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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영 Mar 26. 2019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

추억은 방울방울

타에꼬 어린 시절
그야말로 매일 보며 살고 싶은 농촌의 석양. 실제만큼 멋지다.
타에꼬와 도시오 투샷
성인이 된 타에꼬
유쾌한 농촌총각 도시오
온 세상이 푸르른 이곳에 가고 싶다.
어린 시절의 타에꼬에게 푹 빠졌다.




'추억은 방울방울'


  어찌 보면 촌스러울 수 있는 제목이지만 영화감상을 마친 후 이 제목은 더할 나위 없이 안성맞춤이란 걸 깨달았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지를 고민하는 지금 이 영화를 만났다. 도쿄에 살고 있는, 여기로 말하자면 서울에서 살고 그녀가 직장에 휴가원을 내고 친척이 살고 있는 농촌으로 휴가를 온 것이다. 농촌으로 힐링여행을 떠날 순 있겠지만, 거기에서 농사일마저 도우며 지낸다는 것이 직장인으로서 가능하겠나 싶지만, 타에꼬는 자신이 어떤 것을 할 때 행복한지를 알고 있다.


  성인 타에꼬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자연스레 짓게 하는 아빠미소. 내게도 있는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며 나 또한 그 시절로 돌아간다. 그러고 보니 내게도 꺼내놓을 만한 추억 보따리가 산더미인 것을 발견했다.



  야구를 잘해 반 친구들로부터 인기 만점인 히로가 타에꼬에게 수줍게 다가와했던 말이다. 좋아한다는 말은 못 하고 난데없이 꺼낸 질문이 이토록 순수하다니. 귀여워서 참을 수가 없다.


"비, 비 오는 날과.. 흐린 날과 맑은 날 중 어떤 걸 제일 좋아해?"


"흐, 흐린 날..


"아! 나랑 같다"


성인이 된 타에꼬는 어린 시절 히로의 고백을 떠올리며 이불 킥을 날렸다.




  농촌 총각 도시오는 도시 사람들이 좋아하는 농촌의 아름다운 모습을 인간이 만든 거라고 말한다. 나 또한 맞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원시림의 모습은 일반적인 농촌의 정겨운 모습과는 다르게 우리가 편하게 생각되거나 아름답다는 생각보단 경이롭고 장엄하다, 내지는 영험한 기운이나 두려움마저 느껴진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기 때문이다.


(멋진 시골 풍경을 보며) "역시 이것이 시골이에요"


"진짜, 시골은 달라요"


"시골이요?"


"죄송해요. 시골, 시골 해서"


"아니에요"


"도시 사람들은 삼림과 숲과 물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곧, 자연이다 하고 자연에게 감사하겠죠"


"그렇지만 산은 물론이고, 시골 경치라는 녀석은 모두 인간이 만든 것이죠"


"인간이요?"


"예, 농부가"


(산 쪽을 가리키며) "저 삼림도요?"


"네"


(숲을 가리키며) "저 숲도요?"


"네"


(시내를 가리키며) "저 작은 시내도요?"


"네"


"논과 밭뿐이 아닙니다. 모두 분명한 역사가 있습니다"


"어디 어디의 증조할아버지가 심었다든지, 개간했다던지"


"먼 옛날부터 장작과 낙엽 등과 버섯을 얻어왔다던지"


"그렇군요"


"인간이 자연과 싸우기도 하고, 자연에서 여러 가지를 받기도 하며 어울려 사는 동안에"


"훌륭하게 만들어져 온 것이 경치예요"


"인간이 없었다면 이런 경치는 되지 않았다는 거죠?"


"농부들은 끊임없이 자연에서 얻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거겠죠?"


"그래서 자연도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농민들도 자연을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해준 거죠"


"말하자면 자연과 인간과의 공동작업이라고 하는 것, 그것이 아마 시골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렇군요. 그래서 그리웠던 거군요"


"이곳에서 태어나 자라지도 않았으면서 어째서 이곳이 고향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일까 하고 계속 생각해 왔어요"


"그래서였구나..."




  이 작품을 만화라고 해야 할지 영화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부르는 호칭에 높낮이가 있는 건 아니겠지만, 마치 굵직한 장편소설을 읽고 난 듯한 기분이 들어 묘하다. 농촌의 색과 사람들, 어린 시절 추억을 너무 잘 그려, 보는 이로 하여금 당장이라도 농촌으로 떠나고 싶게 만드는 가슴 따뜻한 영화다.


  휴가를 마치고 도쿄로 돌아가려 하다 문뜩 자신이 좋아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번뜩이게 된 타에꼬, 그녀의 곁에 어린 시절의 자신과 그 시절 친구들이 나타나 타에꼬 자신의 시골행 결정을 응원하는 듯한 엔딩 장면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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