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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율립 Jan 04. 2022

2022년 새해 풍경

연말과 새해, 새해 첫 출근을 하니 또 할 말이 쌓였다. 이 회사에서 벌써 햇수로 4년. 작년부터 새해 첫 출근을 해서 새로운 잔에 커피를 내린다. 올해는 온더락 커피잔을 마련했다. 떠나간 동료와 나눈 잔인데,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굿나잇'이라는 영문 카피가 담겨있는 잔이다. 성수 카페에서 발견했는데, 아리와 카페에서 나눈 이야기도 카페의 조도도, 아리도 너무 좋았아서 그 잔도 좋아졌다. 동료의 매일이 그야말로 '굿'이길 바라며 저 잔을 선물했다. 그 김에 2022년 나의 매일도 매사 '굿'이길 바라며 내 잔도 함께 샀다. 1월 3일, 새해 첫 출근날인 오늘 그 잔을 꺼내 차를 우렸다. 이렇게 하나의 의식을 치르니, 그야말로 새해가 온 것이 실감 난다. 이 나름의 신성한 의식은 작년 새해부터 시작됐다. 다솜 언니가 생일 선물로 준 예쁜 유리잔을 어떻게 사용할까 하다가, 글을 쓸 때 이 잔에 커피를 담아 마시면 좋겠다는 말이 떠올라 가장 많은 글을 쓰는 회사에서 커피를 마실 때 쓰기로 했다. 그렇게 2021년 새해 첫 출근에 저 잔에 커피를 마셨다. 그때의 작은 루틴이 이렇게 2년째 이어지고 있다. 나는 많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작지만 이벤트를 만들며, 또 타인에게 해주며 사는 삶을 지향하는 사람이다. 그런 작은 이벤트들이 모여 우리의 인생을 더 풍요롭고 즐겁게 만든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게 태욱이 말만 따나 문과의 힘이라고 믿는다.


새해가 밝았고 오빠와 함께 '돈 룩 업(Don't look up)'을 봤다. 지구의 모든 인류와 종을 멸종시키는 혜성이 오고 있음에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사람들, 정치인과 사업가들. 그들과 싸우는 소수의 과학자들. 오빠는 결국 이 얘기가 지구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오빠와 작년에 약속한 대로 연초가 됐고, '돈 룩 업'까지 본 이상 쇼핑앱을 지우지 않을 수 없었다. 계속 돈 룩 업을 외쳤지만 미니멀리스트로 분한 프로당근러 오빠 앞에서는 무용지물에다 나 조차도 인정하는 소비주의에 물든 나의 일상. 그렇게 29cm, 무신사, w컨셉을 지웠다. 그리고 지금까지 3일 차. 담배를 끊으면 그렇게 힘들다던데 나도 비슷한 금단현상을 겪고 있다. 어딘가 답답하고 심심한 상태, 쇼핑앱의 부재가 내게 준 금단현상 같다. 그 자리에 무언가를 잘 채운다면, 분명 2022년은 더 풍성해질 수 있을 텐데, 하며 울며 겨자 먹기로 밀리의 서재를 깔았다. 한 달에 1권도 채 안 되는 금액으로 2022년 독서왕을 꿈꿔본다. 어차피 올해 사내 동아리 독서클럽(회원 수 1명, 바로 나)을 만들기로 했으니까. 


매년 정하는 표어 세 가지도 정했다. 2021년에는 어쨌거나 즐거운 일을 하자는 뜻에서 'anyway enjoy things', 21년도에는 많은 동료와 이별해서 일할 때 'anway'라는 말이 꼭 필요했다. 또, 좋은 영향력을 끼치자는 의미에서 'good influence', 항상 일할 때 퀄리티를 체크하자는 의미에서 'quality check'. 이렇게 세 표어를 정했다. 올해는 지구로 불시착하는 혜성을 떠올리며 소비를 줄이자는 의미로 'look up' (가끔은 돈 룩 업이 되겠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의 기쁨을 순결하고 진실되게 기뻐하자는 의미에서 'pure and sincere joy', 늘 겸손하고 가난한 마음을 품자는 의미에서 'poor heart'라 정했다. 새해 새로운 교회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고,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는 말씀을 받았다. 익히 들어온 친숙한 말씀이지만 왠지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천국이 사후에 가는 어떤 세계라기보다, 천국이 지금 현재의 상태에서 충분히 이룰 수 있는 것이라는 말씀 덕분이다.


작년엔 2020년 연말보다 연하장도 많이 썼다. 재작년에는 9개 남짓의 연하장을 급하게 프린트해서 발송했는데, 올해는 손편지를 또박또박 적으려고 노력하면서 13개의 연하장을 써 내렸다. 내 연하장은 항상 그때 가장 좋아하는 엽서에 발송 알림이 가지 않는 일반 우표로 툭 우편함에 꽂히는 콘셉트다. 물론 잘 도착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발송 알림이 여러 번 오는 등기나 택배와는 다른 그야말로 아날로그 방식으로 보내는 연하장이다. 올해는 이스트 작업을 하면서 만든 예쁜 엽서에 연하장을 썼다. 그 연하장에는 그들의 기쁨을 순결하고 진실되게 기뻐하겠다는 내 다짐을 담았다. 타인의 기쁨을 순결하게 기뻐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어려운 일이니까. 지난 연말에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기쁨에는 1%의 티끌도 없이 진실되게 기뻐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기쁘게도 1개의 연하장이 연말에 도착했다. 참새 그룹 중 1명인데, 내 글씨가 늘었다며 칭찬해줬다. 참새 그룹은 27년 산 내 글씨를 악필이라 낙인찍은 그룹인데, 이들 덕분에 내 손글씨는 항상 긴장 상태로 또박또박 쓰는 걸 게을리할 수 없다. 할머니가 되어도 감시한다는 이들 덕에 내 손글씨 성장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 작년에도 조금 늦어서 새해에 받게 되는 연하장이지만, 1월 3일이 된 오늘 하나둘씩 내 연하장이 도착하고 있다. 내년에는 조금 더 부지런 떨어서 더 많은 연하장을 정갈한 글씨로 보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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