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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령 Aug 27. 2022

못난 것도 힘이 된다


이가령



얼마 전 눈에 띈 기사 하나. 콧속에 있는, 더럽게만 느껴지는 '코딱지'에 무엇보다 강력한 항생물질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고 한다. 독일의 한 대학 연구팀이 연구 보고한 결과로 루그더닌이라는 강력한 항생 물질이 들어있어 다양한 세균을 효과적으로 없애준다고. 이 기사를 읽으면서 ‘그러면 내 건강이 비결이 혹시 어릴 적...?’ 하고 혼자 피식 웃은 적이 있다.



코딱지도 그런데 하물며 사람이 지닌 경험이나 재능들은 얼마나 귀하고 크게 사용될 수 있겠나. 옛날이야기 한 자락이다. 옛날 어떤 집에 새 며느리가 들어왔는데 날이 갈수록 얼굴이 점점 노랗게 되었다. 시아버지가 그 까닭을 물은 즉, 방귀를 뀌지 못해서 속병이 난 것이라 했다. 온 식구가 기둥을 붙들고 며느리에게 방귀를 뀌게 하니 방귀가 얼마나 요란한지 집이 흔들거리다가 무너져 버렸다. 이런 며느리와 같이 살 수 없다고 시부모는 며느리를 친정으로 보낸다. 친정으로 가는 길에 며느리는 나무에 높이 달린 배를 방귀로 떨어뜨려 따 주고 돈을 많이 벌었다. 그러자 시아버지는 소중한 며느리라고 도로 집에 데려간다. 그 후 며느리는 마음 놓고 방귀를 뀌며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여러 각 편(version)들이 복합되어 연쇄형으로 전승되기도 하고, 조금씩 다른 이야기로 별개의 설화처럼 전해지기도 한다. 방귀를 뀌어서 높은 곳에 있는 배를 따다니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일도 있는가. 옛사람들의 해학과 풍자가 신선하고 즐겁다. 이쯤 되면 방귀 뀌는 것도 능력이 된다. 복부팽만증은 이러저러한 원인으로 뱃속의 가스가 제대로 배출되지 못해 생긴다. 금방이라도 배가 찢어질 것 같고 그때의 통증이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적절히 가스가 배출되어 주길 기다리는데 뜻대로 잘 안된다. 이런 일을 겪어 보면 방귀를 잘 뀌는 것도 능력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옛이야기니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 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 현실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올해 21살 된 호주의 에마 이야기다. 에마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데다가 자폐증, 청력손실 등 여러 가지 장애를 갖고 있다. 이런 장애 때문에 글을 읽고 쓰는 것도 배우지 못해 문맹으로 살아가야 했다. 에마의 어머니는 장애를 가진 딸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걱정이 많았다. 비록 장애가 있는 딸이지만 다른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두발로 서서 인생길을 뚜벅뚜벅 갈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려면 필요한 것이 직업. 이 개명한 세상에서 문맹자가 무슨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 모두들 어렵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문맹자라는 사실을 장점으로 삼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문서 파기에 관심이 높은 딸을 본 어머니는 그 일에 딱 들어맞는 인재가 자기 딸이라고 생각하고 여러 기업에 편지를 보내 에마를 문서파기직에 채용해 줄 것을 제안했다. 문서의 내용을 읽을 수 없으니 기밀문서 파기작업에 특히 안성맞춤인 인재 아니겠는가? 기밀문서를 다룰 일이 많은 어떤 법률사무소에서 에마를 채용했다. 그녀는 지금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 전문 직업인으로 당당히 살아가고 있다.


기밀문서 파기전문가가가 된 에마 리남



나는 막귀에 막입이다. 무슨 소리인고 하면 품질 좋은 오디오로 음악을 들은 경험이 적기 때문에 기기마다의 섬세한 소리 차이를 잘 모른다. 음악이 입체적으로(서라운드 혹은 스테레오 정도로)만 나와 주면 최고인 줄 안다. 가끔은 주변에서 아주 고급 귀를 갖고 있어 “누가 작곡한 어떤 곡을 좋아하는데 연주자에 따라서 이런저런 차이점이 있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아, 나도 다음부터는 연주자의 특징을 살피면서 들어봐야지.’ 그랬다가 웬걸 그저 음악이 나오니 좋구나 하고 듣고 있다. 첼로는 첼로라서 좋고 오케스트라는 오케스트라라서 좋고.... 그러니 막귀다.



참 진부한 이야기일지 몰라도 어렸을 적 우리 집은 일 년에 두 번 고기를 먹었다. 설과 추석 명절에 고기 한 칸 끊어서 소고기 뭇국을 끓였다. 그게 우리 집 명절 음식의 전부였다. 제사가 없으니 따로 음식을 장만할 일도 없고 가난한 살림이라서 더 이상 장만하지도 못했다. 고기를 구워 먹기도 하는구나 하는 것을 20대 회식자리에서 처음 알았다. 고기는 물 많이 넣고 푹푹 끓여 국으로만 먹는 줄 알았으니 미식가 이런 입맛하고는 너무 거리가 멀다.


그렇게 별로 먹어본 게 없어 미각이 발달하지 못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 먹는다. 그래서 막입이라고 말한다. 나중에 만난 주변의 미식가들은 나와 아주 달랐다. ‘고기는 어느 부분을 어떻게 숙성을 해서 괄은 불 위에 프라이팬을 올려놓고 몇 분을 살짝 구워서 육즙이 살아 있는 것을 먹어야 한다. 그러면 그 맛이 영혼을 불러일으키는 듯하다’는 식으로 섬세하게 맛을 알고 맛을 찾았다. 나는 그 사람들이 살짝 부럽기도 하다.


경험이 없어서 발달하지 못한 감각의 세계에 대한 아쉬움이기도 하다. 그런데 누구나 알아주는 미식가인 동료 한 사람은 자신의 입맛의 까다로움 때문에 어려움을 토로한다. 도대체 먹을 게 없다고 한다. 어떤 집에 가면 음식에서 어떤 냄새가 나고 어떤 집 고기는 너무 퍽퍽해서 먹을 수가 없고...그 말을 들으면서 내가 부러워하는 누군가의 인생은 정작 당사자에게는 그저 현실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게 설령 내 것이 된다 해도 나 역시 그 상황이 되면 ‘이게 뭐가 좋은 일이지?’ 하면서 지금 내가 겪는 온갖 아쉬움을 그대로 되뇌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련되지 못한, 어찌 보면 못난 나의 감각이지만 결국 그것이 현재 내 모습의 바탕이 되었고 뿌리가 되었겠지. 남 가진 것 부러워할 것 없다. 민들레는 민들레의 모양과 향기로, 도라지는 도라지의 모양과 향기의 옷을 입고 세상에 보내졌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못난 사람끼리 기대고 못난 사람끼리 도우며 살면 그만이다. 톨스토이의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보면 자식을 홀로 두고 하늘로 떠나는 어머니의 안타까움이 나온다. 한참 지난 뒤 천사의 도움으로 자식을 보게 된 어머니는 깜짝 놀란다.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너무나 밝게 잘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굽고 못생긴 소나무라도 햇빛과 바람과 비는 공평하게 그를 에워싸고 있듯이, 나에게도 그런 힘이 나를 감싸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래 못난 것도 힘이다"

(이상석 선생님의 <못난 것도 힘이 된다/양철북> 중에서. 이 글의 제목도 이 책에서 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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