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묵은 괴물이 저지른 살인
어느 날 인도 친구들의 SNS에서 낯선 해시태그를 보았다. #JusticeForAsifa, 아시파를 위해 정의를 부르짖는 해시태그가 타임라인에 가득했다. 아시파는 누구일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는 걸까. 낯선 이름이었지만 낯선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시파는 인도 북부 카슈미르 지역에 사는 여자아이‘였’다. 카슈미르 지역은 히말라야 산줄기에 기대고 있어 스위스 뺨치게 아름답다는데, 관광객으로 방문하기는 쉽지 않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 다시 말해 힌두교와 이슬람교가 알력 다툼을 하다가 멈춘 경계선이라, 언제나 일촉즉발 상태로 두 나라가 아슬아슬 머리를 맞대고 있어서다. 요즘 자꾸 불거지는 중국과의 영토 분쟁도 바로 이 근처다.
카슈미르부터가 불안정의 대명사 같은 곳인데 아시파는 그중에서도 지역에서 소수인 이슬람교도, 게다가 유목민이다. 자주 비웠을 아시파네 집은 방도 하나뿐이고, 30분은 걸어야 포장도로가 나올 만큼 외딴 곳에 있었다.
고작 8살이지만 아시파도 일손을 거드는 게 일상이었을 것이다. 아시파가 숲에 있던 말떼를 데리러 나선 어느 날, 말들은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시파는 싸늘한 시신이 될 때까지 돌아오지 못했다. 2018년 1월 10일, 새해의 기쁨이 가시기도 전이었다. 불안해진 어머니는 남편에게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이웃들과 같이 아이를 찾아 나섰다. 랜턴과 도끼를 들고 밤새도록 숲을 뒤졌지만 아시파를 찾지 못했다.
이틀이 지나고 12일.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시큰둥했다. 어떤 경찰은 아시파가 남자랑 도망간 거 아니겠냐며 이죽거렸다. 이 소식을 들은 유목민들은 즉각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였다. 이런 발빠른 예감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다. 이들은 지체해서는 안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카슈미르 주민이었고 소수자였으므로, 주변의 적대감 속에 살았으므로 이들에게는 체득한 감각이 있었다. 결국 연신 건성이었던 경찰 두 사람이 떠밀리듯 수색에 나섰다.
실종 5일차. 아시파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누가 봐도 자연사는 아니었다. 다리는 부러졌고 팔에 멍울이 가득했다. 죽기 전까지 지독하게 짓밟힌 흔적이었다. 어머니에게는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모습이겠지만, 그는 언론 앞에서 아시파의 시신 상태를 문장으로 엮어 이야기했다. 그래야만 했다.
시신이 발견되고도 11일이 지나서야 조사 팀이 꾸려졌다. 조사 팀이 밝힌 사건 경위는 참담했다. 범인들은 무슬림이었던 아시파를 힌두교 사당으로 납치해 갔다. 아이에게 약을 먹여 의식을 잃게 만들고, 며칠 동안 강간하고 상해를 입혔다. 직접적 사인은 목을 조른 것이었지만, 사망을 "확실히" 하기 위해 돌로 머리를 내려친 자국도 발견되었다.
범인의 정체는 더 끔찍했다. 힌두교 사제가 주동자였다. 체포된 사람은 총 여덟 명이었는데 친구와 아들, 조카까지 있었고 그 조카는 미성년자였다. 사건 초기 유목민들의 시위에 등을 떠밀려 수색을 시작했던 경찰관 중 한 명도 가해자라서 더욱 소름끼친다. 이들은 모두 “인도 사람은 모두 힌두교여야 한다”는 힌두교 극단주의자들이다. 현 여당인 인도국민당(BJP)과 궤를 같이 하는 색깔이다.
수사 과정은 축소와 은폐 그 자체였지만 그럴수록 사건은 커졌다. 불씨를 당긴 건 오히려 힌두교 극단주의자들이었다. 인도국민당 소속 정치인들이 피의자 지지 집회에 나섰고, 나렌드라 모디 수상의 발언도 구설수에 올랐다. 2012년 델리의 버스에서 대학생이 윤간당했을 때 “국민회의당이 델리를 ‘강간의 수도’로 만들었다”고 당시 여당을 꾸짖더니, 본인이 여당이 되자 “강간을 정치와 연결짓지 말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한 술 더 떠서 “국민회의당에 묻고 싶다. 다른 지역에서 불가촉천민 아이가 강간당할 때는 왜 촛불을 들지 않는가?”고 했다.
제 식구 챙기기 급급한 모습에 사람들은 분노했다. 4월쯤 되었을 때 이 사건 소식은 인도 전역에 퍼졌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 같은 유명인들도 침묵하지 않고 함께 목소리를 냈다.
“여성에게 정의로운 세상을 원한다면 이번 사건 가해자들과 그 옹호자들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자베드 악타르Javed Akhtar, 시인)
“약에 취하고, 납치 당하고, 며칠 동안 윤간당하고 살해된 8살 아이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생각해 보세요. 아이가 느꼈을 공포를 모른다면 인간도 아닙니다. 아시파를 위해 정의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당신을 어디에 속한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요.”
(파르한 악타르Farhan Akhtar, 영화감독)
“어린이는 카스트, 피부색, 종교와 상관없이 사랑받아 마땅합니다. 강간범은 카스트, 피부색, 종교와 상관없이 처벌 받아 마땅하고요.”
(아유슈만 쿠라나Ayushmann Khurrana, 배우)
“8살짜리 아시파가 겪은 공포를 생각하면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차마 할 말이 없습니다. 인간성을 살해한 거예요. 정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비렌더 세와그Virender Sehwag, 크리켓 선수)
#JusticeforAsifa라는 해시태그로 온라인이 들썩거렸다. 그러나 이는 아시파 혼자만의 이름이 아니다. 작은 아이를 짓밟은 이 사건은, 인도와 파키스탄이 성립된 이래 계속된 종교 분쟁 잔혹사의 다른 이름이다.
인도는 독립기념일도 우리 나라 광복절과 같고, 시기도 1940년대로 비슷한 즈음이다. 그 전까지는 당연히 한 나라였던 우리와 달리, 인도는 식민지배 전까지 제각각의 도시국가였으므로 ‘하나의 인도’까지 진통을 겪었다. 혼란은 당연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인도를 표현하기에 혼란이란 단어는 너무 조용해 적절치 않다. 그만큼 첨예했고 잔인한 세력 다툼이 이어졌다.
가장 크게 부각된 차이는 종교였다. 시크교, 불교, 기독교, 파시교 등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인도에서 종교를 관점으로 사람을 나눈다면, 피바람이 불 수밖에 없었다. 게중에 “당연히 힌두교를 중심으로!”를 외치고, 생각이 다른 이들을 모두 배제하려던 사람들이 있었다.
차이가 차별이 되었다. 피는 피를 부르고 복수는 복수로 이어졌다. 어제까지 이웃이었던 이들이 종교를 놓고 갈라서서 서로 죽이는 참상이 시작되었다. 살인과 방화가 곳곳에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방법으로 일어났다. 사람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개종하거나 피난길에 올랐다. 힌두 극단주의자들 눈에 차지 않던 마하트마 간디는 힌두교도였음에도 암살당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비극을 맞은 끝에 인도와 파키스탄이 나뉘었다.
양상을 달리할 뿐 종교를 내세운 분쟁은 오늘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지배층은 분쟁으로 지지층을 다지고, 결속이라는 미명하에 타인을 사지로 몰았다. 해묵은 방법이지만, 외부를 적으로 만드는 일만큼 내부를 단순하게 만드는 법도 없으니까. 카슈미르를 둘러싼 반목에는 이렇게 70년 동안 피를 먹고 자란 괴물이 도사리고 있었다.
아시파 사건에도 이 피가 축축하게 배어 있다. 경찰관들까지 가담해 범죄를 일으킨 것은 단순히 이들이 인두겁을 쓴 악마여서 그런 게 아니다. 이들은 70년 동안 웃자란 거짓을 먹고 살았다. 그래서 무슬림 유목민들이 이 지역을 떠나게 하려고 일부러 이런 짓을 저질렀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일종의 테러, 약자를 향한 혐오 범죄라는 거다.
그도 그럴 것이 무슬림 유목민들은 오랫동안 인근 주민들에게 눈엣가시였다. 주민 대다수가 힌두교도라 종교도 다르지만, 유목민들이 돌아다니며 물과 숲을 제 것처럼 쓴다는 게 주민들의 불만이었다. 실제로 피의자 변호인단이 “무슬림 유목민들은 우리의 숲과 수자원을 침해하고 있”다고 한 것도 이런 해석에 무게를 실어준다. 이 말에는 종교 분쟁의 핵심 이유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종교 뒤에는 정치가, 정치 뒤에는 돈이 있다.
그래서 힌두 극단주의자들은 아시파의 마지막까지도 곱게 보내주지 않았다. 유가족은 부족 장지로 사 둔 땅에 아시파를 묻어주고자 했지만, 먼저 도착해서 버티고 있던 힌두교도들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이들은 무력행사를 하겠다고 협박했고, 끝내 유가족은 그 땅에 아시파를 묻지 못했다. 아시파뿐 아니라 그들도 집을 두고 떠나야 했다. 그들 또한 살해 위협을 받고 있었다.
지금도 카슈미르에 살고 있는 무슬림 유목민들, 인도 구석구석의 또 다른 부족민들은 은근한 공포를 어깨에 얹고 살 것이다. 알게 모르게 아이들 동선을 한 번씩 더 확인하고, 일상에서 숨을 죽일 것이다. 가해자들이 노린 게 바로 이것이다. 종교적으로 소수이고 카스트로 보면 더 낮은 사람들, 그들이 만만하게 보는 사람들에게 날리는 경고장이었다. 아시파의 죽음은 아시파만의 죽음이 아니다.
유가족은 지루한 싸움을 계속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2019년 6월 판결이 났다. 3명은 종신형, 3명은 증거 인멸로 5년 형, 1명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2019년 인도국민당은 또 한 번 총선에 승리했다. 이따금 바람결에 흉흉한 소문이 들려온다.
과연 #JusticeforAsifa, 아시파를 위한 정의는 이루어졌을까? 8살 어린아이를 집어삼킨 70년 묵은 괴물과 그 하수인을 자처하는 범죄자들이 처단되고 다시는 누구도 감히 그런 짓을 벌일 엄두를 못 낼 때, 그 순간을 우리는 정의라 부를 것이다.
*중간에 삽입된 이미지는 글 속의 사건, 인물과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