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인 나에게 일이 떨어졌고 그걸로 돈을 준단다:)
2020년 4월 퇴사
1년이 넘게 직업을 가지지 않은 상태, 백수로 지내고 있었다.
누가 보면 돈 많은 남편 만나서 결혼했나 보네 싶을 정도로 놀고먹고 취미 생활하며 모아놓은 돈을 겁 없이 쓰고 지냈다. 약 두 달 전부터 통장의 잔고가 바닥이 났고 나는 하루아침에 돈 없는 백수가 되었다.
(돈 있는 백수에서 돈 없는 백수가 되는 것도 하루아침이었다_나처럼 쓰면)
여기저기 돈 없다는 소리를 너무 하고 다녀서 번듯하게 직장 다니고 있는 남편에게 조금 미안했다.
(우리 돈은 있었지만 내 돈은 없었는 걸...)
나는 발레를 취미로 하고 있었고, 발치광이 (발레에 미친 미치광이를 뜻함)가 되어 발레를 주제로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상 편집 기술을 익혀야 했다. 집중하면 몇 시간을 앉아서 편집하는 게 나와 잘 맞았다. 편집 기술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어서 과외를 받기도 했다. (이러니 각종 취미에 돈을 쓰며 살았나 보다)
그런데 어느 날 아는 지인이 나에게 영상 편집 일을 주었다.
10분 내외 편집 건당 일정 돈 (내가 생각한 것보다 큰 금액이었다)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죽으란 법은 없구나..잔고에 허덕이며 숨이 끊어지기 일보직전에 나를 구해준 일거리였다.
그래서 나는 닥치는 대로 빨리 일을 처리했고 또 일을 받아 최대한 빨리 처리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 한 잔 내려 영상 편집을 했고
점심때가 되면 간단하게 토스트를 해서 먹고.
또 배가 고프지 않으면 쉬지 않고 편집을 했다.
일어나서 서재에 앉으면 출근
일을 잠깐 멈추고 침대에 누우면 퇴근.
정해지지 않은 업무시간.
새벽에 잠이 안 와서 일어나서 잠깐 편집하면 다시 출근.
잠깐... 나 설마...?
나 설마? 프리랜서가 된 거야?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프리랜서라는 직업을 동경했던 사람 중에 한 명이었다.
28살의 나이로 퇴사해서 다시는 회사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한 내 성격을 보면
여간 예민한 게 아니었다.
회사와 맞지 않아서,
사람에게 상처를 잘 받아서,
남들 눈치를 너무 많이 봐서,
등
등
이건 어쩌면 프리랜서 000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아닐까.
나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취미를 더 잘하고 싶어서 안 되는 거 질질 끌면서 악착같이 하고 있었더니
운 좋게도 일이 떨어진 것이다.
비로소 나는 하루아침에 프리랜서 영상 편집자가 되었다.
(개이득)
고정 수업 없지만 용돈 벌이는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큰절이라도 하고 싶을 만큼 감사한 마음이 크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 돈(부부 공동 생활비)은 있지만 내 돈이 없는 건 정말 많은 자유를 빼앗긴 기분이었다.
취미 활동, 각종 소비의 제한뿐 아니라 내 자신감까지 갉아먹었다.
처음으로 정산이 되어 프리랜서로 첫 페이가 들어왔을 때는 정말 어깨가 3센치 쯤은 올라간 거 같았다.
남편 옷도 사줬다.
우리 생활비가 아닌 내 돈으로 저녁도 샀다.
물론 며칠 되지 않아 홀라당 다 써버렸지만, (이 놈의 소비패턴이 어디 가겠나..)
이제 나는 편집자로 첫 발을 내디뎠으니 또 벌면 되지 않은가!
올라간 어깨는 돈을 다 씀과 동시에 내려왔지만 내 마음 한구석이 든든해졌다.
회사라는 시스템이 아니면 나는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굳게 믿고 생각했다.
인문계 학과를 나와 기술도 없었다.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누구나 다 하는 정도?.. 이것도 기술이라면..)
두루뭉술하게 글 좀 쓴다고 에디터 혹은 카피라이터로 비슷하게 직업 생활을 했지만 짧은 경력으로 어디서 일을 따올 만큼 수준이 되지도 않았다.
근데 지금은 결과물을 내는 기술을 가진 것이다.
이것이 내 전공도 아니었고 뜻밖의 취미에서 찾은 나의 돈벌이 수단이 된 셈이다.
진짜 이거야 말로 개이득.
나는 당분간
Let me introduce myself, i'm a freelancer.
물론 일이 끊기는 순간 백수, 일이 있을 땐 프리랜서라는 아찔한 경계에 서있지만!
(백수 vs 프리랜서, 숨 막히는 외줄 타기 기대해본다..후하 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