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끝낸 적은 없었다

몬트리올 이야기

by 기린

몬트리올,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젊고 예뻤던 그때,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연애를 시작했다.

토론토에서 만난 M을 따라 몬트리올로 이사를 가고 거기에 그의 친구들과 함께 사는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다.


그 사람은 따뜻했고 배려심이 깊었고 자연보호나 노인 공경 같은 도덕적 가치에 큰 의미를 두는 사람이었다. 일요일마다 조깅을 하면 꼭 쓰레기 봉지를 들고나가 공원에 있는 쓰레기를 두 봉지씩 모아 오곤 했고 아랫집에 사는 아흔이 넘은 할머니 자매들을 위해 드라이브웨이에 눈이 쌓이면 새벽같이 일어나 눈을 치워주기도 했다.


음향기술 쪽 일을 해서 회사 트럭을 종종 몰고 다녔는데 항상 음악 CD를 아주 두꺼운 케이스에 차곡차곡 정리해 들고 다니면서 차에서 음악이 끊기는 일이 없도록 했다. 팀 홀튼 커피는 언제나 엑스트라 라지 우유 2 설탕 1 (둘레 엉슉)였다.


3년이 넘게 만나도록 크게 싸운일은 많지 않지만 그가 친구들과 아이스 하키를 하러 갈 때 여자 친구를 데려가는 것은 안될 일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에서 의견 차이가 종종 발생했었다. 물론 다른 친구들 중에 여자친구를 데려오는 사람도 있어서 고집을 부려 10에 7번 정도는 따라갔었다.

아이스 하키를 하는 남자라면 여자친구에게 플레이를

꼭 보여주기를 추천한다. 볼 때마다 반해버린다.




그때의 우리를 아직도 우리라고 불러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결국 헤어졌다. 나는 직장 때문에 한국으로 그는 캐나다 고향으로 돌아갔다. 몬트리올에서도 한참 더 들어가는 캐나다 동부의 작은 섬마을. 가끔씩 찾아가기도 어려운 곳으로 더욱더 멀어졌다는 뻔한 이유로.


사랑을 끝낸 적은 없었지만 관계를 끝내기로 했다.

다시 만나고 싶다거나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건 아니었다. 한 가지 슬펐던 것은 지구 반대편 아주 멀리 작은 마을에 사는 그 사람과 나는 살면서 우연히 스쳐 지나갈 확률조차 없다는 사실. 일부러 연락하지 않으면 누구 하나 죽는대도 소식조차 들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우린 그 후로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오래도록 슬퍼했지만 이미 미련 없이 사랑했었기에 어쩐 일인지 한 번도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동결건조. 이제 와 생각해보니 시들어버리지 않은 채 남은 사랑은 동결건조 되어 냉동실 구석 어딘가에 보관되었던것 같다. 더이상 싱싱하진 않지만 오래 보관해도 썩지 않는 상태로, 언젠가 꺼내게 된다면 본래의 맛과 색을 제법 온전히 짐작해 낼 수 있게되는 상태로.



그렇게 15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고 얼마 전 우연히 몬트리올 맛집 사진 같은 것이 인스타그램에 뜬 것을 보다가 묻혔던 기억이 새록 떠올랐다. 티끌에서 시작한 간지러움은 마치 알레르기 반응처럼 급속도로 부풀어 올라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커져버렸다. 나도 모르게 페이스북을 뒤져 그 사람을 찾아내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름만 쳐도 바로 나오는 그 사람을 어떻게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찾아보지 않았을까 하는 것.


얼핏 보니 나의 딸과 비슷한 또래의 딸이 있는 것 같았다.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딸바보 아빠가 된 것 같은 사진을 보고 있자니 나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15년이 지나 각자의 가정이 있고 자녀가 있고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있고, 그렇다면 이제 안녕이라고 생사확인차의 안부 정도는 전해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내 남편이 만난 적 없는 스물두 살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과 나의 젊은 날을 추억하고 싶었는지 이미 안녕이라고 메시지는 보내졌다. 후회할 새도 없이 답장이 왔다. “Hey Aniang!! 나 너를 찾아보려고 노력했었는데 못 찾겠더라 페이스북 안 해? 진짜 반가워. 페이스타임 할래?”


이때부터 나는 당황했다. 얼굴을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기분과 함께 한쪽 머리로는 막상 얼굴을 보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거울도 봤다. 자려고 누워있던 자정 근처의 시간이니 안 그래도 푹 퍼진 얼굴이 더욱 말이 아니었다. 사실 몰골이 제법 예뻤다고 해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을 거다.

대체 무슨 생각이란 말인가? 유부남인 전 연인과의 페이스타임이라니? 사랑을 끝낸 적 없었던 사이라서 였을까 꽤나 죄책감 같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 봐야 지구 반대편에 있는 어떤 사람의 얼굴 좀 마주 보는 일일 뿐인데도 이래도 되는 걸까 라는 의심이 들었다. 그보다도 추억을 망칠까 두렵기도 했다. 그 사람이 웃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는데 막상 얼굴을 보고 나면 묻힌 감정들이 다시 휘저어질까 무서웠다. 얼마큼 더 싱숭생숭해야 다시 가라앉을 감정들 일지 가늠도 할 수 없었다. 15년도 넘은 시간을 뛰어넘어 이렇게도 해맑게 내 얼굴을 보자고 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우린 얼굴을 보지 않았다.



서로 생사를 확인한 것에 기뻐했고 그는 곧 내가 엄마라는 걸 알아봤고 각자의 딸들이 같은 나이인 것에 신기해했고 아이들이 얼마나 예쁜지 감탄했다. 나는 그저 그 사람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에 흐뭇했고 마음이 따뜻해졌고 아직 한국 인사말을 잊지 않았던 것에 감사했다.


어쩌면 그 사람을 마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친 것 인지도 모른다. 헤어짐을 통보하는 마음의 무게와 같았다 페이스타임을 하지 않겠다고 한 내 대답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 길을 가다 우연히 그를 마주 칠 일이 있다면, 결국 눈물이 나고 말것이다.

미뤄왔던 사랑의 끝을 담은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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