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예배당-9

어린 시절을 충만케 해 주었던

by 미셸 오


얼마 전에 내가 살던 동네를 찾았을 때 딴판으로 변해버린 동네를 짐작케 해 준 건 예전부터 있었던 교회였다고 앞서 언급한 적이 있다.

지금은 그 교회가 고층아파트에 밀려 땅밑으로 숨어들 듯 작고 낮아 보이지만

그 당시는 우리 동네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 또한 길 위 언덕 위에 자리를 잡은 데다 뾰족탑 끝의 십자가 모형이 빽빽한 나무숲 사이로 솟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교회 입구에 자리 잡은 종탑에서는 매일 새벽마다 사람이 치는 종소리가 온 동네에 울려 퍼졌다.


그런데 난 그 새벽의 종소리가 싫지 않았다. 혼곤한 잠결 속에서 느리고도 부드럽게


“뎅그렁~뎅그렁~”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새벽을 알리는 목청을 찢는 수탉의 울음소리보다 부드럽고 자연스러웠다. 나는 새벽에 그 종소리를 들으면 잠결을 어루만지는 따스한 손길 같아서 더 깊은 꿈나라로 들어갔었다.

또한 아무도 그 종소리를 두고 항의하지 않았다.


여름방학이면 교회의 젊고 패기 넘치는 선생들이 북을 치면서 이 동네 저 동네를 다니며 아이들을 모았는데 그들 무리가 우리 동네로 들어오면 열을 지어 따르는 아이들 꽁무니에 우리 동네아이들도 같이 따라붙는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르는 아이들처럼 신나서 교회 문으로 들어섰다.


엄마는 내가 교회 가는 것을 반대했지만-이건 분명 점쟁이의 말을 들어서였을 것이다-

나는 몰래몰래 교회에 가서 찬송가도 부르고 선생님들이 그림을 그려서 이야기해 주는 성경의 인물들 이야기들을 집중해서 듣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교회 가는 것이 마냥 신나고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교회선생님들은 말 안 듣는 아이들을 절대 꾸짖는 법 없이 다독이며 사랑해 주었다.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나는 교회 선생님들의 그 자상한 가르침에 푹 빠져들었다.


나는 가끔 헌금할 돈이 없어서 미안했지만 그렇다고 헌금을 강요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마칠 때면 언제나 맛난 과자를 쥐어주기도 하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이던지.

교회까지 찾아와서 나를 강제로 끌어내는 엄마가 아니었다면 나는 신실한 크리스천로 성장했을지도 모르지만 엄마의 미신은 강력했고 기독교인에 대한 불신도 컸다.


이후 교회에 갈 수 없게 된 나는


"뎅~데엥~뎅~"


하는 교회의 종소리를 들을 때마다, 동화 속 성냥팔이 소녀를 떠올리며 주일마다 예쁜 선생님들도 못 보고 특히 성탄 때 맛있는 과자를 한아름씩 주던 교회를 못 가게 된 나를 매우 불쌍히 여겼다.

그런데 교회와 우리 동네 사이의 흙길에 아스팔트가 깔리면서 어느 날부터 종탑의 종소리 대신 녹음된 찬송가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음악은 스피커에서 시끄럽게 울려 나와 단잠을 쑤셔놓고 음악이 시작되기 전 지지직대는 전파음이 사람들을 짜증 나게 만들었다. 이전의 종소리에는 아무 불평 없던 사람들은 새벽마다 틀어대는 교회의 음악이 시끄럽다고 결국 항의를 하기에 이르렀고 이후에는 교회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내 어릴 때 교회 언니들의 집 다락방에서 성탄제 연극연습을 하던 때.

그리고 크리스마스 때 수없이 교회 입구며 본당 안에서 반짝이던 트리 전구들.

성탄절 이브 때 밤늦도록 펼쳐지던 교회의 축제시간들이 먹을 것도 많이 없고

놀 것도 없던 그 시절을 얼마나 가득 채워주었던가.


내가 40이 된 후,

스스로 교회에 나가서 교사로 헌신하게 되었을 때. 그때 그 선생님들의 사랑을 내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려주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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