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이 글은 2026년 1-2월에 썼습니다.
그 한 마디를 못하겠어서, 한참 고민했습니다.
출판 기획안을 저의 원픽 출판사에 투고 메일 보내고, 감독님께 연락해서 대화 조금 나눈 다음 영화 세일즈사 측에 상영회 하고 싶다고 메일을 쓰면 되는데… 도저히 감독님께 연락을 선뜻 못하겠는 거예요. 이유는 해피, 뉴 이어라고 말하기가 좀 그래서.
아무래도 세상 곳곳의 이슈를 같이 논한 짧은 대화가 우리의 유일한 대화였다 보니, (그리고 실제로 감독님의 SNS 계정은 세상 곳곳의 각종 언해피한 소식들을 옮겨 담기 바쁜 공간이다 보니), 언해피한 일들이 쏟아지는 소식 틈바구니에서 해피 뉴 이어! 라고 혼자만 햇살 아래 앉아있는 사람처럼 해맑게 인사하기가, 좀 그랬습니다.
해피 뉴 이어. 늘 별생각 없이 하던 인사인데…
사실 이렇게까지 생각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랬습니다.
2026년에 들어서면서 이란 시위 소식은 점점 거세게 들려왔습니다. (감독님은 이란 사람입니다.) 수천 명이 죽었다는 이야기, 심지어 병원에 실려간 부상자들을 찾아가 근거리 사격으로 사살했다는 소식… 2022년 시위 때처럼 처음에는 시위대의 눈을 노려 산탄총을 쏘아, 실명하게 만드는 방식이었다는데요. 나중에는 좀 더 본격적인 무기들, 사살률이 더 높은 무기들이 등장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무기의 종류를 더 알아가게 되는 건 정말 이상한 일이지만… 1980년 광주에서도 있었던, 세상 곳곳에서 이미 존재하는 이상한 일들, 그와 비슷한 이야기 앞에서, 또 한 번 아연실색하게 됩니다.
언해피한 일들은 항상 일어나지요. 모든 문제를 마법처럼 뿅 해결해 주는 세상은 없습니다. 심지어 꼭 그럴 수 있을 것만 같은 마법사들의 세계, 해리포터의 세계조차도. 문제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언젠 길고 지난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일상의 인사를 포기해선 안된다는 걸, 또 새삼스럽고 뒤늦게 깨닫고 맙니다. 이란의 상황 또한 길고 지난한 여정이 될 것이고, 지금 해피 뉴 이어라고 인사하지 못한다면 영영 할 수 없겠죠. 오늘은 오늘의 안부를 물어야 합니다. 감독님께 해피 뉴 이어, 인사를 건네고 안부를 묻습니다. 왓츠앱에 또 거의 편지를 씁니다.
사실 좀 더 일찍 연락하고 싶었는데 왜 머뭇거리게 되었는지도, 이란 사람들에게 보내고 싶은 마음도. 인터넷에서 본, 이 일이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어떤 한국 사람들의 댓글 이야기도 전해 줍니다. 이란 사람들이 기대하고 바라던 미래를 곧 마주할 수 있기 바란다는 마음도요.
“그들이” 바라던 미래. 그건 이란의 상황을 멀리서 바라보며 자꾸 강조하고 싶은 주어의 자리입니다. 시위 세력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결집했고, 거기에 미친 진압이 벌어졌고, 미국 대통령은 자꾸 군사 개입이라는 단어를 언급합니다. 상황은 어떻게 흘러갈까요. 무수한 변수와 인자들 속에서 부디 자기들이 꿈꾸는 미래를 스스로 그려갈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감독님께는 고통이 느껴지는 답장이 왔습니다. “연대 고마워요. 그 말이 마음 깊이 남습니다. 지금 이란은 칠흑같이 어두운 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승리가 너무 먼 미래에 있지만 않길 바랍니다.” 감독님의 SNS에는 지금도 ‘이란학살(iranmassacre)’ 같은 해시태그가 달린, 더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된 이들의 생전 모습이 올라옵니다.
인터뷰할 때 감독님께 던진 마지막 질문은 “감독님의 언어로 파템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표현해 달라는 것”이었어요. 더 이상 파템이 없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감독님이 묘사하고 그리는 표현으로 파템을 기억할 테니까요. 감독님은 “She was,”라고 두 단어를 말하자마자 잠깐 말을 멈췄습니다. 여전히 was라는 과거형으로 파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어렵다고요. 싱그러운 혹은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사진 속 사람들 또한, 과거형으로 묘사되기엔 너무 생생한 사람들입니다.
잠시 고통을 이야기하다가, 우리는 영화 상영회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나눴고, 프로젝트에는 이렇게 또 한 발자국의 진전이 있었습니다. 한 발자국 나아갈 때마다 다음으로 발을 뻗어야 할 곳이 보인다는 건, 참 감사한 일입니다. 가본 적 없는 길에서 약간 압도되는 기분을 느끼면서도 아주 막막하지만은 않게, 이끌어주는 손길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감각 없이, 불타는 도시에서 총소리를 듣는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정말이지 기도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느껴지는 상황에서, 감독님께 무슨 말을 건넬 수 있을지 한참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꺼낸 말은 결국 흔하디 흔한, I stand with you, 함께 서겠다는, 그다지 쓰고 싶어 하지 않는 문장이었습니다. 실천이 받쳐주지 않으면 그것만큼 공허한 말도 없어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문장입니다만, 마음이 할 수 있는 일을 hope와 and pray, 소망과 기도에서 그냥 끝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문장은 이런 마음에서 발화되는 거였구나, 깨닫습니다.
요즘 영화 리뷰를 주로 쓰느라 저도 잊고 있었는데, 저의 글쓰기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이런 일들을 사람들에게 잘 정리해 전달하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인도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나중에는 자료에서 읽은 것들을. 따지자면 글에서의 본 줄기라고 할 수 있는데 너무 오래 잊고 있었던 것 같아요.
다시 자료를 읽을 때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아랍어를 배울 때가 되었는지도 몰라, 그런 막연한 생각이나 무심하게 해 봅니다. (무심의 사유: 이런 생각 100개 하고 1개 실천합니다) 마법도 없고 언해피한 일들은 계속되는 세상에서, 이 길고 지난한 여정을 함께 걷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