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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ros Jan 15. 2022

달걀말이 장인까진 아니더라도

나는 요즘 매일 아침 달걀말이를 만들고 있다

지금의 와이프와 연애하던 시절, 마음을 얻기 위해 그녀를 혼자 사는 집으로 초대해서 맛있는 한식을 대접한 적이 있다. 어떤 반찬을 만들지 고민하다 결국 고른 음식 중 하나가 계란말이였는데,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계란말이 전용 프라이팬까지 사는 정성을 보였다. 나는 뭔가에 꽂히면 끝까지 파고드는 성향이 있다는 걸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같이 사는 와이프가 말해줘서 알았다. 단점은 열정이 빨리 식는다는건데 그걸 유지하는 게 나에게 어떻게 보면 평생 과제다. 지금 생각해보니 사랑에 대한 열정이 참으로 대단했구나 싶다. 여튼, 와이프는 그때 내가 쏟은 정성에 '이 정도 정성을 보이는 사람과는 결혼해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정성이 들어간 계란말이는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다. 그녀는 요즘은 왜 예전처럼 안 해주냐는 불만을 가끔 입 밖으로 내뱉곤 한다. 결혼하더니 사랑의 크기가 변했다면서…ㅋ


계란말이는 굉장히 정성이 필요하면서도 어떻게 보면 저렴한 재료 가격에 그럴싸한 모양새를 갖춘 요리를 내놓을  있으니 분명 매력적인 음식이다. 처음이 굉장히 중요하다. 계란물을 처음에 제대로 말지 못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우유를 조금 섞으면 폭식함에 더해지고 거름망 채에 거르면 한없이 부드러워진다. 불은 중불 내지 약불로 해야 한다. 강불은 절대 금지다. 먹는 사람을 생각하며 정성에 정성을 가미해야 한다. 계란 후라이나 스크럼블과는 차원이 다른 요리다. 계란말이 그거 대충 계란물 만들어서 몇번 접으면 되는  아니냐는 말을 들으면 솔직히 화가 난다. 숭실대 앞에는 김치찌개와 계란말이를 무척이나 잘하는 집이 있었는데  없던 학생 시절 그곳에서 저렴한 김치찌개와 계란말이 하나 시켜놓고 친구들과 소주를 주구장창 먹었던 추억이 있다. 아직도  집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가게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다.

 


여하튼, 요즘 사람들이 하도 살 빠졌냐는 얘기를 많이 해서 살을 찌우는 중인데, 살이 찌려면 아침을 거르면 안 된다는 영상을 유투브에서 우연히 봤다. 그 후로 아침을 먹기 싫어도 꼬박 챙겨 먹는데 그때마다 계란말이를 같이 곁들여 먹는다. 아마 요즘 재택을 하니 이런 여유가 생기지 않나 싶다. 혼자살 때 느꼈던 요리하는 즐거움을 오랜만에 느끼고 싶기도 하고 계란말이를 잘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갑자기 나도 모르게 생겼다. 백종원의 레시피를 찾아보고 유투브에 계란말이를 잘하는 방법에 관한 영상은 전부 찾아봤다. 일단 많이 만들다 보면 경험이 쌓여서 어느 정도 수준에 다다르지 않을까 라는 결론을 냈다.


처음에는 기름을 많이 둘러서 기름을 머금은 계란말이가 되었고, 그다음 날에는 계란말이에 압력을 가해서 너무 퍽퍽한 계란말이가 되었다. 그렇게 연습을 거듭한 끝에 어느 정도 모양과 맛을 내는 계란말이를 만들게 되었다. 그런 계란말이를 아침에 먹으면 하루종일 기분이 좋다. 이게 생각보다 적지 않은 기쁨을 선사한다. 소확행이 바로 이런걸 말하는건가. 잘할  있는 음식이 하나 늘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과연 나는 언제까지 아침에 계란말이를 만들고 있으려나. 나도  모르겠다. 계란말이가 질리면 그만하지 않을까 싶은데 요즘 만드는 계란말이는 맛있어서 그런 날이 한동안은 오지 않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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