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루 MuRu Jul 07. 2024

타인에게 조언할 때는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는 이유

'자기 객관화 = 자기 대상화'의 비밀에 대해


위 그림은 우리 모두가 가진 하나의 모순적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즉, 우리 내면은 피카소의 그림 속 인물처럼 지옥같이 괴롭지만, 신기하게도 우리가 타인에게 조언을 할 때는 붓다와 같이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주의하라. 이 현상은 특정인들에게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일어나는 심리 현상이다.


/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은 무엇인가?

바로 '객관화'가 되는가 안 되는가의 차이이다. 


나의 일과 나의 감정에 대해서, 나는 '자기 객관화'가 잘 안 되므로 무척 괴로워한다.

타인들에게 대해서는 객관화가 잘 일어나므로 붓다와 같은 상태가 되어 조언을 해 줄 수 있다. 


나에 대해서도 객관화, 즉 자기 객관화가 잘 되면 나에 대해서도 붓다처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


객관화 혹은 자기 객관화는, 좀 더 와닿는 다른 말로 하면 대상화(혹은 자기 대상화)이다. 

즉, 나든 상대든 '대상'으로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다. 


상대들에 대해서는, 우리는 그들이 본래 '대상'이므로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대한다. 그러나 '나'에 대해서는 대상이 아니라 '주체(나)'라고 여기므로 좀처럼 대상화시켜 바라보기 힘들어한다. 


/


'대상화'로 직접 이해하기가 힘든 이유는, 이것이 사실은 대상화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체 절대화'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 '나'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본래부터 존재하는 절대적인 것이고, 그러므로 무시하거나 없다고 여길 수가 없다고 느끼고 또 믿는다. 


'나' 즉 주체가 워낙이 절대적이고 실체라 믿기 때문에 감히 대상으로 바라볼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때, 실제 대상으로 바라볼 수가 없는 게 아니라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대상으로 바라볼 수 없다'라고 믿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뿐이다.



해결책은?


'나'라는 것, 즉 '주체'라는 것은 본래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눈치채고, 깨닫고, 통찰하는 것이다.


즉, '나'라는 것도 그냥 하나의 '만들어진 대상'일뿐임을 눈치채는 것이다.

스스로 만들어 놓고, 그것을 절대화시켜 그냥 그렇게 느끼고 또 믿고 있는 것뿐임을 깨닫는 것이다. 


/


'나'도 대상이라면,

대상이 아닌 '실재의 나, 본래의 나, 진짜 나'는 누구인가?
그런 것이 존재할 수 있는가?


이러한 의문이 든다면, 이제 깨달음 탐구의 여정을 거쳐

스스로(혹은 선각자와 함께) 그 답을 얻어보기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살면서 나에게 오는 모든 것이 재료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