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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명희 May 22. 2023

협업을 부르는 거버넌스

'동의'의 정의와 과정

우리 모였다! 크로스!  

재미있고, 좋아하는 것, 혹은 더 잘하고 싶은 것을 다른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00모임, 00계, 00클럽, 00회, 00당 …… 분류하는 이름은 다를 수 있으나, 우리는 이를 커뮤니티라고 부른다. 커뮤니티외에도 특정한 목적으로 모인 조직도 사람이 함께 모여있다면 비슷한 고민이 있을 수 있다.


자유롭게 가입과 탈퇴가 가능한 구조에서 사람들이 취해가는 것은 각자 다르고, 각자 커뮤니티에서 더 강화되었으면 하는 강조점도 다르다. 그래서 커뮤니티는 지속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 왜 우리가 모였는지, 모임의 방향과 목적을 담은 미션이라 불리우는 것을 정하고, 그 미션에 맞게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정하게 된다. 그 프로세스 일체는 커뮤니티 내부의 의사결정구조와 프로토콜이며, 구성원의 자발적 참여와 기여를 유발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를 거버넌스라고 부른다.



'이러면 안된다'고? 나도 사람이라고!

내가 이 커뮤니티를 시작했다고, 혹은 내가 커뮤니티 운영자라고, 혹은 내가 자금줄을 댈 수 있다고 마음대로 커뮤니티의 룰과 방향을 정했다가는 커뮤니티의 역동을 해칠 수 있다. 그런면에서 나에게 월급을 주고, 미션을 공유 받도록 하며, 일하는 방식과 할 일을 정해주는 회사 보다 더, 커뮤니티의 운영은 예민하다. 사장님이 정해주는 것이 없으니 더 자유로울 것 같지만, 사장님이 없이 모두 동등한 우리는 제각각 스타일이 다를 수 있다. 그러므로 미션이 없다면 다양한 멤버의 마음을 한 곳으로 향하게 하는 것은 진짜 어렵다. 또, 커뮤니티의 큰 목적이 같아도 우리가 함께 머리를 맡대고 정해보자 했을 때, 많은 노력에도 정함이 없을 수도 있다. 의견을 모으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성과와도 연결된다. 서로 다른 의견이 나왔을 때 어떻게 조율 했으면 좋겠는지도 망설여 지는 사이, 사장님 이하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회사와는 달리 느려지고, 배는 산으로 가기도 한다.


(배가 산으로 가도) 괜찮다 하지만, 솔직히 한 편으로 많이 답답하다. 속도가 제대로 안나면 내가 이렇게 에너지를 썼는데, 퍼포먼스가 왜 이정도야-의기소침해진다. 또 내가 맞다고 생각하고 함께 액션하자고 애써온 의견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 스트레스가 생긴다. 애써 낸 연대와 협력의 발자국에 금이 간다. (연대와 협력이 별건가. 같은 목표 아래 각자의 방식으로 애쓰고, 등 두들겨 줄 수 있는 관계의 힘 아닌가) 기껏 잘해야지 하고 했는데, 내 진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같음을 느낀 사람은 지금 당장은 나는 좀 안맞아도 모두들 즐거우니 되었어라고 위로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스트레스가 쌓여 역치가 높아지게 되면 마침내 터지기도 하고 돌이킬 수 없을 때도 생긴다. 의학에서는 마이크로 프랙쳐(micro fracture)라는 것이 있다. 작은 스트레스지만, 반복적으로 쌓이게 되면 인대가 끊어지기도 뼈에 금이가기도 하는 현상을 일컷는다. 기스가 안났다고 타격감이 없는 게 아니라, 기스 없는 타격감이 모이면 진짜 어느날 뚝 부러지기도 한다는 말이다. 커뮤니티에는 사장님 시키는대로 했으니 사장님 탓이라고 떠넘길 사장도 없다. 그렇다고 상처가 두려워 나와 같은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가진사람만 커뮤니티에 모인다면 그것 또한 커뮤니티를 하는 재미가 없다. 어떻게 하면 멤버들 각자 의견이 충분히 검토되었다고 느끼고, 의견을 안낸사람은 안낸사람대로 함께 결정하고 가고 있음을, 기여하고 싶음을 느끼게 될까. 누군가의 눈에 보이지 않는 타격감-마이크로프랙처-이 진짜 프랙처(골절)가 되지  않도록 할 수 있을 까. 또, 결국 한쪽의 의견만 계속 반복된다면, 각자는 어차피 결과는 뻔할 것이니 의견을 내는데 염세적으로 되어 커뮤니티의 역동성이 예전 같지 않아, 점점 그대로 가라앉을 수도 있다.



이 방법을 써봐. 동의의 4가지

활력 있고 생산적인 커뮤니티를 위해 질리지 않을 만큼 효율적이고, 적절히 멤버들의 의견이 고려될 수 있는거버넌스 구성 방법중 하나는 "동의"의 수준과 방식을 섬세하게 나눠보는 것이다. 모두 네/아니오로 딱 나뉘지 않는 다는 이야기. 회의 진행자가 동의의 판별을 위해서 7개 수준으로 나누기도 하지만, 나는 이 의견이 계속 가도 되는 지 아닌지 고민하는 초기 도구로 4가지를 변형해 쓰고 있다.  


 1. Yes! 완전동의! 나도 뭐라도 함께 거들고 싶어.

 2. Yes. 그래. (하면 좋지만, 내 우선순위는 아니야. 하지만 가능한 뭐라도 할게.

 3. Yes…, but it’s for you. 너를 위한 동의. 나는 별로인데, 너가 정 하고 싶다면 해. 말리지는 않을게.

 4. No. 난 반댈세.


1.,2.,3.은 단어상으로 ‘yes 동의’이다. 그러나 모두 동의일까? 3.은 어떠한가?

리더의 입장에서도 멤버의 입장에서도 ‘동의'로 치는 게  편하다. 사실 당장의 결과 값은 다르지 않은데, 3.을 위해 추가적으로 논의하는 에너지를 쓰는 것은 힘들다. 그래서 반대가 특별히 안나오는 경우에 제안자나 진행자는 1.,2.,3.을 모두 동의로 본다. 결과가 좋으면 서로 문제가 될 것 없다. 사실이다. 누가 뭔가를 한다는 데, 나에게 큰 노력이 필요하지 않거나, 곤란을 초래하지 않으면 오케이다. 그리고 상황은 생각지 않게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저렇게도 해내는군”

좋은 퍼포먼스가 나오는 한 3.은 동의했던게 맞다.


그러나 문제가 생기면 3.은 언제든지 ‘나는 사실 반대였어’를 내비칠 수 있다. 그가 우리를 기만한 것이 아니라, 3은 처음부터 반대로 봐야 맞다. 딱 그게 그 멤버의 동의 수준이었다. 또 3.은 2., 4.도 전염시켜 다른 사람을 3.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2.는 나는 1.도 아닌데, 3.이 무임승차자(free rider)로 있으면 자기 몫의 일이 많아진다. 어쩔 수 없이 일을 자꾸 더 해야 하거나 자원을 넣어야 하게 되면, 나도 그렇게 까지 찬성은 아닌데 점점 자기 책임이 많아져 하면서 3.으로 변한다.

또 4.는 어떠한가? 3.으로 표현하는 것이 조금 더 눈에 안 띄고, 반대하느라 안 피곤해 좋은 것 같다. 사실 4.인데 3.으로 위장하는 사람(자신이 인지 못하고라도)도 더러 있을 것이다. 우리는 트로이의 목마같은 3.을 편의상  '동의'한다 치고 조금 더 논의 해 보는 에너지를 아끼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생기가 있고, 발전하는 커뮤니티라면 더 논의를 통해 3.을 최소한 2.로 만들거나, ‘내가 사실 4.였구나(반대)’ 만드는 게 좋다. 왜 제안이 별로인지 타당한 이유를 대도록 하고, 그에 대해 대비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욱 단단한 제안을 만들고, 더 많은 멤버가 그 의견에 함께 할 수 있다. 또, 내가 커뮤니티의 멤버라면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 도 필요하겠다. 커뮤니티에서 던져지는 각종 사안에 자신의 액션(실행) 투입을 고려하여 마음을 좀 더 얹어 진지하게 고려해보고 가능하면 3.의 결정을 피하는 것.


문제는 ‘3.’이 아니라, ‘3.’에게 필요한 나와 커뮤니티의 노력과 과정을 성가셔했다는 것이다. 커뮤니티가 힘을 모아 지속적으로 어떤 미션을 해나감에 있어서 성가심을 비껴가려 택했던 길은 문제가 된다는 걸 느낀다. 수평적인 커뮤니티 속 공동의 의사결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에너지가 적게 드는 길을 선택하고, 나중에 왜 우리는 이렇게 힘이 안날까 내탓, 남탓하게 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때 나의 강변은 "아니, 웬만큼 속도를 내지 않으면 커뮤니티라는 바퀴는 계속 굴러가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 아닌가!" 였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지금의 우리가 수평적인 커뮤니티가 역동을 갖는 방법을 익히는 것은 우리가 한계가 있다고 여기는 자본주의, 능력주의를 벗어나 사람들의 의견으로 힘을 모아보는 실험일지도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그게 우리가 커뮤니티를 하고 싶었던 이유였기도 하다. 돈 말고, 힘 말고, 구성원의 순수한 의지를 집중시켜 여러사람의 동의로 일을 추진시켜 가는 수평적인 커뮤니티의 맛을 보고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구성원이 하면 할 수록 더 기여하고 싶고, 더 많은 멤버가 우리 커뮤니티를 매력적으로 느껴 오고싶게 하는 것은 예술(state of art)이다. 이 아트(Art)가 내가 속한 커뮤니티에서 가능하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커뮤니티에 나오는 사안에 따라 높은 수준의 의견 개진과(꼭 yes만이 아니라, 사안에 대한 이해의 깊이)와 그에 따르는 자발적 기여가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의 해보자!(Go!)를 꺾는 다른 의견이 계속 나오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자. 아프지만, 더디지만 커뮤니티를 살아있는 유기체로 변화시키는 것은 그 껄끄러운 감각이다.


참고자료

다른의견  - 이언레슬리 지음, 엄윤미 옮김

Community rules - Media Enterprise Design Lab





부록.

Community Rules에서는 다양한 동의의 방식을 9가지로 보여주고 있다. 동의를 얻는 방식을 채택하는 것 또한, 사안에 따른 동의 수준을 결정하는 일이다. 우리는 어쩌면 사실은 어정쩡한 반대인 '3.'을 동의로 칠 수 있는 낮은 수준의 동의방식을 택하고 '3.'은 왜 저럴까 하는 것 아닐까. 매사 무거운 프로세스를 취할 필요는 없으나, 중요하고 멤버 개개인의 실행(commitment)이 필요한 일이라면 높은 수준의 동의가 필요한 방식을 고르는 게 맞다. 아래 15가지 동의의 방식을 참고하자.


1) 찬성투표 Approval voting  

멤버가 각 선택지에 대한 찬성 또는 거부 의견을 낼 수 있다. Voters can approve or deny approval for each option.


2) 합의 Consensus

모든 멤버가 전체그룹에 영향을 끼치는 결정에 동의하여야 한다. All participants must consent to decisions that affect the entire group.


3) 게으른 합의 Lazy Consensus

반대가 없는 경우, 제안이 통과된 것으로 본다. Proposals are presumed to pass in the absence of objections.


4) 지속투표 Continuous voting

의사결정은 항상 재 투표과정을 거칠 수 있으며, 멤버들의 자신의 의견을 변경할 경우 기존 의사결정은 바뀔 수 있다. Voting can occur anytime, not just on a fixed schedule, and decisions can change if participants alter their votes.


5) 반대 투표 Disapproval voting

멤버들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선택지에 표를 던지고, 가장 적은 표를 받은 선택지가 채택된다. Votes are cast for the options voters do not want, and the option with the fewest votes wins.


6) 실제 일을 하는 사람이 결정하기 Do-ocracy 주어진 일에 나서는 사람이 어떻게 일을 수행할 지 결정할 수 있다. Those who step forward to do a given task can decide how it should be done. 다수결 투표


7) Majority voting 과반수 이상의 표를 받은 선택지가 채택된다. 과반수 이상이 없는 경우 재투표 한다. The option that receives more than half the vote wins; it none wins, a runoff occurs. 활동 증명


8) Proof of Work 의사결정의 힘은 참여자가 해당커뮤니티에 쏟은 노동에 비례한다.

Power in decision-making is proportionate to a participant's labor for the community.


9) 무작위 Random Choice  선택지 중 무작위 선택한다. A choice among options is made at random.


10) 범위투표 Range Voting 멤버는 각 선택지에 대하여 범위내에서 점수를 매기고, 가장 높은 평균점수를 받은 선택지가 채택된다. Voters score each option within a range, and the option with the highest average score wins.


11) 순위 선택 Ranked Choice 멤버는 각 선택지의 순위를 매기며, 다수가 상위에 랭크한 선택지가 선택된다. 다수가 선택한 선택지가 없다면,  다수 선택지가 나올때까지  제일 낮은 순위를 받은 선택지부터 차례로 제거한다. Voters rank options and the option with a majority of top-ranked votes wins; if there is no majority, options with the least top-ranked votes are removed until a majority appears.


12) 국민 투표 Referendum

커뮤니티 멤버 전수 투표 A decision is posed to the community's members at large.


13) 대략적 합의 Rough Consensus 정식과정이 아닌, 커뮤니티가 공유하고 있는 의지에 대한 비형식적 감 을 통해 의사결정 한다. Decisions are made not through formal processes but through an informal sense of the group's shared will.


14) 추첨 Sortition 특별 권한을 가진 역할을 커뮤니티 내에서 랜덤으로 선택한다. Roles with special authority are chosen from among the community at random.


15) 활동지분 가중치 Stake Weight 멤버 각각이 조직에 투자한 정도에 따라 권한을 가진다. Participants hold power in proportion to their investment in the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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