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자가격리자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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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정

한 주를 빠듯하게 살아냈다는 뿌듯함이 몰려오는, 금요일 저녁이었다. 뿌듯한 만큼 피로하기도 한 밤. 동생은 주말을 맞아 부모님 댁으로 갔고, 평소라면 나도 같이 가서 '오도이촌' 라이프를 즐겼겠지만, 이번 주는 주말 일정이 빡빡해 서울에 혼자 남았다. 내일도 모레도 바쁠 텐데, 오늘은 복싱 가지 말고 쉴까 고민 중이었다.



복싱을 시작한 지도 어느새 6개월. 체력을 길러야겠다는 다짐으로 어느 날 갑자기 시작하게 됐다. 평생 운동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데, 학교 다닐 때도 체육 시간에 시트콤 같은 에피소드밖에는 남긴 게 없는데, 복싱이라니! 주변에서 다들 놀랄 정도로, 내게는 큰 변화였다. 처음에는 3분 동안 줄넘기를 하는 것조차 힘에 부쳤는데, 차차 체력이 붙는 게 느껴지니 재미도 붙었다. 이제는 슬슬 복싱을 잘해보고 싶다 생각하는 동시에, 꾸준한 운동 시간을 확보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느끼던 즈음이었다.


그러니 오늘처럼 시간이 있는데도 안일한 생각으로 운동을 쉬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 놀면 뭐하니. 운동 가자. 고민을 끝냈다. 퇴근 후 잠시 뭉그적거렸을 뿐인데 어느새 8시 20분이었다. 체육관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였으니, 갈 거면 지금 일어서야 했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금요일 저녁, 그것도 마감이 가까운 시간이라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한 시간 정도 열심히 뛰고 뿌듯한 마음으로 귀가했다. 주 3회 운동을 해낸, 이만하면 정말 흐뭇한 한 주 마무리였다.


다음 날 토요일. 서울국제도서전에 갔다. 코로나 시국이 시작되고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 간 건 처음이었다. 장소가 좁고 사람이 많을 것은 걱정되었지만 어차피 마스크를 꼭 쓰고 수시로 손 소독을 할 테니 괜찮을 것 같았다. 책에 파묻혀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서울숲에 앉아 친구들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을 헤아려보았다. 스트레스가 한창 심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기에, 행복을 논하는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일요일. 잠실에 갔다. 인도에 살던 시절 함께 지낸, ‘이모’라고 부르고 정말 친 이모처럼 생각하며 따르는 분을 뵈러 간 자리였다. 마음속에 품고 있는 고민을 뭐든 털어놓을 수 있고, 많은 순간 이게 ‘삶의 지혜’구나 느끼며 배울 수 있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른. 포근한 대화 끝에 기쁨과 감사를 가득 껴안고 돌아왔다.


월요일을 앞둔 밤. 동생과 각자의 방에 앉아 주말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내일이 출근이라는 사실을 은은하게 신경 쓰면서 유튜브나 넷플릭스, 책 따위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는 소리다. 갑자기 바깥에서 동생이 놀라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체육관에서 문자 왔어.”


무슨 문자? 물어보면서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내게도 문자가 와 있었다. 체육관에 확진자가 발생하여 임시 휴관한다는 알림. 확진자의 방문 시간대. 추후 조치와 동시간대 접촉 인원들은 개별 문자를 하겠다는 알림.


문자에 쓰여 있는 확진자의 방문 시간대 중에는 “금요일 20:38~21:45”가 쓰여 있었다. 내가 체육관에 있던 시간과 거의 비슷했다. 불안한데?


그리고 몇 분 후 문자가 하나 더 왔다. 이번엔 내게만.


CCTV 확인 결과, 확진자와 동시간대 운동 인원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증상이 없으시더라도 선제 검사 후 검사 결과 부탁드립니다.




월요일 아침. 회사에 연락해 상황을 알리고, 아침 일찍 임시 선별 검사소로 향했다. 양성일 확률이 높지 않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밀접 접촉이라고 해도 아주 가까이 붙는 운동은 아니고, 마스크를 벗을 일이 없었으니까. 창문이 열려 있어 계속 환기가 되고 있었으니까. 손 소독도 틈틈이 했으니까.


그러나 세상에 100% 확실한 게 어디 있겠냐고. 만의 하나라도 양성이면 어쩌지? 서울국제도서전에 방문한 사람은 다 검사받으라는 알림이 사람들 핸드폰에 울리는 상상을 했다. 9시 뉴스 나가는 거 아냐? 멀리 인도에서 오셔서 자가격리 갓 마치신 이모는 또 어쩌면 좋아. 그동안 나는 대부분의 주말을 집에서 조용히 보냈는데, 어쩌다 딱 한 주 이렇게 바삐 움직였는데 하필 이 주에 이런 일이 생겼다. 정말 공교롭기 그지없다.


더 공교롭게도 하필 화요일과 수요일에 시사회 참석이 예정되어 있었다. 하루 이틀 전에 불참 사실을 전하게 되다니. 죄송한 마음 가득 남아 연락을 드렸다. 결과가 나오는 데 최소 하루는 소요될 것이고, 그 이후도 보장할 수는 없었으니까. 마음이 무거웠다. 이래서 코로나19와 거리를 두고 싶었다. 접점이 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미안해지는 상황이 싫어서.


돌아와서 재택근무를 했다. 혹시 몰라 동생도 선제 검사를 받았고, 마스크를 쓴 채 공간을 나누어 담담히 일했다. 심란한 마음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효율이 떨어지는 걸 느꼈지만 기다리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오후 2시 25분. 보건소에서 문자가 왔다. [귀하께서는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력이 확인되어 자가격리 대상자로 분류되셨으므로…]로 시작되는 긴 문자였다.


1일 이내 이미 검사를 하였으므로 검사를 다시 할 필요는 없었지만, 결과와 무관하게 앞으로 2주 간 이 집을 떠날 수 없음은 자명해졌다. 이제 남은 건 양성이냐 음성이냐 그뿐이었다. 10분쯤 후 전화가 왔다. 공무원이 차분한 목소리로 내 인적사항을 확인하고, 문자로 전달받은 사항을 포함하여 간단한 일정을 설명했다. 자세한 내용은 또 연락이 올 거라고 했다.


저녁은 마치 감옥에 식사 넣어주듯, 동생이 챙겨서 넣어주었다. 심란하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 밤. 아마 얼굴에 드러났던 모양이다. 내 표정을 본 동생이 방 바깥에 털썩 앉아서 말을 걸어왔다. 마음을 가라앉혀 주려는 배려였다. 우리는 각자 마스크를 쓰고, 거실을 사이에 두고 각자의 방문 간에 앉아 두런두런 대화를 나눴다.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부터 지금 이 순간의 이야기, 먼 미래의 이야기까지. 내가 발 딛고 있는 곳을 차츰 인식하며 마음이 조금 진정됐다. 자가격리의 첫 밤이 그렇게 깊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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