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 마을 이야기
조각가는 갈매기를 분수의 가장 아래 장식 단에 내려놓았어. 조각가와 떨어지는 게 불안했는지 갈매기는 다시 “꾸르르르,” 소리를 내기 시작했지. 조각가는 왼손바닥을 오롯이 갈매기 쪽으로 내보이면서 “잠시만,” 하고 다정히 말했어. 챙겨 나온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는 중이었지. 갈매기는 훈련 잘 받은 반려견처럼 소리를 멈추고 가만히 서 있었어. 그러는 사이에 바닷바람이 갈매기의 몸을 휙 휘감았지. 순식간에 바람 찐 모습이 되었어. 이전보다 몸통이 훨씬 더 부풀었고 깃털도 뒤죽박죽 엉켰지. 카메라 세팅을 마친 조각가가 다시 바라보았을 땐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제법 야생 갈매기 티가 날 정도였어.
“역시 넌 바람을 좀 맞아야 하는구나.”
갈매기는 조각가의 손바닥에 이마를 문지르며 아양을 떨었지. 조각가는 카메라를 목에 걸고 두 손으로 갈매기의 날개를 하나씩 잡았어. 뒤편에서 그림일기 비슷한 걸 그리고 있는 현서도 환호를 질렀지.
“아저씨, 갈매기를 날게 하려고요?”
기대감에 찬 목소리였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럼, 날 순 있단다. 갈매기도 일단은 갈매기니까.”
조각가는 조심스러웠어. 갈매기의 날개는 같이 산 이래로 웬만해선 펴지질 않았으니까. 세게 쥐면 으스러질세라 어화둥둥 조심스레 갈매기의 날개를 들어 올렸지. 갈매기의 깃털들은 아주 오랜만에 바람이 잔뜩 쪄서 속속들이 부풀려졌어. 꼭 만개한 모란 같았지. 갈매기는 저항하지 않았어. 조각가의 행동엔 합당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야. 억지로긴 했지만 오래간만에 날개를 펼친 갈매기를 보니 조각가도 흐뭇했지.
“아호이!”
조각가는 불현듯 경례했어. 그리고 두 눈을 감았지. 갈매기를 처음 만났던 그날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어. 광장에서 조금 떨어져 있던 해안가도 두 생명의 처음을 기억한다는 듯이 바람을 슬슬 광장 쪽으로 들이밀었지.
금빛 모래사장. 그곳으로 바짝 다가오던 파도. 파도가 절반은 휩쓸어가고 절반은 내버려두었던 모래 알갱이와 모래 덩어리. 훤히 드러난 자신의 치부마저 자연스럽다 받아들이던 자연. 끼룩끼룩였는지 꾸르르르였는지 모를 소리. 하늘 위에서 무의미한 원을 이쁘게도 그리던 갈매기들. 그중 자신의 발 아래로 살포시 내려앉았던 단 하나의 생명. 생명의 강단 있는 비행. 멀끔한 깃털과 부리.
조각가가 그 생명을 안으려고 두 팔을 내밀자 한 움큼, 냄새가 닥쳤지. 오래도록 바다를 담고 살았는지, 서슬 퍼런 소금 내를 풍기는 눈이 조각가를 올려다보았지. 그리고 이윽고 그 눈은 조각가를 안았지. 짜고 차가운 감각이 조각가를 덮쳤지. 조각가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복합적으로 밀어붙이고 잡아당기던 바다가 갈매기의 형상을 하고선 자기 품에 들러있다고 생각했지.
조각가가 눈을 다시 떴을 땐 눈을 끔뻑이며 자신을 바라보는 갈매기가 눈앞에 있었지. 모두가 제자리였어. 자리를 이탈한 건 현서뿐이었지. 뒤쪽 벤치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던 현서는 어느새 갈매기 옆에 나타나 조각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어.
“아저씨, 혹시 멀미 나세요? 그래서 눈 감은 거예요?”
“아름다운 걸 기억해 내고 싶어서 잠깐 눈을 감았단다. 생각한 거지.”
“눈을 감으면 생각이 쉬워지나요?”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지 않게 된단다. 그래서 소리도, 손끝 감각도, 기억도, 선명해지지. 해상도를 높인다고 하면 현서가 알려나?”
“해상도요?”
현서가 고개를 갸우뚱했지.
“음, 그러니까,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을 때도 가끔 뿌연 화면을 볼 때가 있지 않니? 그때 찰칵하는 버튼을 누르기 전에 화면을 한번 콕 건드리지. 사진 찍으려는 장면이 깨끗하게 나올 수 있도록 청소하는 거란다. 집중하는 거야. 그것처럼 눈을 감으면, 잊고 지내던 감각들의 집중도가 올라간단다. 손가락으로 톡 건드린 휴대폰 카메라 화면처럼.”
“그래서 뭔가 찾았어요?”
현서가 조각가의 말을 모두 이해한 것처럼 보이진 않았어. 하지만 조각가가 눈을 감고 무언가 발견했다고는 어림짐작한 모양이었지.
“갈매기와의 매 순간이 밀도 있고 아름다웠단 걸 떠올렸단다.“
현서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저씨는 말을 참 어렵게 해요.”
“둘이 처음 만났던 날엔 특히 그랬지. 그땐 몰랐지만 지금 와서 보니 모든 몸짓이 필요한 몸짓이었단 생각이 드는구나. 그중에서 하나를 꼽아서 저 분수 위에 조각해 두고 싶구나. 기왕이면, 자 갈매기아, 잠시만 가만히 이대로 있어주렴.”
“꾸르?”
조각가는 갈매기의 날개 모양을 진흙 덩어리 빗듯이 매만졌어. 현서의 손을 잡고 분수대 정면의 뒤쪽으로 물러서서 멀리서 그 실루엣을 점검하다가, 다시 갈매기 곁으로 접골사처럼 갈매기의 날개를 이리저리 움직여보았지. 한 서너 번 정도 반죽과 점검을 반복하다가 드디어 팔짱을 끼고 고개를 세게 끄덕였어.
“내게 안기기 직전, 육지에 정박하기 직전의 움직임이 가장 놀라웠단다. 이렇게.”
“우와!”
현서가 환호했어. 갈매기는 10시 14분의 시침, 방향으로, 누운 숫자 3 모양으로, 다른 갈매기들과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모를 위용 넘치는 모습으로, 날개를 양옆으로 펼치고 서 있었지. 현서는 물론이고 마을 아이들이나 어르신들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어. 조각가는 갈매기가 민망해하지 않도록 자신도 똑같은 포즈를 취해보려는 듯 양팔을 뻗어 올렸지. 그러는 와중에 목에 걸고 있던 카메라를 들어 올려 갈매기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도 빼먹지 않았어. “됐다!” 하는 외마디와 함께 조각가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양팔을 힘있게 뻗어냈지. 깃털 없는 생명의 날갯짓이라 갈매기의 포즈만큼 멋지진 않았어. 하지만 마음만큼은 어느 갈매기, 어느 바닷바람, 어느 물, 못지않았지. 조각가는 자신의 양팔을 좌우로 힘껏 뻗었지. 갈매기도 그런 조각가의 마음을 알았는지 좀처럼 피지 않던 날개를 바로 접지 않았어. 바람 찐 채로 두 눈을 깜빡일 뿐이었지.
그때였어. 태양과 조각가, 갈매기와 분수가 일렬을 이루자 조각가의 앞과 갈매기의 뒤, 분수 구조물의 위쪽으로 그림자가 졌어. 승리의 여신 니케를 닮은 실루엣, 결승선에 다다른 마라토너가 취할 법한 만세 자세가 겹쳐 보이기 시작했지. 현서는 얼른 벤치 쪽으로 달려가 아까 그림을 그리던 노트의 다음 장을 펼쳐서 조각가와 갈매기의 실루엣을 얼기설기 그리기 시작했어. 평화광장 가로수에 부착된 스피커에서 안내방송이 흘러나오지만 않았더라면 아마 한참 동안 그러고 있지 않았을까? 그랬더라면 공원 근처를 지나가던 마을 사람들이 목격했을 수도 있겠네. 양팔을 높게 들고 벌린 갈매기 하나와 어른 한 명과 그 뒤에 앉아 무언가 열심히 그리는 꼬마 한 명을. 세 생명이 나란히 빛을 등지고 서서 양팔로 엄청나게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스피커에서 검지로 마이크를 두드리는 소리가 흘러나왔어. 광장이 시끄러워지자, 갈매기는 날개를 접고 몸을 웅크리며 주변을 경계했지. 가만히 앉아서 스피커에 귀를 쫑긋하던 현서는, “어, 할아버지다!” 하고 소리쳤어. 방송 내용은 곧 있을 태풍에 대비하라는 거였지. 조각가와 현서는 순식간에 방송에 정신이 팔렸어. 그 새를 틈타 갈매기가 두 사람 사이로 탑탑탑탑 걸어 나왔지. 분수에서 내려와서 광장을 곱게 포장한 돌 장식을 지나 조각가에게로 걸어오고 있었어. 조각가는 갈매기가 자신에게 걸어오는 걸 보고서 곁눈질로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확인했지.
“다행이다. 그래도 사진은 건졌어. 이걸로 하면 되겠어.”
조각가는 입꼬리를 힘 있게 올렸지. 그러는 사이에 갈매기는, 탑탑탑탑, 힘든 보행을 마치고 조각가의 오른발등 위로 올라왔어. 현서도 꺄르르 웃으며 달려왔지. 조각가는 한쪽 팔로 갈매기를 집어 들고 다른 한쪽 팔로는 카메라 목걸이를 다듬고 현서에게 손을 내밀었어. 현서를 데려다주고 어서 창고 작업실로 돌아가 조각하고 싶었지.
하숙집 근처에 다 오고서야 조각가는 너무 늦게 돌아오진 말라던 하숙집 아주머니의 말을 떠올렸어. 엄마 눈치 보는 아들의 표정을 하고서 “다녀왔습니다,” 인사를 하며 대문을 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