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책 데이트] “로맨틱 러브에 대한 융 심리학적 이해 We"를 읽고
로누아의 왕자 트리스탄은 태어나기 이전에 아버지를 잃었고, 어머니 그를 낳고 얼마 안 있어 죽었다. 콘월의 왕인 백부 마르크 밑에서 지식과 용맹을 겸비한 기사로 성장한 그는 아일랜드의 거인 몰 홀트를 쓰러뜨리고 국난을 구했다. 백부의 아내가 될 미녀를 찾아 아일랜드에 가서 용을 퇴치하고 왕녀 이졸데를 데리고 개선하는 도중, 해상에서 시녀의 실수로 마르크와 이졸데가 마셔야 할 '사랑의 묘약'을 마시게 되고,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관계를 맺는다.
어느 날 이 일이 발견되어, 두 사람은 처형을 피하여 깊은 숲 속으로 도망쳤으나 3년 뒤에 왕과의 화해가 성립되어 이졸데는 궁정으로 돌아오고 트리스탄은 추방된다. 트리스탄은 연인을 잊을 수 없어 병상에 눕게 되며, 연인을 데리고 올 사자(使者)를 보내 놓고 그녀의 도착을 기다리면서 마침내 숨을 거둔다. 그가 죽은 직후에 이졸데는 도착하지만 그녀도 슬퍼한 나머지 죽고 만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신화는 12세기 유럽에서 ‘로미오와 줄리엣’등 수많은 낭만적 사랑의 원형이 된 이야기다. 어쩌면 오늘날 길거리를 차고 넘치게 흘러나오는 연인들의 사랑 노래도, 이별의 아픔과 상처를 다루는 노랫말도, 신문 메인을 장식하는 엇갈린 사랑도,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하는 영화 대사도, 기승전결(起承轉結) 연애와 결혼을 목표로 하는 드라마의 그 뻔한 결말도 모두 트리스탄과 이졸데 신화를 닮아 있다. 온 나라 온 국민이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사랑의 묘약을 마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사랑에 빠지지도 않았고 죽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녀의 실수로 잘못 배달된 사랑의 묘약을 마셨다 해도, 그 둘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그 길로 접어들었고, 빠져나오지 못하는 영혼의 죽음에 갇혀버렸다.
우리 부부도 엇갈린 시간과 밀고 당기는 사랑의 교신을 나누다 사랑에 빠졌다. 남편과 나는 대학 때 연합 동아리 대표와 선배로 첫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4년이 흐른 어느 날 직장 선후배 관계로 다시 만났다. 훗날 애 낳고 살게 될 끈질긴 인연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누군가 타놓은 ‘사랑의 묘약’을 실수로 함께 마셨고, 콩깍지가 서로의 눈에 쓰인 줄도 모른 채 사랑을 나눴다. 그렇게 낭만적 사랑의 각본대로,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이라는 목표지점에 다다랐다.
그러다, 결혼해서 애 둘 낳고 살던 10년 차, 다시 이혼을 생각했다. 이대로 사는 것이 행복한가 하는 인생 중간 항로에서 시작된 물음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물음에 나는 제대로 답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칼로 물 베기 부부싸움을 하며 지금도 여전히 계속 싸우고 화해하고 있다. 어떤 날은 흐리고 또 어떤 날은 맑았던 부부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보고 싶다. 정해진 답은 없다. 부부라는 인연을 붙들고 있는 한, 그저 3한4온의 날씨 그대로 부부의 온도를 찾아 흔들려보고 싶다.
부부라는 공동 운명은 어찌 보면 돌이킬 수 없는 묘약을 마셔버린 상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낭만적 사랑은 없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죽어서 사랑 이후의 삶을 잘 모르겠지만, 부부들은 안다. 뿌옇고 몽환적이었던 사랑의 안개가 걷히면 상처 투성이 마음들과 검버섯이 피어오르고 민낯이 드러난다. 축 저진 뱃살과 이마 주름, 찡그린 두 눈, 핑계 대며 뒷걸음치는 사람을 매일 마주해야 한다. 겪어내야 한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내야 한다. 이것이 부부의 실제 삶이다.
젊은 날 내가 꿈꾸고 사랑했던 내 사랑은 더 이상 현실에는 없다. 슬프게도 그것은 이제 꿈속에서나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랑이 누군가의 눈을 멀게 하고 죽음에도 이르게 한다. 그 사랑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투사(投射)와 콩깍지로 점철된 젊은 시절 낭만적 사랑이라는 희미한 안개는 걷혔다. 이제,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을 바라보게 되는 중년의 진짜 사랑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