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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 Dec 06. 2020

천둥소리

먼 하늘에 핀 천둥은 하늘을 찢는데

새삼 두고 온 것들로 구멍을 메우고 있다

천둥이 소리를 두고 다니는 탓이다

꽃을 두고 온 입춘처럼

추위를 두고 온 겨울처럼

반쪽을 두고 다니는 것들은

종종 생의 강가를 거슬러 오른다

알을 흩뿌리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나는 어미 짐승처럼 그들을 혀끝으로 핥는다

모든 알이 둥글지는 않다

닳고 닳지 않은 것들은 모서리가 있어

긁히면 몸을 구깃 접고 만다

피고, 접고, 구부리고, 펴고

나는 꽃이 되기도, 애벌레가 되기도 하며

단단히 세워두었던 두 다리를 잃고

평생을 기어 여지없이 익숙한 발치에 머문다

지친 몸을 추스르고 고개를 들어보지만

그 얼굴 쉽사리 그려지지 않는다

보름달을 닮아 둥글었던 그 눈도

피고, 지며 반달이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연등을 닮았던 은은한 목소리는 어떨까

아직 남은 귀 기울이지만

천둥이 두고 온 소리 하필 밀려오고 만다

문득 바라본 괘종의 초침은

그제야 구르기 시작하고

못내 그 찰나가 아쉬워

나는 목석처럼 앉아 다음 천둥과

그것이 두고 올 푸른 소리를 기다린다


<천둥소리>, 이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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