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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령 Sep 14. 2020

5, 6학년 글의 특징과 지도 방법②

④ 자세하게는 썼는데 마음이 전해지지 않는 글이 되기도     

 

땅속 보물 캐기 

박지영 5학년

  가을은 수확의 계절, 결실의 계절이다. 나는 엄마랑 인영이네 가족과 함께 가을의 결실을 캐러 고구마 밭으로 향한다.

“엄마, 빨 와, 고구마가 우리를 기다리잖아.”

  오늘은 무척이나 화창한 일요일, 엄마는 요즘 아침, 저녁으로 기온차가 심해 감기로 며칠째 고생이다. 그래서 고구마 캐러 가는 것을 힘들어하셨지만 농촌 체험에 도움이 될 거라는 딸의 성화에 못 이겨 마지못해 따라나서셨다.

  집에서 인영이네 고구마 밭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고구마 밭에 도착해 인영이와 난 각자 호미를 하나씩 들고 한 고랑을 책임졌다. 고구마가 상처가 나지 않게 캐기 위해 우리는 땅 파는 요령도 배웠다. 그렇지만 서툰 솜씨라 우리는 연신 고구마의 허리를 싹둑 잘라 상품의 가치를 떨어뜨렸다.

호미로 땅을 열심히 파헤쳐 보물을 하나씩 찾아낸다. 그리고 그 보물에 하나씩 이름을 붙였다.

“이건 꽈배기처럼 생겼다. 꽈배기 고구마라 하자.”

“우와 네 다리처럼 날씬하다. 인영이 고구마.”

“이건 우리 엄마 허벅지처럼 생겼다. 허벅지 고구마.”

하하 호호 우리들은 어른들의 눈총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구마에 이름 붙이기 열중이다, 땅속에서 우리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고구마들도 빨리 세상 밖 구경을 시켜달라고 아우성을 부리는데 말이다.

이렇게 우리들이 게으름을 피우는 사이 어른들은 벌써 고구마를 다 캤다. 우리들은 벌로 밭고랑 사이마다 널린 고구마를 자루에 담아 옮기는 일을 했다.

힘이 센 인영이는 별로 힘들어하지 않았는데 난 몹시 힘이 들었다.

고구마 캐는 일을 끝내고 인영이 할머니가 준비해 오신 점심을 가을 들녘에서 먹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했던가’ 배가 고프기도 해서 그 맛이 꿀맛이기도 했지만 열심히 일을 하고 나서 먹는 점심이기도 하고, 자연과 벗하면서 먹어서 더욱 맛있는 것 같았다. 점심을 먹으며

“지영아 힘들었지? 무엇이든 쉬운 일이란 없고 노력 없이 되는 일은 없단다. 항상 그때그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 해라”라고 아저씨께서 말씀하셨다.

어디에 숨었다가 나타났는지 가을바람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닦아 주었다.

열심히 잘했다고 칭찬이라도 하듯이….

(2004. 10. 17. 일 날씨:하늘을 쳐다보니 눈이 부시다.)   


  

  꽤 긴 분량인데 5학년 어린이가 열심히 썼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쓰기도 했고, 못 쓴 글은 아닌데도 글 쓴 아이의 얼굴이나 마음이 환하게 느껴지진 않습니다. 이런 투가 고학년 어린이들이 글을 쓰면서 빠지기 쉬운 또 하나의 함정입니다. 분명히 겪어본 일을 쓴 것인데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만이 들려줄 수 있는 말이나 느낌, 감동으로 전달되어 오는 부분이 없습니다. 이런 글을 만났을 때 그냥 ‘잘 썼네.’ 하고 넘어가는 선생님도 있겠고,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막막해하는 경우도 있겠습니다. 



  글쓰기를 가르치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것은 뛰어난 글쓰기 능력보다는 글을 정확하게 보는 것과 글쓰기 방법에 대한 정확한 인식입니다. 글쓰기의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면 교육이 아니라 지시이고 명령일 뿐입니다. 

  이 글은 고구마 밭에 가는 데까지 있었던 일, 고구마 밭에서 인영이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고구마를 캔 일, 할머니가 준비해 오신 점심을 먹으면서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은 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조금 꼼꼼히 살펴봅니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결실의 계절이다.(너무 상투적인 표현) 나는 엄마랑 인영이네 가족과 함께 가을의 결실을 캐러 고구마 밭으로 향한다.

(줄임)

집에서 인영이네 고구마 밭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고구마 밭에 도착해 인영이와 난 각자 호미를 하나씩 들고 한 고랑을 책임졌다. 고구마가 상처가 나지 않게 캐기 위해 우리는 땅 파는 요령도 배웠다그렇지만 서툰 솜씨라 우리는 연신 고구마의 허리를 싹둑 잘라 상품의 가치를 떨어뜨렸다. (구체로 어떤 모습이 드러나면 더 좋겠습니다.)

호미로 땅을 열심히 파헤쳐 보물을 하나씩 찾아낸다. 그리고 그 보물에 하나씩 이름을 붙였다.

(줄임)

하하 호호 우리들은 어른들의 눈총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이 고구마 캐다가 장난을 친다고 눈총을 줄 어른은 없었을 것 같은 분위기) 고구마에 이름 붙이기 열중이다, 땅속에서 우리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고구마들도 빨리 세상 밖 구경을 시켜달라고 아우성을 부리는데 (대단히 기교를 부린 표현) 말이다.

이렇게 우리들이 게으름을 피우는 사이 어른들은 벌써 고구마를 다 캤다. 우리들은 벌로 밭고랑 사이마다 널린 고구마를 자루에 담아 옮기는 일을 했다.

힘이 센 인영이는 별로 힘들어하지 않았는데 난 몹시 힘이 들었다.

고구마 캐는 일을 끝내고 인영이 할머니가 준비해 오신 점심을 가을 들녘에서 먹었다. (가을 들녘이라니? 어딜까? 차라리 밭 언덕, 밭둑 같이 실제로 밥을 먹은 곳을 나타내면 더욱 좋겠네요.)

‘시장이 반찬이라고 했던가’. (‘ ’가 잘 못 붙었어요.) 배가 고프기도 해서 그 맛이 꿀맛이기도 했지만 열심히 일을 하고 나서 먹는 점심이기도 하고, 자연과 벗하면서(5학년이 쓰는 말은 아니다. 흔히 쓰는 상투적인 말) 먹어서 더욱 맛있는 것 같았다. 점심을 먹으며

지영아 힘들었지무엇이든 쉬운 일이란 없고 노력 없이 되는 일은 없단다항상 그때그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 해라”(너무나 교훈적인 아저씨 말씀. 실제로 이렇게 말했다 하더라도 앞뒤 말이 모두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라 너무 가식적으로 느껴집니다.) 고 아저씨께서 말씀하셨다.

어디에 숨었다가 나타났는지 가을바람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닦아 주었다.

열심히 잘했다고 칭찬이라도 하듯이...(한껏 멋을 부린 문장)  


   

  이렇게 살펴보니 이 글은 길게는 썼지만 어떤 사실을 구체로 적은 부분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단은 글 쓰는 힘이 있으니 그것을 살려 주면서 자기만이 쓸 수 있는 글, 아이다움이 살아 있는 글을 쓰도록 지도해 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 아이는 글을 많이 써 본 것 같은데 글에 대한 어떤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이렇게 시작해서 적절하게 대화글도 넣고, 교훈도 좀 담고 비유하는 말도 좀 넣고 이렇게 마무리하면 되지.’ 하는 식의 나름의 틀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물론 글 한편을 갖고 아이가 쓰는 글의 전반을 논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이 글만 보고는 그런 느낌이 듭니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해 버린 글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그래서 꾸며 썼다는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글을 솔직하게 쓰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솔직함 그 자체가 능사가 아니라 ‘솔직하게 쓴 글이 읽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글로 이끌어 주려고 하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진정성에 감동하게 됩니다. 꾸며 쓰는 글에 감동을 받는 일은 거의 없어요.

  이런 아이는 사실 지도하기가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글에 칭찬을 많이 받아왔고 나름대로 글을 잘 쓴다는 자신감에 차 있기 때문에 선생님의 이야기가 귀에 잘 안 들어올 수도 있어요.

  하지만 있는 일을 그대로 써서 재미있게 읽히는 글을 보여 주면서 그 글의 장점을 이야기해주는 식으로 지도를 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또 비유적 표현도 그렇습니다. 말을 잘하거나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적절한 때 적절한 비유법을 잘 쓰는 특징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글을 쓰는 경우에는 그 순간 자연스럽게 터져 나온 비유의 말을 잘 붙잡아 쓰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 어른들의 글쓰기처럼 억지로 이 순간에 어떤 비유를 적어 보면 좋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어머니

부산 동신 4학년 김순남     

우리 어머니는

날마다 시장에 가십니다.

오늘도 새벽에 나갔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쇳덩어리입니다.     



  이 글에는 ‘어머니는 쇳덩어리’라는 은유적 표현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흉내 낸 말, 꾸면서 쓴 말이 아닙니다. 마음속에서 터져 나온 진정의 말이지요. 그래서 읽는 사람들에게 직설적 표현이 주지 못하는 더 큰 감동을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유법은 정말 그렇게 느꼈을 때 마음속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을 쓰도록 해야지 너무 남발하면 글이 가식적으로 보이게 되는 것을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⑥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그것이 글에 나타난다.      



외로우신 선생님

이승재(와부 초등 5학년)

어제 6교시에 뜻밖의 일이 있었다. 수업 중에 갑자기 뒷문이 열리면서 쾅! 하는 소리가 났다. 그러자 우리 반 아이들이 

“어떤 요다가 저러냐?” 

“븅쉰.” 

“아. 누구야?” 

우리 반 아이들은 다른 반 아이가 뒷문을 차고 간 걸로 알았다. 얼마 뒤에는 다시 콰당! 하는 소리가 났다. 그러자 우리 반 애 한 명이 

“어떤 쉐끼야!” 

하고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밖에서 

“언놈이 선생님 보고 새끼래? 아이구, 5반. 기가 막혀 서….” 

8반 선생님이 우리 반 대걸레가 문밖으로 나와 있어서 걸려 넘어진 것이었다. 

우리 반 선생님은 연구실에 가셔서 사과를 하셨다. 그러자 8반 선생님이  

“애들 교육 좀 잘 시켜요.” 하자 다른 선생님들도 거들었다. 우리 반 애들은 연구실 문에 귀를 대고 몰래 다 들었다.

“애들이 정말 어떻게 된 거야. 한두 번도 아니고.”

“맞아요. 어학실 문도 모자라서…”

  우리 선생님 편은 거의 없었다. 실과 선생님하고 과학 선생님 밖에. 과학 선생님은

“너무 그러지 말아요.” 

하시며 우리 선생님 편을 들어주셨다. 과학 선생님은 평소에 우리 반 선생님을 존경한다고 하신다. 우리에게 놀이도 많이 해주시고 매로 다스리지 않으신다고….

  선생님이 맥이 풀려서 들어오셨다. 몇몇 킬킬대며 웃는 애들과 걔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애들이 있었다. 

  이윽고 끝나는 종이 쳤다. 그러자 아이들이 우르르 막 나갔다. 그러자 선생님이 “청소들 좀 하라니깐!” 하고 소리쳤는데 못 듣고 다 나가 버렸다. 선생님이 소리를 지르셔서 몇 명 불러 모았지만 8명밖에 안된다. (그중에 나도 있다.) 선생님은 한숨을 내쉬며 가라고 했다. 선생님이 많이 우울하신 것 같다. 앞으로 잘해드려야겠다. (2004. 12. 13)     



  늘 어리기만 한 줄 알았는데 어느새 아이들은 이렇게 부쩍 자라 있습니다. 5, 6학년이 되면 세상을 보는 눈도 넓어지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도 넓어집니다.     



3. 지도할 것들      

① 문단의 연결로 글이 구성된다는 것을 알게 하며 글을 쓸 때 문단에 유의해서 쓸 수 있게 한다.

② 문장 부호의 바른 쓰임을 안다. 

③ 글이 관념으로 흐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④ 사실을 정확하게 써서 자기의 느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알게 한다. 

⑤ 자기 말로 글을 쓰도록 한다. 

⑥ 가장 중요한 데를 파악하게 해 본다. 

⑦ 높임법을 바르게 쓰도록 한다. 

⑧ 사회문제에 대한 자기 생각을 글로 적어보도록 한다.

⑨ 알맞은 갈래- 서사문 시 일기 설명문 감상문, 주장하는 글, 논술문, 관찰하는 글, 조사해서 알리는 글, 생활극 대본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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