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적 필사] 투사는 무의식의 반영
투사는 정신이 가지는 기본 기제이며, 무의식적인 것은 늘 의식에 투사된다는 사실에서 나온 전략이다(‘투사 projection’의 어원은 ‘앞으로 던지다’라는 뜻의 라틴어다). 투사에 관해 융은 “투사가 일어나는 일반적인 심리학적 이유는, 무의식이 언제나 자신을 표현할 방식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했던 모든 일들을 곰곰이 들여다봐야겠다. 그것은 내면의 무의식적인 생각의 발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행해지는 많은 의식적 행위 안에서도 얼마나 많은 무의식이 작동하고 있었던 것일까? 무의식의 발현이 ‘투사’라면 우리는 거의 매일매일 투사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의 의식적인 행위 안에서도 잘 모르고 지나쳐왔던 나의 무의식을 들여다볼 시간을 마련해 봐야겠다. 그것을 하려면 마음 깊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려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여러 가지 가능한 투사 중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결혼, 부모 되기, 직업적 경력이라는 사회제도로 나타난다. 결혼이야말로 그 무엇보다도 많은 무의식의 짐이 얹힌 부분일 것이다. 결혼식을 올리는 부부 중 자신들이 결혼에 얼마나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는지 의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결혼생활에 대한 희망을 대놓고 외쳐대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내 삶을 좀 더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당신에게 의지하겠어.’ ‘당신이 내 맘을 읽어 내 모든 욕구를 미리 알아주길 기대하고 있어.’ ‘당신이 내 상처를 봉합해주고 내 삶의 모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길 바라.’ ‘당신이 날 완성시켜주길,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길, 상처 받은 내 영혼을 치유해주길 원해.’ 졸업식 축사에서 현실을 그대로 얘기할 수 없는 것처럼 결혼에 관한 숨은 진실도 주례사에서는 말할 수 없다. 결혼생활이 실패로 끝나는 이유는 대부분 이런 기대의 무게를 견뎌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결혼생활을 지속하는 사람들은 종종 이로 인해 심하게 상처 입는다. 로맨스는 현실과 동떨어진 상상의 투사를 먹고 자란다. 반면 결혼은 함께 생활하며 서로를 실제로 공유하는 일이다.
≫나는 여태껏 남편에게 연애의 환상을 결혼생활로 이어와서 계속적으로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연애와 결혼은 이렇게나 다른 상태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내가 너무 유아기적인 발상 안에 머물러 있었다. 상상을 먹고사는 연애, 현실을 공유하는 결혼, 두 가지 전혀 다른 상태를 하나로 엮는 어리석은 짓은 그만둬야겠다. 진정한 사랑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하다는 조관우 ‘늪’의 가사가 이 시점에서 이해가 된다. 사랑과 현실은 전혀 다른 부분이다. 나도 늘 사랑을 상상 안에서 꿈꿔오지 않았나. 현실을 부정한 채로 말이다. 상상은 상상을 만들어낸다. 너무나 많은 장치들을 상상 안에다 만들어놓을 때도 있다. 가끔은 돈 안 드는 현실 도피를 상상으로 하고 있긴 하다. 이제 에너지를 내 안으로 모아서 상상과 현실의 균형을 이루는 데 힘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