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여름 해가 선선히 질 때 추석을 며칠 앞둔 떡방앗간에 줄지어 선 많은 사람들과
흰 가래떡이며 시루떡이 하얀 연기 속에 정신없이 만들어진 던 때였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방역차가 길을 서서히 지나갔다.
그때 그 뒤 꽁무니를 따라 달리던 동네 꼬마들. 아마도 30명은 족히 넘을 것이었다.
추석의 흥성거림에 맞춰 온 동네는 붕 떠서 공기 속에서도 알 수 없는 기분 좋음이 있었다.
동네 공동 우물 가기 전에 큰 공터가 있었다
그 공터에서는 온 동네 아이들이 몰려나와 기차놀이. 땅따먹기. 공기놀이 등을 하면서
놀았지만 특히 추석 전에는 동네 아이들 나이에 구분 없이 단체 놀이를 했었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꽃을 따러 왔단다~ 왔단다~!"
"무슨 꽃을.."
이렇게 시작된 놀이에서부터꼬리잡기 놀이. 기차놀이 등등 아이들의 고함소리는 온 동네를 떠들썩하니흔들어 놨다. 난 그때 공기놀이 땅따먹기 이런 놀이보다 언니 오빠 또래들과 이렇게 단체놀이를 하던 것이 너무 재미가 나서 저녁 밥때가 되면 이 집 저 집에서 아이들의 이름이 불리고 나 역시도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마지못해 집으로 돌아가곤 하였다. 그때 엄마들의 목소리는 다들 왜 그렇게 컸을까.
그리고 명절 전 필수 코스는 목욕탕.
지금도 숨 막히는 목욕탕의 열기는 내겐 트라우마다. 샤워시설은 고사하고 집안에 수도가 없어공동 우물을 길어다 먹는 상황이었는데 목욕은 무슨. 그때 공중 목욕탕은 동삼동에서 딱 한 개뿐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의 때를 벗겨낸 그 목욕탕은 그때 맘껏 호황을 누렸을 것이다.
공중목욕탕에서 엄마의 손에 끼워진 이태리타월에 몸을 맡긴 채 수증기로 가득한 탕 안에서 빨리 나가기를 소원했을 뿐. 그 숨이 턱턱 막히는 목욕탕에서
어떻게 매번 살아 나왔는지 지금도 그 시절의 아이들은 인내심이 대단하였다고 본다.
추선 전날 밤.
머리맡에 새로 산 옷과 양말과 신발을 두고 잘 때 내일 완전히 개벽할 내 모습에 황홀해서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 추석 용돈과 맛있는 음식과... 그렇게 추석의 오전을 보낸 후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는 동생과 함께 버스를 타고 항남동 (영도에 있음) 극장에 갔다. 항남극장~!
그때 봤던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007'과 중국무술영화다. 특히'소림사 36방'이란 영화가 가장 재미났다. 추석이라고 보너스로 국내 영화도 한 편 더 보여줘서 극장을 나오면 저녁 해가 어스름해졌다.
우리 둘이는 용돈 남은 것을 가지고 극장 맞은편 길가에 있던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을 사 먹었다. 동생은 곱빼기 나는 보통.
그때 먹었던 자장면이 내 인생 최고 자장면이다. 당시 항남동은 시내였으므로 큰 병원이며 시장이며 상가가 즐비하고 차량도 많았다.
자장면을 배불리 먹고 버스를 타고 집에 오면
조용했던 집에
부모님의 동향 사람들이 찾아들고 지인들도 오고 하면서 집안이 시끌벅적해 있었다. 아버지는 친구들과 화투를 치셨는데 순전히 오락이었고 엄마는 추석 전 만든 음식들을 손님들에게 내 가기 바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