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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영 Apr 25. 2019

웃음에 동참하지 못하다.

웃는 낯빛 어디 갔니?

확실히 이상하게 느꼈다. 나는 왜 저들의 웃음에 동참하지 못했을까? 멀뚱이 주변 얼굴들만 살피고 있는 내가 이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웃고 있는 그들이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다. 분명 오랜 기간 함께 살아온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이질감이 들기도 했다. 집에 와서 생각해본 결과 내가 이상한 거라고 결론 내렸다.


아내가 차량 5부제 걸릴 때나 가끔 아내의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 자리를 비워주곤 하는데 이때 차를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항상 고민이다. 누구든 만나고 어디든 다녀올 수 있다는 생각에 한껏 기분이 들뜨다가도 막상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못하고 차를 주차장에 고이 모실 때면 꽤나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경우 남편들의 로망인 자유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자신이 한탄스럽다.


이번 주말은 아내의 친한 언니가 집을 놀러 오는 날. 당일 새벽일로 언니가 올 때쯤이면 난 한창 꿈나라에 있겠지만 아내의 즐거움과 또한 나의 즐거움을 위해 고된 몸을 일으켜 주섬주섬 옷을 입고 고향집으로 향했다. 이 피 같은 시간 고향집을 택했다는 건 결국 자유시간을 활용하지 못해 생긴 씁쓸한 결정이다. 30분 정도 거리밖에 되지 않는 고향집에 간다면 아마 가족들과 점심을 먹은 뒤 소파에 널브러져 자거나 집에서 챙겨간 노트북을 펼쳐 게임을 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여하튼 비몽사몽 정신을 간신히 챙긴 후 고향 앞으로 출발했다.


집에는 사촌동생이 와있었다. 전라도 함평이 고향인 사촌동생은 서울, 경기의 이런저런 일정으로 고향집에 자주 머물곤 한다. 나랑도 친해서 마침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 비는 시간에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아내의 친한 언니는 1시쯤 오기로 되어 있으니 난 12시 정도 일어나 집을 나섰고, 아내는 집에서 쫓겨가는 듯한 모양새가 미안했던지 갈비탕 두 팩을 냉동실에서 꺼내 집에서 가족들과 먹으라며 알맞은 크기의 쇼핑백에 넣어줬다. 별생각 없이 받아 들고 눈이 떠 질랑 말랑 한 채로 집에 들러 원가족과의 상봉이 이뤄졌다.


아내가 챙겨준 갈비탕(한식대첩 우승자가 만들어 꽤나 맛있는)을 들어 올려 보이며 가족들과 먹으려고 집에서 챙겨 왔다는 말을 던 진 후(맞는 말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사촌동생이 아직 녹지 않은 갈비탕 두 팩을 꺼내 들고 널찍한 볼에 물을 부어 얼어있는 팩을 녹였다. 온수는 금방 갈비탕을 녹였고, 다른 큰 냄비 하나를 꺼내 2인분씩 두 팩으로 이뤄진 봉지를 모두 꺼내 붓고 끓이기를 10분, 점심준비가 완료됐다. 아무거나 잘 먹는 나와 사촌동생은 당연지사 맛있게 먹었거니와 국물요리를 별로 안 좋아하시는 아버지도 맛있다며 갈비 덩이도 몇 점 발라 드셨다. 만족스러운 점심식사를 마친 후 내 말동무 사촌 여동생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자기가 오늘 저녁을 준비하기로 했다며 장 보러 같이 나가자고 하여 무작정 따라나섰다. 날씨도 좋고, 공기도 좋아 사람들이 많이 나와있었고, 이들은 따뜻한 햇살과 파릇이 피어나는 이름 모를 꽃들과 봄바람을 맞으며 여유 있게 이곳저곳을 천천히 걸어 다니거나 벤치에 앉아 얘기를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듯했다. 우리도 사람들 속을 걸으며 마트로 향했다.


사촌동생의 메인 요리는 연어 덮밥이다. 사촌동생이 우리 집에 머물 때면 가끔 가족들을 위해 분가한 동생과 형네 가족을 불러 자신 있는 요리를 해주곤 했다고 전했다. 오늘이 세 번째 디데이였는데 계획에 없던 나는 우연히 특별요리를 맛볼 수 있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중국에서 오랜 기간 유학하며 수준급 요리실력을 보유하고 있으리라 생각하면서도 이모를 봐서는 너무 기대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기도 했다. 물론 재료가 재료인 만큼 연어에 간장만 비벼도 맛있을 것이다.


점심 갈비탕에 이은 저녁 연어덮밥을 기다리며 도저히 견디기 힘든 눈꺼풀 무게에 짓눌려 잠이 들고 말았다. 소파에 누워 두 시간쯤 시간 잤을까 외출했던 엄마가 돌아왔고, 잠결에 사촌동생과 엄마가 요리하며 대화하는 소리와 그들의 모습이 게슴츠레 떠진 눈에 들어왔다. 우리 삼 형제가 모두 출가한 후 두 분 만의 적적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 사촌 여동생이 찾아와 두 분의 적적함을 달래주고, 딸 하나 새로 생긴 것처럼 취미, 여가생활을 함께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집 나간 아들로서 사촌동생이 나를 대신해 부모님과 함께 있어 준다는 것이 고맙기 그지없었다.


엄마와 사촌동생이 알콩달콩 저녁을 만들더니 드디어 가족들을 부른다. 남동생도 집으로 불렀다.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들은 찬양을 한 곡 부른다. 우리 집의 문화이자 전통이다. 개신교 가정인 우리 집은 언제나 식사 전 찬양을 한곡 부른다. 오늘도 어김없이 1절부터 4절까지 있는 찬양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난 밥상을 차려놓고 노래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나 또한 이 문화 속에서 자랐기에 그저 조용한 목소리를 따라 부른다. 음식에 대한 예의보다 신에 대한 예의를 표하고 싶은 우리 가족은 1절을 부르고 이어 2절을 부른다. 그리고 3절을 불러야 하지만 다시 2절 가사가 다시 나온다. 이때 누군가 번뜩이며 지적한다. 엄마다. 2절은 이미 불렀는데 왜 또 부르냐며 3절로 넘어가자고 했다. 남동생과 사촌동생도 2절을 두 번 부른 것 같다며 웃어댔다.


저녁 식탁을 앞에 두고 2절 시비가 붙어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요한 건 빨리 4절까지 마치고 밥을 먹어야 하는데 점점 덮밥의 온기는 식어가고 연어의 혈색은 메말라가는 듯 보였다. 배를 고프게 해서 좀 더 맛있게 먹도록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찰나의 시간은 정말 시나브로 하게 흐른다. 3절을 다시 할지 말지 망설이고 있던 이때 엄마의 웃음이 터졌다. 엄마가 그렇게 웃는 모습은 처음 본다. 엄마의 웃는 모습은 태어나 한 번이라도 본 기억이 있는가 싶을 정도로 신기하고 낯설었다. 두 손에 얼굴을 묻고 고개를 숙여 돌고래 초음파 소리를 흉내 냈다. 감싸 쥔 두 손이 코와 입을 막아 숨을 적게 들어가 공기가 부족하다 싶을 만큼 공기반 소리반으로 웃기 시작했다. 이번엔 아버지 쪽에서 웃음이 터졌다.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웃기 시작했다. 사촌동생도, 남동생도 다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난 이게 왜 웃기는지. 2절을 두 번 부른 것이 배꼽 빠지게 웃을 정도인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모두가 웃어젖히는 통에 멀뚱이 바라봐야 했다. 물론 웃는 낯이라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 단 가족들의 빅웃음에 적응이 안되어 민망해지지만 않았어도 좀 더 괜찮았을 거다. 연어덮밥은 거의 식어갔고, 모두가 웃고 있는 순간, 과거 아버지의 죽다 살아난 그때가 떠올랐다. TV 프로그램 중 시골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색한 채로 막대기 같이 서서 "아들아. 며느리야" 하며 운을 띄며 영상편지를 썼던, 개그맨보다 더 웃겼던 그분들로 인해 아버지는 숨넘어가게 웃다가 음식물이 목에 걸려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뻔한 그런 시절도 있었다.


"이제 그만 웃고 3절이건 4절이건 부르고 밥 먹읍시다."라고 말했지만 쉽게 멈추질 못했다. 도저히 웃음이 멈추질 않을 거 같아 팔목을 'X'자로 그은 후 그만 웃고 밥 먹자고 말했다. 그나마 웃음을 진정시켰던 친척동생에게 식사를 위한 기도를 하라고 부추겼고, 결국 기도 중에도 웃음은 계속되어 본의 아니게 웃기는 기도를 드리게 됐다.


어리둥절했다. 이게 대체 뭐가 웃기길래 이리 쉴 새 없이 웃는 걸까? 흡사 모두 바보같이 보였고, 무슨 병에 걸린 건 아닌지 생각했다. 특히 엄마가 웃을 땐 생전 본 적이 없는 터라 치매라도 걸린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물론 웃음과 치매의 연관성은 전혀 모른다.


어쨌든 가족들의 기막힌 웃음사건은 나를 민망하게 만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언제 저런 웃음을 가졌던가?"란 물음을 던졌다. 가족들의 웃음과 행복에 동참하지 못했던 내가 이상하다는 걸 집에 와서 느꼈다. 나도 가족들과 함께 미친 듯이 깔깔댈 수 있었을 텐데 왜 나는 가족들의 웃음을 멀뚱이 바라만 보고 있었을까? 개그코드의 문제는 아닌 듯싶었다.


돌이켜 보면 가족들의 웃음이 감사하다. 쉴 새 없이 웃을 수 있음이 감사하고 온 가족이 함께 저녁을 나눌 수 있어 감사한 일이다. 연어덮밥은 온기가 사라져서 인지, 아니면 밥이 질게 되서인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못했지만 가족들은 연신 친척동생의 요리 솜씨를 칭찬하며 양념장과 어우러지는 연어덮밥의 모든 것에 찬사를 보냈다.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고 즐거워할 줄 아는 것이야 말로 소확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우리 집에 와서 요리 한번 해줘야겠어."라고 말했다. 사촌동생의 연어덮밥에 이런 찬사를 보냈다면 아내의 솜씨로는 극찬의 극찬을 맞볼지도 모른다. 가족들이 정말 맛있는 음식을 못 먹어본 사람들처럼 기뻐하며 행복해했던 오늘의 일이 살짝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가족들이 음식 맛으로만 그리 즐거워한 것은 아님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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