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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Mar 24. 2017

겨울의 아이들

서울여자 도쿄여자 #38

서울여자 김경희 작가님


서울의 아이들은 이 겨울을 어떻게 보내나요? 혹시나 학원에 다니고 있나요? 저는 사실 '한국'과 '아이들'이 두 글자를 보면 막연히 공부를 떠올립니다. 저는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어요. 하지만 저희집에선 아무도 저에게 공부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빠는 중학교 시절에 시골에서 서울로 유학을 한 사람이라서, 질리도록 공부를 했고, 그래서인지 자식들에겐 공부를 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공부 그거 잘 해봤자야. 그냥 정부가 원하는 사람이 되는 거야. 나라에 세금 많이 내는 거, 그게 다라고." 아빠의 지론은 그랬습니다. "숙제 하지마, 놀러가자!" 그래서 저는 숨어서 숙제를 하기도 했어요. 대신 아빠는 서재를 가지고 있었고, 저는 어릴 때부터 백과사전, 전집, 그리고 만화를 접하고 자랐습니다. 덕분에 이해력이 좋아졌는지, 어느 과목도 부진하지 않고 그럭저럭 따라가며 잘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의 저희집 아이들은 겨울 내내 일본 전통놀이를 즐겼습니다. 여름이 무척이나 더운 도쿄는 여름방학이 긴 대신, 겨울 방학은 성탄절부터 정월까지로 두 주 밖에 안 됩니다. 봄방학은 3월말에 두 주간이라서 한국처럼 길지가 않아요. 겨울 내내 학교에 다니죠. 도쿄의 겨울은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절대로! 없기 때문에, 아이들이 공부하는 기간은 여름이 아니라 겨울이 훨씬 깁니다. 초1인 저희 큰딸은 이 기간내내 학교에서 줄넘기를 배웁니다. 아침에 10분, 쉬는 시간에 10분씩 줄넘기를 시키는데,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엇갈아 뛰기도 하고 양발 뛰기, 한발 뛰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흡수력이 가장 좋은 시기에 일본은 공부보다는 체육에 중점을 둡니다. 매주 마라톤 주간이라든가, 수영주간이라든가 다양한 스포츠와 접하는 주간을 설정해둡니다. 겨울엔 주로 수영, 겨울엔 주로 줄넘기를 하지요. 그리고 겨울의 즐거움은 뜨개질과 실뜨기, 팽이치기, 연날리기, 겐다마(일본의 전통놀이), 오테다마(오 등으로 이어집니다. 


아이들은 수업 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 내내 이런 전통놀이를 익히며 지냅니다. 때론 수업시간에도 하고요. 한달에 한 번 보호자(학부모)를 모시고 수업 발표회를 하는데, 지난 2월의 수업 발표회에선 전통놀이를 보여주었답니다. 보호자가 온다고 어려운 문제를 내고 풀어보라고 하거나 하는 것은 없습니다. 보통은 놀이를 보여줍니다. 1월엔 연날리기를 보호자들과 함께 했고, 2월에는 서로 잘하는 전통놀이를 발표했습니다. 저희 아이는 오제미 2개를 던지는 저글링을 선보였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실뜨개, 팽이치기를 선보였고요. 


일본의 재미난 점은 같이 노는 부분보다 혼자 노는 부분을 중요시 하는 점입니다. 실뜨기도 둘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혼자 합니다. 혼자서 다양한 모양을 만들어서 보여준답니다. 저는 혼자하는 실뜨기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게 주가 되는 게 일본의 교육이란 사실에 조금 놀랐습니다. 독립성을 길러주는 것 같기도 하고, 실은 좀 외로워보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아직 20대 시절에, 캐나다에 어학 연수를 갔어요. 겨울이었습니다. 대학 부속 어학교여서 대학교 산하 동아리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댄스나 연극, 합창, 악기 등도 있었는데, 저는 '저글링'서클을 찾아갔습니다. 혹시 실크 드 솔레이유란 서커스 극단을 아시나요? 개성있는 음악에 맞추어, 같은 인간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극단입니다. 동물을 이용한 서커스가 아니라 오로지 인간의 몸의 최고,최대 상태의 아름다움과 엄청난 기능성을 보여주는 서커스 단체입니다. 이 실크 드 솔레이유는 바로 캐나다에서 태어났습니다. 춥고 추운 캐나다에서 그 긴 겨울을 서커스 연습을 해서 만들어진 극단이지요. 일본의 아키타에선 긴 겨울에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캐나다의 퀘벡에선 저글링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여하는 이 실크 드 솔레이유의 캐나다니까 당연히 저글링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헀어요. 몸치인 저는 몸을 잘 쓰는 일과 그런 사람들을 언제나 동경합니다. 저글링을 잘 해서 길거리에서 공연을 해보고 싶은 어마어마한 욕심과 네이티브와 영어 대화를 나누어 보고 싶은 마음에 감히 저글링 동아리를 찾아갔습니다. 동아리 코치는 저에게 공을 두 개 주었습니다. 그리고 벽을 보라고 했죠. 저는 그날 벽을 보고 공 두 개를 던지며 한 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그 후로 저글링 동아리를 찾아갈 때마다 공이 하나씩 늘었죠. 대화는 없었습니다. 모두가 벽을 보고 열심히 공을 던지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공 3개쯤은 자연스럽게 던질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되었지만,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꿈은 이루지 못했습니다.


초1. 아직은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단지 대부분 집에서 학습지 하나씩은 하는 것 같아요.  피아노와 댄스는 별개입니다. 대부분이 피아노를 배우고, 여자 아이들은 댄스 하나 정도 익히고 있습니다. 남자 아이들은 주로 축구나 야구를 합니다. 저희 딸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여름방학 전까지 매일 히라가나를 연습했고, 가을학기엔 가타카나를 배우더니, 이제 한자까지 쓴답니다. 글자를 하나도 모르고 입학했는데 이렇게 성장하다니, 시간의 흐름에 놀라움을 느끼며 더불어 아이의 성장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겨울, 집에서 아이와 실뜨기를 하는 날이 오리라곤, 어린 시절 엄마와 실뜨기 하던 저는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습니다. 실을 가져와 실뜨기를 하자는 아이를 보면, 그 어린 시절의 제가 생각나 살짝 웃음이 납니다. 겨울, 실뜨기의 기억과 저글링의 기억. 비록 웃음만 나는 기억이지만, 그 과거들의 그리움은 언제나 딸의 성장과 함께 되살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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