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하루,나를 위한 시간은?

[부부 책 데이트] 도리스 레싱, 19호실로 가다

by 써니B


두 마리 샴 고양이가 보일러 배선이 깔린 따뜻한 자리를 기가 막히게 찾아내 늘어지게 나른하고 달콤한 잠을 자고 있는 거실. 노트북을 찾아 나만의 공간을 찾아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그래 이곳에서 뭐라도 한 줄이라도 쓰자.


오늘은 오후 늦게 시작하는 직장 반차 휴가를 쓴 날이라서 가볍게 오후 5시간 일을 하고 돌아왔다. 아침에 학교와 직장에 가는 아이들과 남편을 챙기며 후다닥 식사를 챙기고 나는 나만의 시간을 보냈다. 결혼하기 전 나는 나만의 시간을 많이 가졌었다. 결혼하고 나서 나보다 먼저 챙겨야 할 아이들이 생기면서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직장일을 하면서는 더더욱 나만의 시간을 갖기 힘들었다. 그러고 보면 인생 중반 중년을 보내고 있는 나는 나만의 시간을 얼마나 가졌을까? 총량적으로 따지기는 힘들어도, 심정적으로는 나만의 시간을 보낸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 슬프지만 현실이다.


오늘 주어진 반차의 휴가동안 나는 나의 시간을 돌아보았다. 밥먹고, 치우고, 생리적 욕구를 해결하고, 씻고, 머리 감고 말리고, 화장하고, 옷을 차려입는 시간을 빼면, 온전히 나를 위해 보낸 시간은 책을 읽는 시간뿐이다. 그리고 이 밤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이 시간.


요즘 '혼자' 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에 주목하게 된다. 나 스스로에게, 나는 무엇을 원하고,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또 나는 어떨 때 화가 나는지 등등 묻는 습관이 생겼다. 의식적으로라도 나와 친해지려는 시도다. 유아기와 아동기를 빼곤 어른이 되어서 나에 대해 우선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어떤 면에서 나란 존재는 불쌍하기도 하고, 가엽기도 하다.


타인의 삶에 관심 갖기를 좋아했고 타인과의 교류와 관계가 우선이다 보니, 내 욕구, 내 관심, 내 사랑에 대해 항상 밀려나 있었다.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갖는 당연한 현상이기도 하지만, 요즘 나는 타인보다는 나 자신에게 우선권을 주기로 했다. 그러면서 조금 나와 더 친해지려고 한다. 게으르고 멍한 시간조차도 나의 마음, 나의 행동, 나의 의도이니 자책하지 않고 조금 놔두고 지켜보고 있다. 나의 무의식을 내가 해석하고 분석해보기도 한다.


수많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 얽혀 있어서 괜한 신경을 써야 하는 SNS를 정리한 이후, 내 삶은 많이 단순해졌다. 그 대신 요즘 유투브로 영상을 보거나 핀터레스트(pinterest)라는 어플로 내 관심 사안에 대한 이미지와 텍스트를 읽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 덕에 나도 방탄소년단에 입덕을 하게 되었고, 방탄소년단 노래와 가사, 영상을 꼼꼼하게 챙겨보는 40대 아미가 되었다. 스토리가 있는 아이돌이라 참 반갑다.


오늘 읽었던 책은 도리스 레싱의 단편소설 <19호실로 가다>이다. 참 기괴하면서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여성들에게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기도 하다. 네 아이, 넓고 큰 하얀 집, 지적이고 자상한 남편을 둔 수전은 가사노동과 안주인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가정부와 양육자를 고용한다. 바람을 피우는 남편을 알고도 묵인해가며 무미건조하게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우울증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면서도 조금씩 조금씩 자신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수전. 어느 날 낡은 호텔 한켠에 자기만의 방 19호실을 예약하게 되고 거기서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고 정기적으로 그 곳을 이용하게 된다. 물론 남편에게 돈과 허락을 받아서 말이다. 남편 매슈는 아내를 이해하는 척 하면서도 아내가 이용하는 호텔을 염탐하다 아내의 외도를 추측하게 되고, 더블데이트를 해보자는 제안에 이른다. 수전이 애인과 바람을 피우기 위해 호텔을 정기적으로 이용할 것이라는 남편의 추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지만, 수전은 호텔 19호실에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1960년대 영국의 평범한 중산층 지식인 부부가 선택한 방법이 기괴하고 극단적이긴 했지만, 2018년을 살고 있는 한국의 쓸쓸한 여성들의 삶이 고단하게 녹아있는 것 같아 그냥 넘어가기 힘든 부분이 많았다. 고립된 가사노동과 주부, 엄마, 가족의 굴레 한 가운데 놓여있는 여성의 삶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슬프기도 했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여성들의 삶 속에서 정말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나는 나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을까? 조금 더 나와 대화하고 나를 위로하고 나를 칭찬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다른 누구보다 더 열심히 살아온 내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제 찬찬히 나에게 악수를 건네고 보살피는 시간을 갖겠노라고 다짐, 또 다짐해본다. 나를 위한 유일한 사유, 쉼의 시간 독서와 글쓰기를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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