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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Oct 24. 2024

7화. 흔들리다

갈매기 마을 이야기

  읍내 마을회관 앞 놀이터가 시끌시끌했어. 너도나도 노란 장화에 우비를 챙겨 입은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지. 한 가운데엔 현서가 의기양양하게 서서 아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었지.


  “날개를 폈다고?“

  “갈매기가 얌전히 있었어?”

  “조각가 아저씨랑 떨어졌는데 울지도 않고?“

  “너는 어쩌다 같이 갔어? 너 아저씨랑 갈매기랑 친해?“

  “조각상은 어떤 모양일 거래?“


  현서는 아이들을 진정시키며 “한 명씩 물어봐!“ 하고 으스댔어. 그리고 갑자기 눈을 감았지. 조각가를 따라 하려던 거였어. 아이들은 웅성댔지.


  ”쟤 왜 갑자기 눈을 감아?“

  “야 이현서! 졸려?“

  “조용조용! 아저씨가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랬어. 이렇게 두 눈을 감고 있으면 아름다운 걸 찾기 쉬워진대. 조각상 모양을 정하는 것도 두 눈을 감는 것부터 시작했지.“


  몇몇 아이들이 현서를 따라 두 눈을 질끈 감았어. 그 외 아이들은 갸우뚱하면서 눈 감은 친구들을 관찰했지. 현서는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모임의 주도권을 이어갔어.


  “우리 마을의 바다와 바람, 모래를 떠올려봐. 색이 보이고 소리가 들리고 감촉이 느껴지지 않니?“

  “새까맣기만 한데.“

  “음, 나는 뭔가 느껴지는 거 같기도 해.”

  “마을을 다시 찾은 갈매기들을 생각해. 끼루룩, 꾸루루, 같아 보이는 목소리도 자세히 들어보면 다 다르지. 그중에는 우리가 아는 갈매기도 있을 거야.”

  “나도 아저씨처럼 갈매기를 품에 안아 보고 싶어.“

  “난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켜볼래. 가까이 오면 물갈퀴나 부리가 무섭더라고.“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현서가 양팔을 벌린 채 말을 계속했어.


  “갈매기들 중 갈매기가 땅으로 내려와. 아저씨한테 가는 건데 결국엔 우리 마을로 오는 거지 뭐. 그때 갈매기는 날고 있어.“

  “와!“

  “아저씨가 갈매기를 처음으로 만난 건가?“


  현서와 눈을 감은 아이들은 하나같이 미소를 띠기 시작했지. 그러자 그 모습을 지켜본 아이들, 눈을 감지 않은 아이들이 웅성댔어. 일부는 “에이 재미없어,” 하면서 자리를 떴고 또 다른 일부는 “쟤네 무슨 최면에 걸린 거야?” 하면서 궁금해했지. 그때, 눈을 감지 않은 아이들 중 한 명이 놀이터 땅바닥의 모래를 한 주먹 쥐더니 흩뿌리기 시작했어. 눈을 감은 아이들은 때아닌 봉변에 캑캑대다가 눈을 뜨고 말았지. 현서도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눈을 비볐어.


  “이게 무슨 짓이야! 이제 막 조각상의 모습이 떠오르려고 했는데!“

  “야 이현서, 무슨 마술이라도 부리냐? 눈을 감고 어떻게 봐?”


  두 손바닥에서 모래를 털어내며 말하는 아이가 있었어. 금귤 아주머니네 손자 기인이었지.


  “직접 봐야 알지. 눈 감고 상상한다고 다 이루어지면 우리 할아버지는 벌써 너네 할아버지를 물리치고 새로운 이장님 되고도 남았지.“

  “너 무슨 게임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한다? 물리치긴 뭘 물리쳐! 그리고 그렇다고 모래를 뿌려?“

  “모래를 느껴보라며. 내가 도와준 거지.“


  기인이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현서와 눈을 감았던 친구들 주위를 빙빙 돌면서 이야기를 계속했어.


  “그리고 너 아직 갈매기가 날았다고 확실히 얘기 안 했어. 날개 펼쳤다고만 했지. 맨날 아저씨 발등에 올라타거나 품에 안긴 갈매기가 무슨 수로 갑자기 하늘을 날겠냐, 안 그래?“


기인이는 현서를 타깃 삼더니 주변 아이들의 동조를 유도해 냈지.


  “그렇긴 해.“

  ”우리가 직접 본 건 아니니까.“


  의심의 소리가 놀이터에 들어찼어. 현서는 노트를 펼쳐 광장에서 그린 그림을 보여주었어. 하지만 ”이건 그림이지, 사진이 아니잖아,“ 하는 반응만 되돌아올 뿐이었지.


  “증거도 없는 말은 거짓말이나 마찬가지야. 자기 할아버지 꼭 닮아가지고는.”

  “여기서 우리 할아버지 얘기가 왜 나와?”

  “조각상이니 평화 공원이니 모두 다 너네 할아버지는 마을 유명해지니까 하는 거잖아. 마을을 홀랑 이용해 먹는 거지 뭐.”

  “금귤 할머니가 그랬어?”

  “우리 할머니만 한 말이 아니야. 여러 사람들이 하는 말이지.”


  현서는 할아버지까지 끌어들이면서 자신을 비난하는 기인이에게 화가 단단히 났어. 기인이가 하는 말에도 근거가 없긴 마찬가지였을 텐데 그 말을 듣는 사람이 여럿이 있었다는 게 마음에 걸렸지. 아이들이 모인 곳에서 거론된 이야깃거리는 그 진위 여부를 따지기도 전에 모두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논의되곤 했거든. 소문은 몸집을 키우는 데 재주가 있었지. 이대로 가다간 궁지에 몰릴 거라 생각한 현서는 기인이의 말투를 따라 하기 시작했어.


  “그럼 너는 증거 있어? 우리 할아버지가 그런 사람이라는 거?“

  “그럼 너는? 어제 갈매기가 날았는지 그 얘기도 진짜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지?”

  “사, 사진이 있어. 어제 아저씨가 갈매기가 나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었어. 아마 카메라에 있을 거야. 분수대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야.“


  그말에 기인이가 씩 웃었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이들도 눈을 반짝였지. “그럼 그렇지!” “우와, 갈매기가 정말 날았단 말이야?” 하는 환호성이 살짝 들렸어. 그러거나 말거나 기인이는 현서 앞에 멈춰서서 현서의 얼굴 앞으로, 위협적으로 다가와 속삭였지.


  “그럼 가져와 봐 그거. 그럼 내가 믿어줄게.”

  “아저씬 지금 작업하느라 바빠. 며칠 전에도 찾아갔는데 하숙집 아주머니가 안 된다고 했,”

  “거봐. 거짓말이지.”

  “아니야!”


  현서는 두고 보라면서 놀이터를 빠져나왔어. 아이들 세 명이 무리에서 나와 현서를 따라 걸었지. 뒤따라오는 아이들은 현서를 지지하는 둘과 기인이의 오른팔을 자처하는 아이로 구성되어 있었지. 현서는 집으로 곧장 가려던 걸 괜히 방향을 틀어 조각가의 하숙집으로 향했어.


  ‘사진 이야기를 괜히 꺼내서…… .’


  머릿속이 복잡해졌지. 광장에서의 일은 우리 셋만의 비밀로 오늘을 간직하자던 조각가의 말이 마음에 걸렸어. 거기에다가 흔쾌히 “네!” 하고 자신이 대답했던 것도 떠올렸어. 그러는 사이, 마을 하늘은 예의 태풍 예보로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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