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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이 Aug 30. 2019

병먹금 : 병맥주 먹기 좋은 금요일

맥주가 맛없는날이 있겠느냐만은, 맥주가 유난히 시원하게 느껴지는 저녁이 있다. 

에어컨이 닿지 않는 자리, 순서를 기다리지 않고 밀려들어오는 업무 범위 내외의 업무들, 말풍선이 쌓이는 만큼 늘어가는 스트레스까지. 

지금 이 순간 사무실에서 1초도 참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이 기분은, 온 몸의 장기들이 맥주를 원한다는 강력한 시그널이다. 

"설거지하는 김에 내 컵도 같이 좀 해줘, 부탁할게 응?" 

점심시간이 갓 지났지만 알 수 있다. 

오늘은 퇴근 후 맥주 약속을 잡지 않는다면 지구가 터지거나, 한강이 마른다거나, 내가 최대리의 머리를 머그컵으로 세게 내리치는 것 중 뭐 하나는 반드시 일어날 것 같은 날이다. 대한민국에는 반말법이 시급하다. 

반말법이란 무엇인가. 

회사에서 친구처럼 반말할 거면 월급도 친구처럼 엔빵으로 나눠 가지는 법이다. 물론 반말법보다는 치킨 반 마리가 심리적으로 우리에게 가까우므로 이 법이 제정될 일은 없겠다. 


시답잖은 생각들을 하다 보니 머리끝까지 올랐던 열이 식...기는커녕 최대리의 머그컵에서 웃고 있는 사자 모양의 캐릭터까지 밉다.   


여섯 시 땡하자마자 퇴근해야지, 단골 술집에 도착하면 가장 안쪽 자리에 구겨져 앉아야지, 메뉴판을 볼 것도 없이 중화닭튀김부터 주문하고 기본안주가 테이블에 닿기도 전에 칭타오를 원샷해야지. 머릿속으로 빠르게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급 행복회로를 돌린다.  

내 안의 화는 시원한 맥주가 아니고서는 식힐 수 없다. 열받은 날은 맥주로 화를 식혀주어야 한다는 사실. 이것은 지구상 변하지 않을 마지막 진리다.

오늘은 병맥주 먹는 금요일, 병먹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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