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창한 여름이 지나고 단풍이 찾아온다. 나뭇잎이 떨어져 바닥을 채운다. 그 바싹 마른 것들이 무더기로 퍼져있거나 쌓여있는 모습을 보면 괜스레 설렌다.
우울한 마음이 가득할 때가 있다. 누가 불러도 만나기 싫고, 차라리 혼자 책을 보거나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럴 때면 평소 가지고 다니는 수첩에다 끄적거린다. 나중에 보면 웃기다. ‘아, 내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 하며 입꼬리가 올라간다. 가끔은 예사롭지 않은 글이나 그림이 발견된다. 기록은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지만, 동시에 박제하는 것 같아 무섭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도 받아들이며 넘긴다. 다양한 내 모습 중 하나일 테니까.
계절도 결국 받아들인다. 때마다 입는 옷과 먹는 것이 달라져도, 시간은 흘러가고 나이 먹는다. 수용보다 ‘어쩔 수 없는’ 강제적 의무에 가깝다. 태어나면 반드시 늙어야 하는 것처럼. 계절은 규칙 있게 순환할 뿐이다. 계절을 생각하면 죽음이 떠오른다. 나는 사라져도 그는 자기 역할을 다 할 것이다. 갑자기 억울하다. 내 죽음은 세상에 어떠한 영향력도 끼치지 못하는데. 계절은 이곳에 영원히 남아 흔적을 남긴다. 그러니 계절을 시기한다.
가능하면 생일에 죽고 싶다. 스스로 삶을 멈출 생각은 없지만, 재밌게 기억되고 싶다. ‘이 사람은 태어난 날과 죽은 날이 똑같네, 신기하다!’ 이런 반응이면 흐뭇할 것 같다.
우리 모두 영원한 계절을 찍자. 그리하여 이 계절을 찍을 때마다 죽음이 문득 떠올라 소스라치게 놀라길 바란다. ‘나는 지금 살아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이 계절과 다르게 차츰 세상에서 사라지겠구나’ 이런 생각을 한 번쯤 하면서, 오늘이 당신에게 매우 고맙게 다가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