이는 것. 밥을 지어 그 순간을 그릇에 담는 것. 공기에 담긴 밥알들의 그 짜릿한 냄새들을 맡으면서

그 옛날 잃어버렸던 마음을 찾아냈다.



밥 짓는 시간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침에 밥을 먹고 남은 것은 약간의 누룽지와 저녁까지 식은 밥 그대로 먹었다. 그래도 촉촉한 밥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옛날에

엄마가 저녁에 퇴근하는 아버지를 위해 갓지은 밥을 공기에 담아 뚜껑을 닫고 수건에 꽁꽁 싸서 아랫목에 넣었다가 꺼낸 밥맛. 좀 식었지만 밥의 온기가 남아서.

따끈한 뭇국에 옥돔 구이가 밥상에 올라오면 밥의 온기와 옥돔의 그 구수한 맛이 어울려 한 밤에도 그렇게 맛이 있었던 것을.

너무나도 빠르게 발전해온 기계의 기술에 압도되어 눈이 멀었던가.

예전의 느리지만 좋은 것들은 다시 회복하며 너무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 밥알을 삼킬 때마다 헤아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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