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돌아왔습니다. 밤 기차로 돌아와 다음 날 바로 출근했으니 분명 피로한데, 피로보다 마음이 동실동실 솟아오르는 감각이 더 선명합니다. 인터뷰 원고를 마감해 감독님께 검토를 요청해 두고, 이제 뭘 하지 생각합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영화 수입/배급은 내가 할 수 없지…’입니다. 영화의 수입과 배급, 흔히 한 단어처럼 뭉쳐 다니지만 사실 이 안에는 어마어마한 업무가 숨어 있습니다. 저도 업계인이 아니라 자세히는 모르지만 거칠게 요약해 보자면- 우선 수입은 그 영화의 판권을 사 오는 일로, 물품 수입하듯이 영화 판권을 수입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배급은 그 이후, 영화를 극장에 내거는 일입니다. 수입배급을 둘 다 하는 회사들도 있지만 한 영화에 수입사와 배급사가 따로 들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울 만큼, 거대한 작업입니다.
한 마디로- 이 영화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려면 수입과 배급이라는 작업이 둘 다 꼭 필요한데, 저 혼자서는 둘 중 어느 하나도 할 수 없다는 거였어요. 그럼 어쩌지? 난 뭘 할 수 있지? 하는데 감독님께 또 왓츠앱 메시지가 징- 옵니다. 파티마 하수나 사진집 표지였어요. 파티마가 생전에 찍은 사진들을 모아 사진집으로 출간을 했다고, 마침 딱 지금 풀렸을 거라고 하셨는데 바로 그 표지였습니다.
이걸 번역 출판할 곳이 없을지 알아보는 정도는 내가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출간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라이선스 문제를 해소하고, 사진집에 가장 알맞을 종이를 골라 인쇄하고… 설령 펀딩을 열어 어떻게 돈 문제까지는 해결한다 쳐도, 전문성이 없어서 못합니다. 하지만 그걸 해줄 만한 출판사의 문을 두드려볼 수는 있겠죠. 출간 기획안을 몇 번 작성해 보기는 했으니, 잘할 거라는 자신까지는 없어도 그나마 손을 움직여 볼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가장 먼저, 현직 편집자인 지인에게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카톡으로 구구절절 보냈는데, 고맙게도 그는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은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적절한 조언까지 해주었습니다. 그때 받은 답장은 읽으면서 “와, 이 사람 안 봐도 일 잘하는 사람이다…” 싶은 이메일의 정석 같았습니다. 상대의 의도와 의의 인정해 주기(이런 배려도 고마웠습니다), 현실적 상황 설명하기, 대안 제시하기.
우선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이 계획의 의미와 무관하게 업계 현실에 대한 이야기임을 명확히 하고, 사진집은 사진이 잘 나올 수 있는 특수한 종이를 사용하므로 인쇄 단가가 비쌀 수밖에 없는 점과 현실적으로 판매량이 많지 않은 점 등을 일반인 눈높이에 맞추어 조곤조곤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게 추천해 주신 대안은 두 가지. 마진과 무관하게 이 의미에 공감해서 이 일을 할 만한 출판사를 찾을 것. 키워드 검색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큰 서점에 가서 사진집과 책을 여러 권 보며 출판사를 고를 것. 아니면 이런 작업에 후원회원들을 통해 펀딩에 함께해 줄 단체를 찾아 문을 두드릴 것.
그때부터 광화문 교보문고를 여러 차례 드나들며 다양한 책을 뒤적거렸습니다. 출판사 몇 곳의 정보를 취득해 두면서, 동시에 노션을 열어 기획안을 썼습니다. 뭘 하고 싶은지, 이 영화는 어떤 영화인지… 부산국제영화제의 영화 소개 페이지와 인터뷰 페이지도 첨부하고 연락처까지 적어 기획안을 마무리했음에도 영 개운치가 않았습니다. 왜지. 쓸 거 다 썼는데 왜 끝마쳤단 기분이 들지 않지.
그러다 깨달았습니다.
아무래도 이건 역시… 영화와 함께 소개되어야 할 것 같아.
그 순간 머릿속에 계시처럼 화드득, ‘1인 배급’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그 단어를 언젠가 읽은 적이 있습니다. 건성으로 읽고 지나쳤던 인터뷰에서. 와 대단한 사람이네, 하고 지나쳤던 인터뷰에서. 머릿속에 그려본 적 없는 지도가 갑자기 반짝 그려졌습니다.
그거 아시나요? 천만 영화가 사라졌다, 멀티플렉스의 위기다, 하는 세상에서도… 영화는 죽지 않았다는 사실. 원래 거목이 휘청일 때 어딘가에서 우후죽순 자라는 어린 나무들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중 하나가 ‘마이크로시네마’의 경향성입니다. <씨네21>에서도 그 경향성을 다룬 시리즈 기사를 낸 적이 있으니 단순히 개인적인 체감만은 아니에요. 여러 층위의 내용이 있지만, 요지는 기존 멀티플렉스들이 외면하던 비주류 영화를 작은 공간에서 상영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 그 안에서 ‘1인 배급’이라는 걸 해낸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극악한 상영시간과 난해함으로 평가받는 한 예술 영화가 너무 좋았던 기억 때문에 그 영화의 상영회를 주도하셨고, 지금은 1인 배급사가 되어 뚜벅뚜벅 없던 길을 만들어가고 계신 분이었죠
언젠가 읽었던 인터뷰를 다시 찾아 소상히 읽고, 유튜브에서 수입이나 배급에 대해서 말하는 영상 몇 개를 깔작깔작 보다가… 결국 그분께 메일을 썼습니다. 죄송하고 송구하다는 표현을 몇 번이나 구구절절 깔면서… 지푸라기 잡듯이.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래서 죄송하고) 도움이 필요해요 (그래서 죄송해요).
답장은 오지 않거나 한참 나중에야 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하루 만에 답장이 왔습니다. 계획이 너무 의미 있고, 그래서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말씀과 함께, 정말 소상한 안내를 보내주셨습니다. 거기서 느껴지는 마음에, 집에 가는 버스에서 메일을 읽다 말고 울컥했습니다.
그 순간 머릿속에 ‘이거 되겠다’ 싶었습니다. 파티마의 이야기가 제 마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가 닿을 수 있다면, 그래서 이 일을 함께할 사람들이 계속 이렇게 연결될 수 있다면, 우리 이거 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다음 날 혼자 카페에 앉았습니다. 상영회, 출판, 그리고 어쩌면 더 먼 길까지 아우르는 전체 그림을 앉아서
짜 봅니다. 머릿속에 반짝 떠오른, 가본 적 없는 지도를 종이에 옮겨 그리는 시간입니다. 지도에는 제가 기존에 알던 것들이 별자리처럼 찍힙니다. 책과 영화, 서로를 지지하는 마음으로 모이는 커뮤니티.
노트 상단에 앞으로 만들 커뮤니티 이름이자 이 프로젝트의 이름을 씁니다. 메일을 받은 순간 머릿속에 떠올랐던 이름. “파템의 친구들”. 파템은 파티마의 애칭, 친한 친구들이 파티마를 부를 때의 이름입니다. 저는 이 기획에 공감하고 함께해 주는 사람들이 어떤 투쟁단이나 학회에 속한 느낌을 받길 원하지 않습니다. 물론 투쟁과 학술 연구는 세상에 꼭 필요하고 의미 있는 작업이지만, 제가 속할 곳은 아니라는 느낌이에요. 저는 그냥 친구의 일에 팔을 걷어붙이는 마음으로 이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제게 도움을 준 사람들, 각자의 어마어마한 전문성을 자연스럽게 쓱 내미는 그 친절과 다정에서도 그 마음을 느꼈고요. 앞으로 다른 사람들과도 이 마음으로 계속 연결되면 좋겠다는 꿈을 꿉니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지만 어디까지 갈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느 순간 “엇, 안되네?” 하고 끝날 수도 있습니다. 똥인지 된장인지 굳이 꼭 찍어 먹어봐야만 알겠다는 인간의 고집일 수도 있겠죠. 그래도 저는 이 길이 끊어질 때까지는, 더 이상 걸어갈 곳이 없을 때까지는, 계속 가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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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26년 4월 현재... 우리 상영회 진짜 합니다. 이 글은 아마도 상영회 후기로 끝날 예정입니다.)
(파템의 친구들 커뮤니티로 놀러오실 분들은, 여기를 눌러주세요. 가입을 해야 하지만 소셜로그인도 가능해서 편하게 하실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