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 마을 이야기
어떤 걸 만들어내는 데 몇 시간을 투자했는지 묻는 말들 있지? 하루 몇 시간, 수치화된 어떤 데이터와 성공 공식을 캐내려는 질문들 말이야. 난 그런 질문에 함정이 있다고 생각해. 무언가를 오래 붙들고 있는 게 반드시 큰 성과로 이어지는 건 아니거든. 양적인 노력, 투자, 그런 게 전부가 아니란 말이야. 그런데 조각가는 그걸 간과하고 있었지. 분수대를 찾았던 그날 이후, 바다 산책도 마다하고 창고에서 하루 종일 지내는 날이 많아졌어. 갈매기는 조각가의 곁을 지켰어. 조용히. 우두커니. 날개는 접은 상태로. 외출을 최소화했지. 바람 찔 여유? 없었어. 하지만 그게 꼭 작업하기 좋은 상태는 아니었지. 불안과 초조함이 조각가를 창고 안, 작업대 앞으로만 몰아넣었어.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었지.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기 때문이었지. 갈매기가 바람 찔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조각가는 자신을 바삐 몰아세웠어. 오르락내리락, 희로애락, 조금 탁했다가 맑아졌다가 다시 더 탁해지는 나날의 연속이었어. 날밤을 새워가며 작업에 전념했어.
역시 지쳤던 걸까? 팽팽 부어오르기만 하던 조각가의 긴장감이 툭 끊어진 날이 있었어. 그날, 조각가는 갈매기에게 밥처럼 챙겨주던 새우과자를 사러 잠깐 외출했지. 폭풍 전야라 그런지 바람이 매우 사나웠던 날이었지. 마을이 속속들이 흔들리고 있었어. 조각가는 검은 봉지에 새우과자를 잔뜩 담은 채로 그 풍경 사이를 걸었지. 그때 어쩌면, 가장 세게 흔들린 건 조각가의 마음이었을지도 몰라. “일은 잘 돼 가?” 하는 마을 사람들의 참견에 능청스럽게 대답할 여유가 없었지. 한 생각 밖에 들지 않더래.
‘오늘은 일찍 자야겠어.’
철야 작업을 연달아했던 때였지. 몸이 무거워지자 판단이 흐려지고 게을러지고픈 마음이 커졌지. 그때 마침 목 스트레칭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태풍 영향으로 마을이 온통 흔들리고 있었고.
‘에라 모르겠다, 나도 흔들릴 테야.’
때마침 하숙집 아주머니가 끓여 주신 고추장찌개 한 뚝배기에 몸도 거하게 데워져 있었지. 조각가는 기한을 맞춰야 한다는 조바심을 그날만큼은 무시하기로 했어. 대신 이불을 턱까지 끌어당기고 왼쪽으로 돌아누웠지. 침대 옆 간이탁자 위에 고양이처럼 몸을 웅크린 갈매기가 보였어. 두 발을 몸통 아래 감추고 고개는 등 쪽으로 부드럽게 돌려 깃털 사이에 쏙 파묻히도록 하고 있었어. 평화로워 보였지.
‘갈매기 너는 네 깃털들을 더 이상 하늘로 데리고 가진 않는데. 네 깃털들은 너를 끊임없이 보호하는구나. 하늘을 날던 네가 땅에서 안전하길 바라면서. 높이 날면 더 좋을 텐데. 날 수 있는 너는 이상하게도 육지 생활을 자처하는구나.’
갈매기가 깰세라 조각가는 손가락 하나만으로 살포시 갈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지. 그러다 불현듯, 지난날, 광장에서 조각가와 현서, 갈매기를 쫓아내다시피 했던 안내 방송이 잠깐이나마 머릿속에 살짝 울렸대. 아무래도 외출 시 온몸으로 느꼈던 태풍주의보의 기운 때문이었나 봐. 변변치 않은 방송 장비로 하는 방송이라 잡음이 많이 섞였지만, 이장님의 목소리에선 결연함이 느껴졌었지. 밤사이 불어닥칠지 모를 강풍에 대비해서 창문을 꼭 닫고 자라던 경고를 떠올렸어. 하지만 창고는 습한 곳이었어. 늦여름의 습도가 한창인데 그 날씨에 창문을 꼭 닫고 자는 건 무리였어. 그래서 조각가는 방충망 하나만 닫아두고 평소처럼 창문을 활짝 열어 두었지. 야행성 풀벌레들의 연주 소리가 들렸어. 태풍 전야라 그런지 좀 더 극적이었고 구슬픈 소리였지. 조각가는 스르르 잠이 들었어. 그리고 꿈을 꿨어. 좀처럼 잊히기 어려운 꿈이었지. ‘내일부터 힘내서 해야지,’ 하던 작업 열정에 제동이 가해질 만큼.
탑탑탑탑.
익숙한 소리다. 갈매기가 걸어 내게 오는 소리다. 물갈퀴가 땅에 부딪히는 소리다. 함께 하는 소리다. 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이젠 거의 들리지 않는다. 내게서 멀어지고 있나? 갈매기는 어디로 가는 걸까? 녀석은 아직 날지 않는다. 아직? 언젠간 날아오를까? 지금은 아니다. 녀석이 나는데 저 소리가 날 리 없다. 소리를 듣는 내내 눈을 감고 있었다. 잠을 잤던 걸까? 눈을 떠보니 없다. 갈매기가 없다. 머리맡에 있었는데. 내게로 걸어왔는데. 내 발등 위에 올라탔는데. 내 품에 안겨 있었는데.
작업실 바닥이 온통 모래밭이다. 물에 흠뻑 젖은 모래 구덩이다. 맨발로 모래를 밟는다. 갈매기의 물갈퀴 자국이 보인다. 저쪽으로 걸어갔나? 모래 구덩이에서 물이 뿜어져 나온다. 비 내린 뒤의 땅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발밑, 모래 밑에 분수가 있는 것 같다.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의 모양이 포물선을 그린다. 잘 깎아낸 돌의 실루엣 같다. 아참, 갈매기. 갈매기를 찾아야 한다. 갈매기가 내게서 멀어졌다. 맨발로라도 좋다. 갈매기의 발자국을 따라 걷자. 작업실 문을 연다. 태풍이 온다고 했는데.
바깥이 쨍쨍하다. 아스팔트 바닥도 벽돌 바닥도 말라있다. 뒤섞여 있다. 모래 구덩이, 분수가 된 땅, 온데간데없다. 이런. 맨발로 이런 곳에 나오다니. 발을 감출 모래 알갱이 하나 없는 곳인데.
돌아가야 해.
누군가 앞을 막아선다. 스승님이다.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마을 사람들 모두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무슨 행사라도 있는 걸까? 가만히 보니 이곳은 평화광장이다. 가로등 두 개를 지지대 삼아 현수막이 하나 걸려 있다.
그보다 이럴 때가 아닙니다. 갈매기를 찾아야 해요.
무슨 소리냐. 저기 있질 않느냐.
이장님이 손으로 분수대 위를 가리킨다. 분수를 덮고 있던 가림막이 걷힌다. 사람들이 일제히 카메라를 들이댄다. 세상에. 갈매기가 서 있다. 분수 위 한가운데, 피투성이가 된 두 날개를 펼치고 서 있다. 나는 맨발로 뛴다. 갈매기를 향해 간다.
탑탑탑탑.
인파에 밀려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사람들의 발에 여러 번 밟혀 피가 난다. 피가 울퉁불퉁한 발등을 따라 흐른다. 치부가 피로 뒤덮인다. 그래, 이렇게라도 감춰진다면 괜찮다. 하지만 녀석은 안돼. 녀석은 아직, 다시, 날아오르지 않았어. 조각상에 누가 장난을 친 게 분명해. 녀석은 아까 전까지만 해도 소리를 내며 걷고 있었다고. 저렇게 조각처럼 굳어 있을 리 없다.
그때였다. 분수대 위에서 피투성이의 무언가가 나를 보고 눈을 깜빡인다.
조각가는 비명을 지르며 꿈에서 깼어. 이불을 걷어차고 주변을 두리번거렸지. 큰 소리가 나자, 갈매기도 잠에서 깨었지. 창틀이 세게 흔들리고 있었어. 방충망 구멍으로 얇은 빗줄기가 들이닥치고 있었지. ‘꿈이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조각가는 신경질적으로 창문을 걸어 잠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