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학생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학교에서는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을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누어 등교시켰다.
오전 등교와 달리 낮에 등교할 때는 수업을 끝내고 운동장을 달려 나오는 아이들을 보면
이미 공부할 마음이 싹 없어져서 수업을 거의 제대로 못 한 것 같다.
그러나 2학년 때는 잠시 우리 반이 도서관을 교실로 이용한 덕분에 오후반을 면했던 적이 있다.
교실의 사방에 책꽂이들이 창을 가린 곳이었고 왠지 교실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에 밀려 소외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햇볕이 밝게 들이비치는도서관에서 맘껏 책을 읽어볼 수 있었다.
특히 미술수업이 있는 날이면
가끔 학교 뒷산이나 학교 앞 바닷가로 가서 야외수업을 했다. 소나무 솔방울이나 도토리를 줍느라 그림은 뒷전이고 바닷가 바위에 앉아 도화지에 바닷물과 자갈만 간단히 그려놓고 바닷가 바위들 위를 건너뛰며 놀았다.
어느 날! 교실에서 미술수업을 할 때다.
나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특히 귀한 색연필의 매끄러움에 빠져있었다.
그러나 그때의 미술시간에는 하얀 도화지 한 장에 20 (?) 원짜리 칙칙한 크레용이 전부였으니.
값싼 10색 크레용은 두께도 얇고 불순물이 섞인 듯 휘발유 냄새에 색깔들도 별로였다. 엄마는 미술시간의 준비물을 알려주면 도화지 한 장 값과 10색짜리 크레용 값만 주었기 때문에 18색의 아름다운 크레파스는 엄두를 못 냈다.
그날도 미술시간이었다. 따스한 겨울 볕이 도서실 안 책꽂이 사이로 비쳐 들었다.
다들 크레용과 도화지를 책상 위에 올려놓는데 대부분이 나처럼 10색 크레파스에 흰 도화지 한 장이었다.
그러나 몇몇 아이들은 왕관을 쓴 왕자그림이 박힌 왕자파스를 준비해 왔었다. 그것도 스케치북과 함께!
검은 머리색만 빼면 서양아이처럼 피부도 하얀 반장의 책상에는 학교 앞에 문구점에도 볼 수 없던 커다란 크레파스 통이 놓여 있었다.왕자파스 24색!이라고?
크레파스의 뚜껑이 열리자 아이들의 감탄이 터져 나왔다. 그 안에는밝고 찬란한 24색이 가지런하게 빛을 발하며 누워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아름다운 색깔 병정들 같았다. 흐리멍덩한 싸구려 크레용의 빛깔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왕자의 크레용은 하나하나 들어 올려질 때마다 더 반듯하고 선명한 색을 발했다. 게다가 눈 같은 도화지에 미끄러지듯 퍼져나가는 색채들의 경쾌함.
아무리 밑그림을 잘 그린다 해도 그 색깔이 너절하면 그림의 가치가 추락하기 마련인 것을 그때 깨달았다. 나의 10색 크레파스는 그림에 색깔을 입히기 시작하자 종이의 밑그림 안에서 융화되지 못하고 지우개처럼 밀려나기 시작했다. 종이는 기름이요 크레파스는 물이었다. 색채가 입혀지지 않아 도화지에 크레파스를 칠하면서 두드려 입혀야 될 만큼 조악했다. 파란색을 칠하면 어두운 알 수 없는 거친 파란색이 떡칠하듯 입혀졌다.
나는 더 힘을 주어 색칠을 했고 크레파스가 뚝뚝 부러지거나 내 손에서 뭉개져 나갔다.
그리하여 그림이 완성되기도 전에 나의 크레파스들은 반이나 닳았고 또 파스를 감싼 종이까지 벗겨져 너절하니 박스에 남았다.
그러나 왕자파스는 달랐다.
반장의 크레파스는 옷이 날개임을 입증이라도 하듯 별거 아닌 밑그림을 살리고 왕자의 자존심도 지켜내고 있었다. 왕자표 크레파스는 왜 왕자표인가. 그 크레파스를 손에 움켜쥐는 자를 왕자로 만들기 때문이리라.
오후의 나른한 햇살이 책상 위로 비쳐들 때 왕자 파스는 주인의 손 안에서 차례로 행동을 개시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내 크레용처럼 개성 없는 칙칙한 색깔들이 아니었다.
그 선명한 크레용의 율동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젠 금색이 도화지에 입혀지기 시작했다. 반장 손에 쥐어진 금색은 도화지에 빗금을 긋자 금빛 가루를 발산했다. 확실히 금색은 그 가치를 몸으로 보여주었다. 반장의 그림은 이제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만큼의 경지에 오르고 있었다. 나는 넋을 놓고 그 금색의 재주를 찬양하였다. 게다가 주인의 손에는 절대 흔적을 남기지 않는 충성심이라니. 내 손과 옷은 크레파스의 잔해들로 엉망인데도.
내 도화지의 그림이 10색 크레파스에 대한 불만과 원망을 표현한 칙칙한 추상화였다면 그 도화지의 그림은 동화나라 같은 밝음으로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미술 수업 후
왕자의 그림은 교실 뒤편 게시판에 걸렸고 내 그림은 가방 속에 구겨 박혔다. 새 학년에 올라가서는 18색의 왕자표 크레파스를 사서 써 보았지만 '왕자 24색'의 놀라움에 비교할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