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부모교육
2014년 8월부터 2016년 7월까지 총 173시간. 그 시간 동안 나는 살레지오 사회교육문화원 상담실에서 부모교육의 시간을 가졌다. 이 상담 공부 과정을 통해 나는 이혼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늦었지만 참 나를 찾는 여정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정신분석은 무의식을 통해 주체의 진실을 찾는 작업이라고 한다. 내가 자유롭고 평화로워지는 것이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는 작업이면서 그것을 나누는 작업이다. 이 시기 나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성경 말씀을 붙들고 진리를 찾아 헤매는 한 마리 양이었다. 간절하게 내 삶의 진실을 찾아 떠났던 외로운 양 한 마리였다.
진실은 뼈가 아플 정도로 힘들다. 처음에 내가 마주쳐야만 했던 진실은 두 눈 뜨고 마주하기가 힘들었다. 피하고만 싶었다. 하지만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것이었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온 마음과 온몸으로 아프고 힘들게 겪어내야만 했다. 매번 도망치고 싶고 묻어두고 싶었지만, 이번만큼은 도망가지 않겠노라고 스스로를 세우고 또 세웠었다. 결국 부모교육에 참여하는 2년여 시간을 잘 견뎌냈고, 그 끝에서 내가 가진 선함과 행복,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평화와 기쁨, 진정성을 느끼는 귀중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다. 진정성을 향해 가는 길목, 그 길목에서 아프지만 나는 나의 진실과 마주할 수 있었다. 내가 나다워지는 방법도 발견했다. 엄마, 아빠가 먼저 행복해져야 좋은 엄마, 좋은 아빠도 될 수 있다. 스스로 내 마음 안에 머무를 수 있을 때 상대방의 마음 안에도 머무를 수 있다.
흘려버릴 고통은 흘려버려야 했다. 나는 언제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느낌을 느꼈던가? 나는 언제 내 감정에 머무르며 진정 행복하다고 느꼈나? 이 순간만큼은 나는 나에게 묻고 또 물었다. 내가 나 자신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남편과의 관계도 회복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내가 먼저 행복해져야 다른 사람에게도 최고의 선물을 줄 수 있다. 이혼 대첩 중이었던 우리 부부가 각자 자 안에 머무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진정 사랑한다면 사랑의 방법 또한 사랑이어야 한다.
행복이라는 목적에 맞지 않는 방법과 수단은 불행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사랑의 목적과 수단이 같고, 목적에 맞는 행동을 한다면
진정한 사랑에 이를 수 있다.
그동안 내가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저질렀던
잘못된 수단과 방법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남편과 아이들, 가족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방법은 그 정반대 잘못된 길에서 헤매고 있지는 않았는지
뼈아픈 후회와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치매와 망령은 그 사람이 가진 가장 큰 진실을 보여준다고 한다. 노년에 자살률이 높아지는 것도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 모르고 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뇌손상 치매는 고칠 수 없는 병이지만, 심리적인 치매는 상담을 통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나는 내 마음을 얼마나 알고 살고 있는지 묻고 또 묻는 시간이 이어졌다.
우울과 분노는 서로 다른 이름의 쌍둥이라고 불린다. 우울과 분노는 한 몸일 때가 많다. 나 또한 우울함과 분노를 동시에 경험한 적이 많아서 너무나 이해되는 말이었다. 우울증이 심하면 기억력도 떨어지고 치매도 급격하게 올 수 있다. 면역력도 떨어진다.
아동기의 산만함은 사춘기의 분노로 이어지지만 중년에 이르러서는 우울함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많은 학자들이 경고하고 있다. 피곤할 때 쉬고, 쉬고 싶을 때 쉬는 것도 정서적인 능력이다. 우울함이 찾아오는 중년에는 ‘내가 나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지상 최대 과제를 성실하게 수행해야만 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원인보다 더 큰 결과는 없다. 나는 콩을 심으면서 팥을 원하고 팥을 심으면서 콩을 원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나도 내 마음속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고 사랑이라는 열매를 꽃피우며 살고 싶다. 목적과 수단 모두 제대로 된 사랑을 하며 살고 싶다.
누군가가 내 말을 마음으로 들어줄 때 힘이 난다. 나는 누구의 말을 진정으로 듣고 있나? 또 나는 누구에게 진심으로 내 말을 들려주고 있었나? 긴긴 물음표와 느낌표의 순간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