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되어 묻힌 아들
김희윤이라는 이름은 낯설다. 당연하다. 그는 살아생전 어떤 업적도 남긴 적이 없으므로. 그 이름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생이 아니라 죽음 때문이다. 조선의 여느 양반 댁 자손들처럼 그도 축복받으며 태어나 자랐겠지만, 결국 죽음으로만 이름을 남겼다. 그 죽음을 새겨 오늘까지 전해준 것은 그의 어머니였다. 당대 최고의 문인이었던 허초희다. 여성 이름을 부르지 않는 당대 예절로 인해 우리에겐 허난설헌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난설헌 허초희의 생애를 들으면 누구나 그 인생에 닥친 비극을 한탄할 것이다. 허난설헌의 아버지 허엽은 서경덕 문하에서 공부한 동인이었는데, 동인 중에서도 손꼽히는 인물이었다. 본인의 글재주는 물론이고 네 자녀 허성, 허봉, 허초희, 허균 모두 글재주가 좋았다. 이들을 5문장이라 불렀다는데, 지금도 생가 터에는 시비 다섯 개가 나란히 서 있다. 허엽은 당대에도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지만, 그의 호인 “초당”이 순두부 앞에 붙어있는 걸 보면 생각보다도 우리와 가까운 인물이다.
허엽은 집안 모두에게 글을 가르쳤고 허초희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때 스승으로 온 이가 이달이었는데, 이달은 서자, 첩의 자식이었다. 어중간한 신분이었으나 이달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평생 부평초처럼 떠다녔다. 자유분방한 가풍과 스승 아래서, ‘반反’을 허하지 않는 조선 사회에 잘 맞지 않는 인물들이 자라났다. 막내 허균이 <홍길동전>으로 유토피아를 꿈꾼 것만 봐도 여간한 이들은 아니다.
이들은 모두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율곡 이이를 탄핵하다 유배 길에 오른 허봉이나 왜란 중에 사망한 허엽까지야 그렇다 치더라도, 진위야 어떻든 역적 이름이 붙어 능지처참으로 사망한 허균을 생각하면 참담하다. 1년 앞서 시집에서 세상을 뜬 허초희 이야기까지 듣고 나면, 집안에 무슨 마라도 꼈나 싶다.
허초희는 8살 때 지은 시로 신동 소리를 들었고, 그가 지은 시는 중국까지 흘러가 여러 사람 입에 오르내리며 사랑받았다 한다. 특히 유선시(遊仙詩)로 유명했다. 신선이 노니는 도교적 세상이 얼마나 환상적인지, 그의 시를 읽다 보면 허초희의 마음이 궁금해진다.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색채가 펼쳐졌을까. 얼마나 자유로운 동물들이 뛰놀며, 얼마나 아름다운 선녀들이 세상을 주사위판 삼아 노닐었을까.
그러나 넓고 푸른 상상력은 곧 힘을 잃었다. 유선시를 쓰던 사람이 불과 몇 년 후 규원가(閨怨歌)를 쓰고 있다. 신선 세계를 노래하며 구슬 같은 시를 짓던 이가 “버들잎 돋는 계절 아름다운 경치를 보아도 아무 생각이 없다”라고 한탄하기까지, 허초희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정확한 사정은 당사자들만 알겠지만, 후대에 조각조각 남은 이야기만 들어도 시집살이가 녹록지 않았던 것 같다. 남편 김성립은 본인보다 글재주가 뛰어난 아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소인배였다. <규원가>에는 기방에 기생이 새로 왔다고 호사스러운 옷차림으로 나가는 남편 모습이 그려진다. 김성립뿐 아니라 시집 전체가 허초희를 고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 같다. 남편 비판조차 시를 써서 해내는 “잘난” 여자는 시어머니에게도 눈엣가시였다.
재능과 시상을 마음껏 펼칠 수 있던, 자유롭고 행복했던 친정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그리움은 곧 우울한 시름이 되었다. 아버지의 부고는 허초희의 어딘가를 무너뜨렸다. 거기다 자식들마저 앞세우고, 허초희의 세계는 날이 갈수록 서글퍼진다. 애기무덤 둘을 나란히 앞에 두고 시를 쓰는 심정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중략)
사시나무 가지엔 쓸쓸한 바람
도깨비불 무덤에 아른거리네
소지 올려 너희들 넋을 부르며
무덤에 냉수를 부어놓는다
알고말고 너희 넋이야
밤이면 서로서로 어울려 놀 테지
아무리 아해를 가졌다 한들
이 또한 잘 자라길 바라겠는가
부질없는 말 읊조리면서
애끓는 피눈물에 목이 멘다
할 말을 잃게 하는 시다. “아무리 아해를 가졌다 한들/ 이 또한 잘 자라길 바라겠는가”라는 시구가 자기실현적 예언이 되어버렸는지, 실제로 뱃속 아기까지 사산하고 만다. 줄줄이 이어지는 친정 식구들의 불행한 소식을 듣던 와중이었다.
날로 괴로워지는 속세가 아닌 어딘가 별천지를 배경으로 계속 시를 쓰던 어느 날, 허난설헌은 유언 같은 시 한 자랃을 남겨두고 세상을 뜬다. 스물일곱. 아직 젊은 나이였다.
碧海浸瑤海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靑鸞倚彩鸞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芙蓉三九朶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紅墮月霜寒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왜 하필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가 떨어졌을까. 동생 허균은 누나가 죽음을 예견하고 남긴 시라고 생각했다. 정확한 이유는 본인만 알겠지만 정말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한 죽음이었다. 그나마 허균보다 앞서는 바람에 동생이 능지처참당하는 꼴만은 보지 않았다는 게, 허균이 허초희의 시를 묶어 문집으로 만들 수 있었다는 게, 그렇게 조선 최초로 여성이 쓴 문집이 여기까지 전해졌다는 게 유일한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
조선에서 감히 꿀 수 없는 꿈을 꾸었던 허 씨 집안은 우리에게 그렇게 책 몇 권만을 남겨주었다. 이들은 모두 귀양 가고 객사하고 요절하였다. 짧고 불꽃같은 생애들이 그렇게 으스러졌다.
김희윤은 그런 상황에서 나고 자랐다. 짧은 생애 동안 그가 본 세계는 과연 유쾌한 곳이었을까. 갈등과 긴장이 지척에 도사리고 있는 세상, 가까운 이들은 떠나고 남은 이들은 무너지는 아픔이 숱하게 찾아오는 세상.
기쁠 희, 자손 윤. 분명 한 집안을 꽉 채울 만큼 큰 기쁨을 가져다주는 아이였을 텐데, 그 기쁨은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졌다. 아이가 일찍 세상을 뜬 건 인력으로 어쩔 수 없다지만, 그 짧은 생애를 메운 분위기를 그려 보면 과연 어른들 책임이 없다 할 수 있을까?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 주지 않는 아버지, 오히려 어머니를 찍어 누르는 할머니, 그리고 할머니와 아버지가 그렇게 행동하게끔 짜여 있었던 사회 구조. 어른들이 기쁘지 못한 세상에서 자손이 기쁠 수는 없다.
희윤보다 한 해 앞서 세상을 뜬 허초희의 딸은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는다. 희윤이라는 이름을 더듬어 그가 생전에 기대를 받는 아들이었을 시간을 상상할 수 있지만,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는 여자아이의 세상은 그려보기도 어렵다. 그저 희윤의 세상보다 더욱 잿빛이었으리라는 막연한 정도.
희윤의 비극이 우리와 무관하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과거지사일 뿐이라면 우리에겐 ‘경단녀’ 같은 단어가 없었을 테니까. 워킹맘이 되면 아이에게 나쁘다거나 일터에 민폐라는 식으로 근거 없는 손가락질을 하고, 전업주부로 육아를 전담하면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맘충” 소리를 해댄다. 남편보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면 “남편 기 죽인다”라고 수군거리고, 남편이 사회적으로 더 인정받는 경우에는 내조 잘하냐고 검열한다. 모순되고 비뚤어진 시선이 얼마나 많은지.
난설헌 허초희가 100명 있었다한들 모두 다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만 같은 사회에서, 여전히 많은 여성이 허덕이며 산다. 그것만으로도 끔찍하지만 이는 연쇄적인 아픔이다. 100명의 허초희 아래서 태어났을 희윤 남매들은 과연 행복하게 자랄 수 있을까? 결국 이건 모두의 아픔이다. 그걸 모르는 멍청이들만이 남 일 보듯 할 뿐.
슬프지만 그런 멍청이가 너무 많아, 우리는 적당히 넘기고 여전히 버티며 살고 있다. 그럴 때 먼저 넘어지는 건 언제나 약한 쪽이다. 김성립은 살아남았지만 허초희, 김희윤 그리고 이름도 기록되지 못한 작은 아이는 살아남지 못했다. 김성립이라는 개인은 그 후에 다른 선택지를 가질 수 있을지 모른다. 재혼을 하거나 제 생을 꾸려가는 게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흐름이 반복되다 보면 결국 김성립 또한 도태되고 말 것이다.
김성립 한 사람과 허초희 한 사람, 김희윤 한 사람과 또 하나의 작은 아이가 행복해질 때 이 굴레는 깨질 것이다. 더 이상의 희윤이 죽지 않도록, 더 이상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는 아이가 없도록, 더 이상 허초희가 절망으로 말라가지 않도록, 김성립은 멈춰야 한다. 상생은 모두에게 같은 양의 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식물의 상태에 맞게 물을 주는 것이다. 인간의 상생 또한 다른 것이 아니다. 잘못된 굴레를 깨고 희윤을 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