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 마을 이야기
하숙집 아주머니가 부엌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왔어. 이마에 맺혔던 땀을 손등으로 문질러 닦으면서 하늘을 올려다봤지. 재료 손질을 하느라 잔뜩 굽어 있던 허리를 그제야 폈어. 평상에 주저앉으면서 전날 금귤 아주머니가 가져왔던 소쿠리를 뒤적였어. 노랗고 동그란 금귤들이 아직도 많이 담겨 있었지. 아주머니는 쪼끄만한 열매가 제법 탐스럽다면서 금귤을 하나 집어 들었어.
‘껍질이 제일 달단 말이지.‘
하숙집 아주머니는 앞니로 금귤 껍질을 베어 물었어. 조금 더 물면 과육을 씹을 수 있었지만 그러긴 싫었지. 씨앗을 발라내는 게 수고스러웠어. 그래서 보기엔 좀 지저분해도 금귤을 슬슬 돌려가면서 앞니로 껍질만 도려내고 있었지. 그때였어. 금귤을 쥔 하숙집 아주머니의 손등에도, 머릿수건으로 가린 정수리에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지. 본격적으로 태풍이 마을을 덮치려는 것 같았지. 하숙집 아주머니는 껍질만 벗긴 금귤을 마당 정원 구석으로 던져넣고 손바닥을 털며 박수했지. 안방으로 들어가려 했어. 그러다 문득 조각가의 얼굴을 못 본 지 꽤 되었다는 게 맘에 걸렸지. 하숙집 아주머니는 곁눈질로 창고 쪽을 바라봤어. 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
‘광장에 다녀온 후로 거의 안 나온 거 같은데.’
그러고 보니 쿵! 하는 작업음도 오늘 못 들은 거 같았지.
‘어디 아픈가.’
걱정이 되어 노크하려던 그때, 하숙집 아주머니는 금귤 아주머니가 수수께끼처럼 속삭이던 말을 떠올렸어. 밥상 무를 손님은 드물지 않느냐면서 끼니를 챙겨줄 때 굳이 작업실로 개다리소반 한 상을 들고 들어가 보라던 작전이었지. 그때 조각가가 음침하게 준비하는 조각상도 엿보고 참견도 좀 해보라던 제안이었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집 주고 밥 주는 하숙집 아주머니가 부탁한다면 조각가도 마음을 열고 작업 과정을 공개하지 않겠느냐고 했지. 물론 금귤 아주머니의 속내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지. 하숙집 아주머니가 염탐해 얻은 정보를 금귤 아저씨에게 흘릴 셈이었어. 광장 조성 사업에 관해 귀띔을 해주고 싶어했지. 작은 마을이지만 정보 싸움은 팽팽하다면서, 차기 이장 후보로서 마을 사정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면서.
‘금귤 걔가 또 괜한 소리를 해가지고.’
처음엔 금귤 아주머니의 염탐 계획이 그저 탐탁지 않았어. 하지만 흘려듣던 말도 괜히 곱씹어 보게 하는 게 바로 흐린 여름날이 아니겠어? 먹구름이 드리우고 별다른 이동이나 활동 없이 집에만 있다 보니, 손에 쉽게 잡히는 노랗고 동그란 열매를 입안에서 굴리는 것조차 귀찮아졌고, 평소라면 들은 체 만 체했을 잡생각도 재미있게 들렸지. 그러다 보니 ‘나 정도면 좀 알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어. 괜한 우월감이기도 했지. 하숙집 주인이자 끼니 챙기는 어른이면 괜한 참견과 다정한 관심 간의 벽을 허물어도 된다고 으레 짐작했지. 금귤 아주머니의 계략에 걸려든 거나 다름이 없었어. 그렇게 생각하자 하숙집 아주머니는 아주 본격적으로 조각가의 작업 현황을 확인하고 싶어졌어. 하지만 창고 문을 어떻게, 무슨 이유로 두드릴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어.
‘다급하다는 듯? 걱정이 된다는 듯? 별일 아니지만 심심하니 노인네의 참견을 좀 받아달라는 듯? 초조한 목소리로? 다정한 목소리로? 징징대는 목소리로? 무엇이 좋을까?’
하숙집 아주머니가 잠입의 핑계를 구상하고 있을 때, 마당으로 현서와 아이들이 들어왔어. 한두 방울 내리기 시작한 굵은 비에 다소 초라한 모습이었지.
“아주머니, 아저씨 안에 있어요?”
“여긴 어쩐 일이니? 비도 오는데!”
하숙집 아주머니는 바깥으로 새어 나갈 리 없는 자신의 염탐 계획이 혹여 들킬 새라 평소보다 더 호들갑을 떨면서 아이들을 맞았지. 기인이의 오른팔 되는 아이가 말했어.
“조각가 아저씨한테 확인할 게 있어요. 얘가 거짓말했을지도 모르거든요.“
“아직 확인된 것도 아닌데 넌 왜 벌써 그렇게 말하니?”
현서는 자신과 하숙집 아주머니 사이에 끼어든 아이를 향해 씩씩거렸지.
“그럼 따로 약속을 한 건 아닌…?”
“네, 그런데, 얘네 할아버지가 확인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해서 급하게 왔어요.“
다시 한번 오른팔 아이가 말을 가로막았지. 아이는 대뜸 이장님을 들먹였어. 하숙집 아주머니의 참견을 막고 싶었던 모양이야. 현서가 다시 아이의 앞을 가로막으며 하숙집 아주머니에게 나아오며 질문했어.
“혹시 산책 나가셨나요?”
하숙집 아주머니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어. 이장님이 조각가에게 확인하고 싶어 하는 건 조각상 말고는 없다고 생각했지. 아이들을 방패 삼아 작업실 안을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번뜩 들었어.
“아침부터 도통 밖으로 나오질 않는구나. 걱정하던 참이었는데 너희가 대신 들어가보지 그러니? 현서가 아저씨랑 친하게 지내니 문을 열어 주시지 않을까?“
하숙집 아주머니는 쾌재를 불렀어. 평소 작업실 문을 건드리지도 않던 자신이 대뜸 노크하면 조각가가 의아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평소 조각가와 갈매기를 잘 따르던 아이들이 집에 직접 찾아와서 조각가를 만나러 왔다고 하니 오히려 잘 되었지. 문을 열게 하고서 작업실 내부를 구경할 때 간식거리라도 한 상 차려서 들고 들어가면 자기도 광장에 들어설 조각상의 모습을 볼 수 있겠다 싶었어.
현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장 창고 문을 두드렸지. 이상하게도 대꾸하는 소리가 바로 나진 않았어. 그런데 무언가 걸어 나오는 소리는 확실히 들렸어. 멀리서 작게, 가까이서 크게. 탑탑탑탑. 이윽고 끼이익. 문이 조금 열렸어. 조각가는 보이질 않았지.
세상에, 문을 이마로 밀고 고개를 빼꼼한 건 다름 아닌 갈매기였어.
“갈매기야, 아저씨는?”
현서는 흐릿하게 반짝이는 갈매기의 두 눈을 보자마자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지. 다른 이들이 문틈을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현서는 갈매기 쪽으로 몸을 확 웅크렸어. 사건 현장을 단속하는 교통경찰처럼 신속하게 움직였지. 하숙집 아주머니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의 시야에서 갈매기가 홱 가려졌지. 그러더니 현서는 자기 혼자 날름 작업실 안으로 들어갔어.
“야, 이현서, 좀 비켜봐!”
아이들은 볼멘소리했고 하숙집 아주머니가 고개를 쭉 뺐지. 실눈으로 어두컴컴한 문틈 너머를 살피려 했어. 근데 그 순간, 현서가 갈매기 쪽으로 홱 들어가더니 문을 걸어 잠그는 게 아니겠어? 아이들은 항의했지. 왜 혼자만 들어가냐고. 하숙집 아주머니도 어안이 벙벙했어. 계획이 틀어지자 머쓱했고, 코앞에서 문이 쾅 닫히자,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 스멀스멀 자라나던 우월감이 짓밟힌 기분도 들었어. 하지만 보는 눈이 있었기에 일단은 머쓱한 티를 감추며 아이들을 다독였지.
“아저씨 바쁘신가 보다. 아줌마가 현서를 챙기마. 오늘은 비가 더 세지기 전에 어서들 집에 가는 게 좋겠구나.”
하숙집 아주머니는 애써 아이들의 어깨를 토닥이면서도 서운한 티를 숨겼어. 창고에서 멀어지는 동안 발걸음이 무거웠지. 뒤통수에 눈이라도 하나 달아 놓고 싶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