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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정 Nov 14. 2019

하나의 이름 뒤에서

Epilogue

  어린 시절부터 지금껏 작은 시골 마을에 살았다. 아빠의 고향이었고, 엄마로서는 만삭의 배에 나를 품고 이사온 후로 떠난 적 없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이웃들 근황은 거의 또 하나의 피부처럼 나를 감싸고 돈다. 엄마아빠가 두런두런 주고받는 대화를 듣다 보면, 다양한 아무개 씨들 근황을 듣고 있노라면, 불현듯 온 세상이 아득해지면서 내가 실은 한 편 소설 속 엑스트라였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만 같아질 때가 있다. 당장 <새의 선물>이나 <원미동 사람들>을 펼쳤을 때 그 안에 내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 말이다. 새로운 인물을 밀어넣는 걸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꽉 짜여 있지만 또 어렵지 않게 비죽 누구라도 끼워 넣을 수 있는 공간, 그게 지역사회였다. 촘촘하지만 탄력 있는 어떤 망으로 짜여진 공간이다. 그 망을 우리는 관계라고 부른다. 그 망 안에 속한 한, 온 마을이 나의 공용 공간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도시 생활을 시작했을 때, 작은 방 한 칸밖에 내어주지 않는 회색 도시가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아무 안전망 없는 세상에서 번지점프를 해야 하는 기분이었다. 당시엔 그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지 몰라, 괜한 것들을 주워섬겼다. 시골 양계장에서 직접 사오던 계란과 비교할 수 없이 보잘것없는 학교 앞 마트 계란, 너무 당연해 인식도 못하던 새 소리가 사라지고 초록색이라곤 보이지 않는 칙칙한 풍경, 뭐 그런 것들. 그러나 정말 내 도시 생활이 보잘것없다고, 칙칙하다고 느낀 건 그 때문이 아니었다. 꽉 짜여 있던 어떤 것이 사라진 곳, 나를 잡아주던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이제 내가 그 촘촘한 것을 처음부터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 자체가 퍽 당혹스러웠던 것이다. 그걸 뒤늦게야 깨달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 돌아와서야.


  하기사 고향에 돌아오고서야 뒤늦게 깨달는 건 그뿐이 아니다. 십년 가까운 시간 동안 비웠던 나의 작은 방 작은 책장은 그 시절에 멈춰 있다. 감기로 손발이 묶여 오랜만에 책을 읽으며 보낸 어느 휴일, 오래 전 독후감 숙제 때문에 그저 흐름만 파악하고 덮어두었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펴본다. 서문부터 마음을 턱 친다. 그때 그 중학생이 뭉턱뭉턱 읽고 이해하지 못했던 글귀는 전혀 다른 에너지와 결을 품고 오늘의 내게 흘러온다. 이게 이런 책이었구나.



  말해도 말할 수 없던 것들을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읽어도 읽히지 않던 것들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 변화는 어디에서 왔는지? 그 동안 내게 일어난 어떤 일들이 오늘의 나를 만든 건지? 또 나는 어디로 흘러갈지? 그 모든 자리마다 있는 사람은 나였지만 여전히 나는 대답할 말을 모른다.


  그저 한참 세상 곳곳을 나다니다 집에 돌아와서 맞은, 이 작고 나직한 날들이 감사하다는 생각만 겨우 할 수 있을 뿐이다. 어떻든 그간 보고 듣고 읽은 것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고, 그 동안도 오늘도 나는 무사했으니까. 무사하다는 말을 일상에서 꺼낼 필요가 없을 만큼 무사했으니까. 그러나 이곳이 안온하다 하여 이 무사함 안에만 머물면 고인 물은 썩고 말 것임을 안다.


  꽉 찬 휴지통을 비워내듯이 이제 시선을 들어올린다. 주변으로, 바깥으로. 이제 더욱 잘 보이는, 내가 아무 노력 하지 않고 얻었던 것들—평화라는 단어를 모르고 평화롭게 자란 어린 시절과, ‘자연 보호’나 ‘물 부족’ 같은 말을 학교에서 포스터나 표어 그리기 할 때나 대충 끄적거릴 만큼 늘 자연 속에서 풍요로웠던 모든 날들, 빛과 어둠을 물리적 단어로만 이해해도 되었던 그 모든 깜빡거리던 시간 같은 것들—을 당연스레 받지 못하고 사는 이름들을 생각한다.


  여기가 나의 출발점이다. 나는 이름들을 바라보며 나의 망을 짜내려가기 시작했다. 촘촘하고 탄력 있는 어떤 것이 되기엔 아직 한참 모자란 나의 망은 얼기설기 해시태그만한 크기에서 시작했다. 그래서 시작은 아시파였다. #JusticeForAsifa라는 해시태그를 보고 어딘가 쿵 맞은 것만 같던 그 순간 이 글은 시작되었다.


  가급적 21세기 위주로, 멀리 가도 20세기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름을 찾아 헤맸다. 어떤 이름들의 이야기는 오랜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그렇게 헤매며 찾아낸 이름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묶어 보면서 목차를 만들었다. 신문에 싣는다면 국제 면부터 사회 면까지 다양한 데 들어갈 내용들이 담겼지만, 그럼에도 다 담지 못한 이야기가 너무 많다.


  이름 하나만 내세워서는 기록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응당 쓰게 되겠거니 생각했던 이야기들에는 놀랍게도 ‘하나의 이름’이 없었다. 아프가니스탄도, 위구르도, 스레브레니차 집단살해도 그랬다.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이름이 아니라 통계의 거대한 숫자로, 혹은 익명으로만 존재했다. 차마 다 담지 못한 그 이야기들이 아직 이 세상엔 묵직하게, 또 불안하게 고여 있다. 다 쓰지 못한 이름도 읽히길 바랄 뿐이다.



  이름 하나를 붙잡고 사람 한 명을 알게 되면 그만큼 우리 세계는 넓어진다. 하나의 이름에서 시작해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놀랍고도 불합리한 일들이 우리 마음에 들어왔으면 했다. 당장 시리아로 뛰어갈 수는 없지만,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법이 우리 손끝에서 나올 수도 없지만, 세상 모든 성범죄를 우리들만의 힘으로 다 차단할 수도 없지만, 적어도 우리 마음에서 무언가가 시작되고 자라난다면 분명히 변하는 곳이 있을 거라 믿는다.


  잎새 하나 피워 올릴 힘, 두어 줄 메모로 끄적거린 생각, 여느 새벽 불현 듯 떠올린 고민 하나, 별빛 같은 마음 한 뼘. 내가 이 글을 쓰며 꿈꾼 건 딱 그 정도였다. 한 사람이면 그 정도지만, 여러 사람이라면 잎새가 이어져 덩굴이 되고, 메모가 모여 역사가 되며, 새벽이 지나 아침이 되고, 별빛이 모여 어둠을 환하게 비출 것이다. 낙관적이다 못해 나이브해 보이겠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분주함을 잠시 내려놓고 한 줌이라도 마음을 끄집어내 타인을 생각할 수 있다.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더없이 불안한 세상을 살지만 그런 세상에서 서로를 기억하고 서로에게 기억되는, 그 우리가 바로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당신의 세상은 불안하다>를 읽어주시고, 손내밀어 마음 건네 주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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