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살던 건물에 불이 난 적이 있다. 일요일 아침 7시, 웬만한 이들은 자고 있을 시간이었고, 나도 밤새 중요한 발표를 준비하다 까무룩 잠든 참이었다. 동생과 같이 살았기에 망정이지, 까딱하면 자다가 질식사할 뻔했다. 바깥이 수선스러워 잠에서 깬 동생은 곧 상황을 파악하고 “언니! 일어나! 불났어, 나가야 돼!”하고 나를 깨웠다.
갑작스럽게 눈을 떠 정신이 없었던 내가 가장 먼저 감각한 것은 파열음. 어디선가 유리가 깨지는 소리였다. 바깥에서 누군가가 현관 문마다 쿵쿵 두드리며 “나오세요!” 외치는 소리도 들렸다. 그가 경찰이었다는 이야기는 나중에 들었다.
방문을 여니 거실 등 아래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 있는 게 보였다. 겁이 덜컥 났다. 여기 있기도 무서운데 나가기도 무서웠다. 불이 어디서 났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라서였다. 우리는 젖은 수건을 하나씩 들고 현관문을 열었다. 늘 보던 계단참이 있어야 할 자리는 까만 연기가 자욱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일상이 일상의 모습을 잃는 것, 그것이 공포였다.
연기를 헤치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먼저 나온 이웃들이 웅성거리며 서 있었다. 잠옷 바람으로 서로 안부를 물었다. 그게 우리의 첫인사였다. 다행히 불이 크게 나진 않아 다들 조금 놀랐을 뿐 무사했다. 그러나 그건 정말 무사한 거였을까.
엄마아빠도 아침부터 놀라 달려오셨다. 차 뒷자석에 앉아 고향 집으로 가는 길, 차창 밖 이팝나무는 왜 그리 하얗게 빛나던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자우림의 <봄날은 간다>, 그 노래는 왜 무심히 마음에 툭 떨어지던지. 살았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왜 그런 것들이 유독 눈에 들어왔던 건지.
무척 고단했지만 그 날 밤은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눈꺼풀 아래 연기 피어오르는 모양이 하얗게 아른거렸고, 잠들기 무섭게 파열음이 나를 깨울 것만 같았다. 한 달이 지나서도 이웃집 공사하는 소리에 놀라 자다 말고 방을 후다닥 뛰쳐나올 만큼 후유증이 남았다.
우리 건물은 그 날 뉴스에 났다. "오늘 오전 서울 어디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주민들이 황급히 대피했습니다."로 시작되는 건조한 뉴스에. 아무 생각 없이 보아 넘기던 뉴스였는데, 그 날 이후로는 그런 뉴스가 단조롭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같은 지구에 살지만 우리가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는 않다. 밟고 사는 기반이 어디냐에 따라 우리가 보는 세상은 전혀 딴판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시시콜콜한 타인의 삶을 다 알기엔 너무 바쁘고, 내 세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들여다볼 여유가 없다.
이 분주함은 현대 사회의 병폐가 아닐까. 우물에 독을 풀면 마을 사람들이 단체로 앓아눕듯, 우리 모두가 앓는 병. 시간 여유가 없는 물리적 상태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시간이 있어도 산란한 마음, 가만히 쉬는 법을 잊은 마음, 멀거지 앉아있을 수 없는 마음, 그래서 반경 얼마 바깥의 이야기에는 도무지 귀를 기울일 수 없는 마음 상태다. 우리 잘못이라는 건 아니다. 우물에 독을 푼 사람이 잘못이지 독이 든 물을 마신 사람이 잘못한 건 아니니까. 그러나 언제까지 이렇게 앓아야 할까?
아무 생각 안 하고 그냥 살아가는 것만도 벅차지만, 시험을 잘 보면 되니까 혹은 통장에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오고 있으니까 괜찮아, 생각하지만… 정말 괜찮을까? 지금의 이 ‘괜찮음’, 꾸역꾸역 찾아 헤매는 그 안정감은, 사실 정말 ‘감感’에 지나지 않는다. 그냥 나만 잘 지내면 될 것 같다고 안정감을 찾아 허우적거릴 때, 되새겨야 할 것이 있다.
당신의 세상은 불안하다. 당신의 세상을 이루는 그 ‘안정감’은 더없이 연약하여 언제 어떻게 깨져도 놀랍지 않다. 지금도 무수하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당신은 아마 오늘 아침 뉴스에서도 그런 소식을 하나쯤은 들었을 것이다. 너무 잦아 웬만해선 뉴스에도 나지 않는 교통사고 소식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디선가 일어난 화재나 홍수, 질병, 살인과 강간, 혐오와 범죄, 내전과 국제전… 같은 것들.
그 뉴스 당사자들 또한 얼마 전까지 당신과 별반 다르지 않게 생각했을 것이다. 내일도 오늘처럼 무탈하게 흘러갈 거라고, 그렇게.
그들에게 그런 내일은 없었다. 보다시피 그들은 뉴스 속의 누군가가, 익명의 누군가가 되었다. 때로는 모자이크 된 얼굴로 울음을 토해냈고, 때로는 그럴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당신이 때로는 안타까워하고 때로는 분노하며 또 때로는 무관심하게 바라본 그 소식들을, 그들도 한때는 제삼자로서 먼발치서 바라보았을지 모른다.
당신이 그 사건 중심으로 끌려들어가지 말란 법은 없다. 지극히 단순하고 당연한 사실이지만 이 사실을 당신은 잘 생각하지 않는다. 차라리 외면하는 게 마음 편하다. 그래서 언제나 별처럼 빛나는 몇몇을 제외하면 대개 연대는 유사 경험을 가진 자들의 몫이었다. 어떤 이들은 아예 역방향을 택했다. 무력을 내세우기만 하면 문제가 모조리 해결될 거라고 믿는 이들, 작은 차이를 이유로 사람을 쉽게도 죽이던 이들이 그랬다.
그 모든 시간, 당신은 제삼자로서 있었다. 모르겠다. 가끔은 몰래 제2, 제3의 가해자가 되었을지, 또 가끔은 누군가를 이해해 보려 애썼을지. 그러면서 당신의 세상은 조금씩 넓어져 갔지만 그래도 여태까지 무사했던 당신은 언제나 제삼자였다.
당신은 나다. 내가 당신이다. 애매한 자리에 서서 안정적인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그저 맛있다는 식당에 찾아가 한참을 줄 서고 친구와 잔을 부딪고 몇 마디 상투적인 위로를 건네고 그렇게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평범한 오늘을 보낸 당신이 나다. 그렇게 내가 조금은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는 자기애에 적당히 안주하지 말자고, 혹여나 내가 그렇게 살 때면 다시 나를 끌어내자고, 나는 내게 힘주어 말한다. 당신의 세상은, 불안하다.
내일부터 하루 하나씩 이름들이 찾아옵니다.
불안을 그리고 우리를 일깨우고 다잡는 이름,
살아남거나 살아남지 못한 그 이름들의 목소리를
함께 들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