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공무원연금 3월호 칼럼
새해에는 새로운 삶을 다짐하는 세 번의 기회가 있습니다. 새해 첫날이 첫 번째 기회입니다. 하지만 신년 계획은 한 달 안에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면 두 번째 기회가 옵니다. 음력 설이지요. 설 연휴 이후부터는 다짐한 대로 살리라고 다시 마음먹습니다. 그러나 대개는 이마저 한 달 안에 무너집니다. 이제 세 번째 기회가 남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입니다. 학교를 떠난 지 수 십 년이 지났어도 3월은 여전히 뭔가를 시작하기에 좋은 시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만물이 소생한다는 봄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3월이 되어도 날은 여전히 춥지요. 새로운 계획은 두 어 주가 지나면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세 번의 기회를 모두 날리고 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대개 이렇습니다.
‘뭘 해도 난 안 돼. 이번 생은 글렀어’
몇 년 전 영재교육을 담당했던 한 선생님을 세바시 강연자로 초대한 적이 있습니다. 이 선생님에게 영재성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에 대해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영재성을 구성하는 첫 두 가지는 ‘지능’(Intelligence)과 ‘창의성’(Creativity)입니다.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들이지요. 그러면 세 번째는 무엇일까요? 바로 ‘과제 집착력’(Task-commitment)’입니다. 이것이 영재를 판정하는 가장 중요한 능력이라고 합니다. 놀랍지 않은가요? 타고난 똑똑함보다 후천적인 의지와 노력이 영재를 가장 영재답게 만든다는 것이라니.
세상 일도 그렇습니다. 뛰어난 지능과 창의성으로부터 비롯된 생각은 많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실행하고 어떤 현실의 결과로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합니다. 세상에는 생각과 아이디어만으로 사라지는 것들이 정말 많습니다. 위대한 사람들은 위대한 생각을 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 생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엄청난 노력과 수고를 감내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 안에는 한 가지 공통된 믿음이 있습니다. 그 일을 자신이 해낼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저는 이 믿음을 ‘업의 집착력’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저도 10년 전에 ‘내 업의 집착력’을 발휘한 적이 있습니다. 세바시라는 프로그램을 처음 구상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습니다. 수 백 명의 자발적 참여 관객을 모아서, 콘서트 형식의 강연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TV가 아닌 유튜브라는 곳에 메인 채널을 만들어 확산하겠다고 했으니, 당시 방송국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계획이었을 겁니다. ‘유튜브’가 뭐냐고 조용히 되묻는 선배 PD도 있었다는 건 요즘 말로 ‘안 비밀’입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내가 반드시 잘 되게 만들 수 있다’는 마음으로 세바시에 ‘집착’해 일했습니다.
<마인드셋>의 저자이자, 미 스탠포드대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캐럴 드웩 교수는 테드(TED) 강연을 통해 ‘아직의 힘’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시카고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낙제 점수를 ‘F’로 표시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NY’로 표시합니다. ’F’는 ‘Failed’의 앞 글자로 ‘실패했다’는 뜻이지요. ‘NY’는 ’Not Yet’의 앞 글자들입니다. ‘아직’이라는 의미입니다. 낙제 점수를 받은 학생에게 실패자라고 낙인찍는 게 아니라, 성공에 아직 이르지 못했을 뿐 언제인가 반드시 해내리라는 믿음과 희망을 주는 표시입니다. 캐럴 드웩 교수는 ‘아직의 힘’을 자신이 반드시 더 발전할 것이라는 믿음과 태도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그녀가 주창한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의 핵심이고, 제가 ‘업의 집착력’이라고 부르는 것의 근본입니다.
사실 새로운 삶을 다짐할 기회는 세 번뿐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동안 매일이 그 기회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더 뻔뻔해져야 합니다. 늘 실패한다는 좌절보다는 아직 성공하지 못했을 뿐이라는 여유와 담대함을 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낙관과 행운에 기대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 삶은 지루하고 의미 없습니다. 프랑스의 대문호, 파스칼 브뤼크네르 (Pascal Bruckner)는 “좋은 삶이란, 질문을 잘 던져놓고 답을 내는 것을 무한정 미루는 것과 비슷하다”라고 말합니다. 3월에도 새롭게 다짐해 봅시다. 설사 다음 달에 다시 계획을 세울지라도, 지금 우리 삶에 스스로 던진 질문을 좇아 열심히 움직여 봅시다.
- 구범준 세바시 대표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