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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율립 Oct 18. 2021

차 한잔의 평안

이번 주말엔 오빠와 찻집에 갔다. 카페가 아닌 찻집에   생각해보니 처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빠를 만나기 전에 나는 차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차에 흥미가 생긴  대만 여행에서 경험한 우롱차 덕분이다. 오빠의 대만 친구들은 우리를 산속 깊은 티하우스로 데려갔다. 굽이굽이 산길을 지나 멀미로 여러  고통을 겪은  도착한 티하우스.  티하우스의 장인은 여러 우롱차를 소개해주며 직접 찻물을 넣고, 버리고를 반복했다. 첫 번째 잔보다 두 번째 잔에서  깊은 우롱차의 맛이 난다는  그때 처음 알았다.


새로운 외주 을 잘하기 위해 차를 좋아하는 오빠를 이용해(?) 인사동의 찻집에 갔다. 특별한 다구가 반겨주는 , 미리 예약금을 걸고 예약해야 안전하게 차를 마실  있는 . 특별한 시그너처 디저트인 레몬 젤리를 경험할 수 있는 찻집 토오베. 레몬 젤리는 정말 레몬과  닮아 시그너처 디저트가 되기에 충분했다. 해비 인스타그래머가 좋아할 만한 비즈니스 코드였다. Intp 오빠는  젤리를 어떻게 만드는지 제조법과 재료를 설명해줬다. 나는 오빠의 젤리 제조 설명을 들으며  레몬 젤리를 신기해할 이들을 떠올렸다. 우리는 너무너무 우리스럽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주문했던 차가 나왔고, 뜨거운 물이 담긴 주전가가 연이어 나왔다. 동글동글 말려진 우롱차는 정말 오랜만이다. 처음 우롱차를 마셨을  동글동글한 찻잎이 길게 펼쳐지는 광경은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다. 토오베에서 내어준 차는 5 정도씩 우릴  있다고 했다. 차를 우리고 기다리고, 마시고 다시 뜨거운 물을 부어 차를 우리는 시간.  5번의 루틴이 반복됐다. 5번의 루틴을 반복하며 코로나19 내게 남긴 단조로운 일상을  떠올렸다.


-회사-필라테스-오빠, 그러고 때때로 친구들. 코로나19  일상을 단조롭고 명확하게 만들었다. 마치 취향의 필터가 걸러져 뾰족한 취향이 남으면 쇼핑이 편해지듯, 일상도 그렇게 필터가 걸러진 셈이었다. 만나는 사람도 마찬가지. 인간관계가 자연히 깔끔해졌다. 차로 따지자면,  번째 우려낸 차맛처럼. 단조로워 편안하고, 명확해서 깔끔한.


오빠와 일상에서 차를 마시는 행위가 필요한 까닭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르고 간결한 에스프레소 커피도 좋지만, 가끔은 핸드드립과 같이 한잔의 차를 마시기 위한 까다로운 준비 과정이 요구되는 음료를 마시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우리는 차를 마시면서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귀여운 다구에 따듯한 물을 조심스럽게 넣는 행위,  귀여운 다구에서 다시 투명 주전자로 옮기고, 다시 예쁜 찻잔에 옮기는 것까지.  번거로운 행위를 오빠와 함께 5번씩 반복했다.


나는 어딜 가든 누구에게든 그 업장에 재방문 의사가 있는지 묻는  좋아한다. 이번에도 역시 오빠에게 토오베에 재방문 의사가 있는지 물었다. 오빠의 대답은 no였는데, 재빨리  가지 옵션을 추가했다. 만약 누가 사주는 자리라면? 오빠의 대답은 흔쾌히 yes.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오빠와    멍해지고, 온몸이 나른해졌다. 예약금 만원에 진정한 평안과 릴랙스를 얻었다. 이후로는 2시간 내내 단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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