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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나나 Aug 08. 2018

#28  다시는 부르지 못할 이름

오.    복.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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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글자의 이름을 한자 한자 눌러쓰고는 한참동안 키보드위의 내 손가락은 움직이질 못했다.

아주 오랫만에 불러보는 너의 이름,  

잊었다 생각했던 너의 이름, 

다 지난일이라 묵혀버렸던 너의 그 이름....


오래된 SNS 속에서 한참을 뒤져 겨우 찾아낸 , 유일하게 남은 단 한장의 너의 사진...

내가 입혀주었던 걸로 기억나는 새빨간 옷을 입은 넌 슬퍼보이는구나...

지금 니 생각을 하는 나처럼 말야...



철거촌 유기견


크리스마스를 얼마 앞두지 않은 2010년 12월의 어느 겨울

한 동물보호단체에서 잠시 근무하고 있었던 시절, 사무실 문을 급하게 두드리는 한 청년을 만나게 되었다. 20대 중반이나 되었을까. 이 추위에 여기를 알고 찾아올 정도면 필시 동물에 관한 도움이 필요하다는 얘기이지 싶었으나, 대표님도 부재중인 상황이었고 동네 구멍 가게보다 못한 열악한 재정으로 당시 내가 할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또한 그렇게 도움을 요청하는 수많은 전화와 인터넷제보,  무작정 찾아오는 이들이 넘쳐나는 곳인지라 더더욱 그의 방문이 달갑지는 않았었다. 


" 재개발로 동네가 철거되자 사람들이 떠나면서 키우던 개를 다 버리고 갔어요.. 지나가다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부서진 폐허속에 담요한장 없이 굶어죽으라고 묶어놓았더라구요, 이 엄동설한에 ,,,줄도 아주 짧게요..물은 죄다 얼어버리고 이렇게 두다간 얼어죽거나 굶어죽거나 둘중의 하나인데 차라리 풀어주기라도 하면 살 길 찾아갈까요?  그 중에 사람을 너무 따르는 두 녀석이 있는데 이곳에서 어떻게 받아주실순 없을까요? "




그렇게 오복이는 한동안 우리 사무실에서 머물게 되었다. 정말 "임시"라는 약속하에....


연인사이에도 ' 왜 그(그녀) 가 좋아'?' 라고 묻는다면 ' 그냥' 이라는 대답이 정답이 아닐까?

나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오복이가 좋았다. '그냥' 좋았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청소년 늑대 같은 느낌이랄까? 귀한 품종견도 아닌 그저 못생기고 삐쩍말라 깨방정인 이 아이가 왜 좋았을까...집도 절도 없이 한겨울 주인에게 버림받은 그렇고 그런 익숙한 류의 사연이 어떤 후광효과를 일으켜 연민과 동정이 한순간 작동한 것이었을까.


하루종일 내 뒤를 졸졸졸 스토커가 되어 쫓아다니고 먹을것만 보면 눈이 뒤집어지는 녀석, 대부분의 유기견들이 그러하듯이 오복이 또한 심장사상충에 감염되어 있었고, 전처치로 한동안 내복약을 계속 복용했다. 하지만 알고보니 치료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말기 감염상태였다. 당시엔 난 이쪽으로 거의 문외한이었기에 그게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가늠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고양이만 두마리 키우던 상황에서 점점 난 오복이를 맘에 품게 되었고 급기야 입양을 염두에 두고 집으로 시험삼아 데려와 보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결국 그 깨방정이 역대급 쫄보겁보인 우리 두 고양이에게 먹힐리가 없었다. (당시만 해도 2마리였다) 결국 콧잔등에 피를 보고서야 서둘러 오복이를 다시 사무실로 데리고 오고 말았으니말이다. 


그렇게 한 두어달이  흘렀을까...

오복이가 코피를 쏟는다는 다급한 연락을 받고 담요에 싸맨채 겨울 칼바람을 뚫고 부랴부랴 근처 병원으로 정신없이 달려갔다. 심장사상충에 있어 코피를 쏟고 호흡곤란이 온다는 것은 그에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신호이다. 더불어 회생가능성이 없다는, 말 그대로 사형선고이다. 

산소방에서 나오면 호흡이 되지 않는 상태까지 이르자 의사는 조심스럽게 안락사 카드를 꺼냈다. 이미 병원비가 삼백정도가 넘어가던 상황이었고, 당시 개인적인 상황으로 병원비를 사비로 해결해야 할 형편이기도 했다.  함께 일하던 친구와 오복이를 책임지기로 했었지만 막막했다. 산소방에 힘없이 누워있으면서도 우리를 보면 꼬리가 부서져라 반기던 녀석, 그래도 두어달 먹이고 재운 정이 그녀석에겐 그리 컸던걸까..한번 안아보려 케이지에서 나오면 몇분 못가 호흡이 힘들어져 바로 들어가야만 했다. 


준비못한 이별


안락사전 마취제를 맞고 곤히 잠이 들듯 누워있는 오복이를 꼭 안았다. 

"저희가 안고 있을때 보내주시겠어요?" 라는 부탁을 하곤, 오복이에게 소리없는 작별을 고했다. 녀석은 그 어느때보다도 편안해보였다. 그 깨방정이 이리 조용할때도 있구나...

"미안하다.. 오복아...널 구하지 못했어... 편안히 잘 가렴...."


                                                철거촌 줄에 묶인 유기견 (출처: 케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더욱 선명해지는 기억들이 있다.

누군가 들춰내면 낼수록 다 지웠다 생각했는데 더 후벼파는 그런 기억말이다.

내겐 오복이가 그랬다. 꾹꾹 눌러담았던 것을 조심스레 한점씩 들춰내기 두려웠던 이 이름 석자를 7년이 지난 다음에 꺼내보는 지금의 내 감정은 오복이가 떠난 그날  그대로 머물러 있나보다.

2011년 3월 5일에 말이다....


널 버린 그 인간들 용서하지마...
용서는 받을 가치가 단 일이라도 남아있는 인간들에게 하는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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