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문뜨문 책, 그리고 영화, 섹스

[부부 섹스 일기] 요즘 내가 노트북으로 하는 것

by 써니B

오랜만에 노트북을 열었다. 나만의 노트북이 딸아이 인강 듣기용으로, 댄스 연습용으로 사용되면서 더더군다나 적어진 내 노트북에 끄적거리기 행위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내가 오롯이 노트북을 독점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에도 드라마 다시 보기에 빠져 있다. 넥플릭스 한 달 무료 회원 가입 기간을 그냥 흘려보내기 아쉽다는 핑계였는데, 영화 <어바웃 타임 >을 보고 나서 드라마 쪽으로 훑어보다가 <미스터 선샤인 >에 걸려들고 말았다.


한편 한편 넘어가면서 김은숙 작가의 상상력과 디테일한 심리묘사와 인물 설정에 감탄하고 있다. 김태리와 이병헌의 케미도 그렇고, 격변하는 조선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과 인물 열전에 또 한 번 넉다운되고 있다. 여자 의병, 그것도 의식 있는 사대부 여인의 의병활동을 다루는데, 참 그럴싸하면서 멋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미 아비를 잃게 한 조국에 대한 복수를 감행하지만, 나라의 운명을 구하기 위해 한 마음 한 뜻 동지가 되는 모습에 뭔지 모를 감동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서로 다른 신분 차이와 배경을 뛰어넘는 사랑은 가슴 아프다. "불꽃같은 삶을 선택한 의병과 독립운동가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살 수 있는 것이지 않소? 귀하의 삶이 너무나 멋지고 아름답소."


요즘 나는, 사실 책만 널브러지게 해 놓고 책 표지 한번 열어보지 않은 책들이 많다. 상호대차로 빌린 책들을 부여잡고 있다가 대출 정지에 걸리기도 했다. 읽지도 않을 책들을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그대로 반납한 적도 많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자기 전 책 조명 하나 켜놓고 서문과 목차를 읽고 목차에서 눈에 띄는 장부터 읽다 잠드는 시간이 종종 있었다는 것이다.


<처음 만나는 뇌과학 이야기 >에서 다이어트 편을 읽고 ‘아침을 황제처럼, 점심을 평민처럼, 저녁을 거지처럼 먹으라’는 생활 리듬을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 아침을 잘 안 챙겨 먹었었는데, 아침을 거르지 않고 먹기에 도전하고 있고, 저녁 6 시 이전에 소량을 먹거나 안 먹는 쪽으로 패턴을 바꾸는 중이다.


얼마 전 남편이 어둠의 경로로 다운로드하여준 영화 <호프 스프링스 >를 봤다. 남편은 영화 초기부터 잠이 들었고, 나는 중간중간 잠들었다 깨다를 반복하다 중반 이후부터 정신 차리고 영화를 보았다. 노년 부부가 섹스리스를 극복해가는 모습을 담은 영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나라 노인들의 섹스를 다룬 <죽어도 좋아 >가 떠오르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이상하게도, 아직까지, 낯부끄럽고, 민망하고, 추하게만 느껴지는 것이 노인들의 섹스다. 노인은 섹스와는 거리가 먼 존재이며, 도덕적이고 금욕적인 우리 윗 세대 부모님들이 떠오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00 세 길어진 인생에서, 앞으로 더 살 날이 길어졌음에도, 나는 아직도 노년의 삶에 대해 강 건너 불구경하듯 남의 이야기처럼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바로 코 앞에 닥친 삶인데도 말이다. 지금부터라도 갱년기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


나는 출산 이후 부부관계가 거의 없었다. 섹스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삶을 살아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다가 글쓰기로 지펴진 섹스에 대한 관심만은 최고조여서, 내가 몰랐던 섹스에 관한 진실을 파헤쳐보고 싶은 욕망이 차오르고 있다. 섹스에 대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쩌다 자연스럽게 남편과 정말 오랜만에 섹스를 했다. 한동안 없던 섹스를 재개하려니, 정말 쑥스럽고 어색해서 혼났다. 영화 <호프 스프링스 >를 보는 것처럼 낯 뜨겁고 어색했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자연스럽게 흐름이 이어졌다. 그러다 예전 패턴대로 끝내버렸다. 오랜만이었지만 , 열정이나 새로움이나 기대가 없어서일까 별로 특별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냥 익숙한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 스스로 나의 감각을 깨우는 것도 아직 서툴다. 어쩌면 익숙했던 패턴으로 돌아가는 것이 쉬운 선택지였으리라. 그냥 그렇게 끝나버렸다. 오래되고 익숙한 사이에서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직도 섹스를 꿈꿀 수 있다는 것이 여전히 좋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다. 적어도 아무런 욕망도 없는 무생물이 아님을 서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익숙한 관계에서 새로움을 꿈꾸는 것은 무모한 것일까?


요즘 나는 섹스에 대해서 무지했음을 인정하고 반성중이다. 그래서 제대로 배우고 알고 가르쳐보고 싶은 생각이 동시에 든다. 일터에서 사춘기 청소년들과 만나면서 주체할 수 없는 몸의 에너지를 어떤 식으로 풀어줘야 하나 고민도 되고, 구체적으로 알차고도 재미있게 함께 배우고 나누고 싶어 졌다. 일상적으로 성상담과 성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성에 대한 눈높이 교육 상담사 과정에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성에 대해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 눈높이에서 재미있는 스토리로 풀어갈 수 있다면 정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어젯밤 은유의 책을 보다가 문득 '시'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를 읽으면서 생각이란 걸 해보고, 내 감각을 열고, 살아있다는 느낌을 복원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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