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 마을 이야기
“산책 갈라고?”
창고에서 조각가와 갈매기가 나오자, 하숙집 아주머니가 아는 체를 했어. 금귤 아주머니는 평상 위에서 삐딱하게 누운 것도 앉아 있는 것도 아닌 자세로 작업실 문 너머를 곁눈질하고 있었지. 손님이 와 있다는 걸 그제야 안 조각가는 내심 놀랐지. 재빨리 등을 돌려 창고 문을 닫고 열쇠로 잠갔어. 금귤 아주머니는 나지막하게 “에이씨,” 하고 성을 냈어.
“네 아주머니. 오늘은 좀 크게 돌아서, 바닷가 말고 분수 있는 쪽도 한번 가보고요. 갈매기는 아직 그곳에 한 번도 안 가봤거든요.”
조각가는 깍듯한 말투로 답변했고 평상 위 금귤 아주머니를 향해서도 가볍게 목례했지. 금귤 아주머니는 나쁜 짓 하다 걸린 사람처럼 흠칫 놀라서 답인사도 하지 않았어. 하숙집 아주머니는 저녁 식사 메뉴를 간단히 읊었지. 너무 늦게 돌아오지 말라고, 태풍 주의보가 있다면서 어른 노릇을 조금 했어. 그 말에 조각가는 다시 한번 두 아주머니를 향해 목례했지. 군더더기 없는 대답이었어. 그러고는 갈매기를 품에 안고 오른쪽 어깨에 카메라 하나를 걸치고서 밖으로 걸었지. 믿거나 말거나, 그때 갈매기도 조각가의 품 안에서 두 아주머니를 향해 고개를 까딱했대. 그 모습을 본 금귤 아주머니는 하숙집 아주머니에게 귓속말했지.
“저 새대가리가 무섭게 왜 저래!”
갈림길이 나왔어. 세 갈래로 나뉜 갈매기 마을 최대의 교차로였지. 조각가가 선 방향에서 1시 방향은 이장님 댁과 읍내로 가는 길, 10시 방향은 평화 광장으로 빠지는 길이자 바닷가로 가는 길이었어. 조각가가 10시 방향으로 몸을 틀려고 하자, 1시 방향에서 앳된 목소리가 조각가와 갈매기를 불러 세웠어.
“아저씨!”
“현서로구나.”
“꾸르르르.”
갈매기도 아는 체를 했어. 이장님의 외손녀였지. 갈매기 마을엔 방학 때마다 머물다 가는 게 전부였지만, 개구쟁이인 데다가 수다쟁이라 마을 아이들 사이에선 방학 한정 골목대장이나 다름없었어.
“산책하러 가세요?”
현서는 오른쪽 주머니에서 작은 스프링 메모장과 연필 한 자루를 꺼내 들었어. 기자인 듯 조각가와 갈매기의 일정 관리자인 듯, 사뭇 진지한 자세로 기록을 준비하고 있었지. 현서가 그럴 때마다 조각가는 단정히 묶은 양갈래머리 가운데 난 가르마를 톡 건드렸지. 딱밤 대신이었고, 귀엽다는 표현 대신이었어. 간지럼타는 버드나무처럼 현서가 꺄르르 웃었지. 그 소리에 갈매기도 웃는 듯 꾸르르르 소리를 냈어. 현서가 고양이가 기분 좋을 때 내는 소리 같다고 하던 바로 그 소리였지.
“할아버지는 잘 계시니?”
“할아버지요? 바쁘대요. 근데 아저씨, 이건 비밀인데요, 사실은 하나도 안 바빠 보여요. 책만 계속 읽고 뉴스만 보고.”
현서는 입이 삐쭉 나온 채로 소곤거리며 말을 계속했어. 혹시 주변에 금귤 아주머니라도 있으면 소문이 일파만파 퍼질까 경계하는 눈치였지. 현서가 마을 사람들 눈치를 보게 된 것도 다 사연이 있어.
현서 할아버지는 갈매기 마을에 처음 올 때만 하더라도 은퇴한 대학교수란 사실을 꽁꽁 숨겼어. 이전에도 도시를 떠나 작은 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볼까 한 적이 있었는데, 스승의 날을 기념하여 제자들이 단체로 찾아오는 바람에 마을 전체가 이장님의 학력과 경력 등을 알고서 호들갑을 떨었던 적이 있었거든. 사람들은 우리도 엘리트 이장님 덕 좀 보자면서 현서 할아버지에게 감투를 씌워주고 이것저것 요구를 하기 시작했어. 대다수는 지역 경제 활성화 보조금을 유치하기 위해 산업을 발전시킬 투자를 유치하는 거였지. 소위 말하는 언론 플레이도 맡아야만 했대. 하지만 그런 건 현서 할아버지가 원하는 은퇴 후 삶과는 달랐지. 그래서 틈만 나면 현서 할아버지는 “자기 공부만 할 줄 아는 늙은이를 어디 쓰려고!” 하면서 손사래를 쳤지.
갈매기 마을로 이사를 온 것도 그 손사래의 일부였다고 하더라. 그때만 하더라도 갈매기 마을은 언론과 대학가의 주목을 받기 전이었지. 조용한 시골 살이가 가능했대. 물론 마을이 유명해진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 이장님을 맡고 있잖아. 하지만 등 떠밀려서 감투를 썼던 때와는 달랐지. 현서 할아버지는 갈매기 마을에 와서 살면서 자연을 배우고 천천히 흘러가도 괜찮을 일상을 기뻐하게 되었거든. 조각가를 갈매기 마을에 처음 불렀던 날에도 얘기해줬었지. 하지만 이전 마을에서의 경험으로 현서 할아버지에겐 자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주변을 살피고 귓속말을 하는 버릇이 남았지. 방학 때마다 할아버지의 버릇은 그를 가까이서 보고 자란 현서의 버릇으로 대물림되었어. 할아버지가 늘 주의를 주었거든. 남에 관한 말은 크게 떠벌려선 안 된다고. 골목대장 현서에겐 참 어려운 가르침이었어.
“안 바쁘실 리가. 곧 이장 선거도 다가오고, 광장 일도 있고. 아마 현서 잘 때도 일하고 계실 거야.”
“꾸르르르.”
“거봐, 갈매기도 그렇다고 하질 않니.”
“아저씨는 얘가 무슨 말 하는지 알아들어요?”
“대충?”
“대충이면 확실한 게 아니잖아요.”
“말만 하는 게 아니거든. 이 녀석은 온몸으로 움직이면서 무언가 전하고 있단다.”
조각가는 품에 안은 갈매기를 현서 쪽으로 내밀면서 말했지. 자신을 만나면서부터 갈매기가 도통 날지 않는 게 어떠한 중요 메시지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지. 현서는 손에 들고 있던 노트와 연필을 다시 주머니에 쑤셔 넣고 갈매기의 몸통을 부드럽게 쓰다듬었어.
“구루루루루루.”
갈매기도 아까보다 더 기분이 좋다는 티를 잔뜩 냈어.
“바다에 가세요?”
“바다도 바다지만, 오늘은 꼭 가야 할 곳이 있단다.”
“그게 어딘데요?”
“갈매기가 오래도록 기억될 곳이지.”
현서가 의아해하자, 조각가가 말을 계속했어.
“평화 공원 말이다. 광장이 있는 곳. 거기 분수대에 갈매기 조각상을 세울 거거든.”
“아 그거, 저도 알아요, 조각! 지난번에 학교에서 빨랫비누를 조각칼로 깎아봤어요. 그거잖아요, 할아버지가 아저씨에게 준 미술 숙제!”
“현서가 한 건 확실히 조각이구나. 아저씨도 잘 아는 방식이지. 하지만 이번에 갈매기 마을에서 해 볼 숙제는 소조에 가깝단다. 찰흙 놀이를 해 본 적이 있지? 그때처럼 조각조각 덩어리를 붙여가면서 모양을 만들어서 구워내면 어떨까 싶구나. 도자기처럼. 이 마을에 담긴 장인들의 마음처럼 단단하게 구워내는 거지.”
조각가는 갈매기를 다시 품에 안았고 현서의 말을 놓치지 않으면서 걸었지. 현서도따라 걸었어. 계획에 없던 동행이었지만 그래서 더 특별했지. 현서는 비누를 조각했던 경험을 언급하며 조각가의 미술 숙제를 이해한다는 듯이 말을 계속했어. 뾰족한 걸로 단단한 것을 깎아 이쁜 모양을 완성하는 일은 현서에겐 영웅담이나 마찬가지였어. 수다스럽게 걷다 보니 금세 광장에 도착했지. 조각가는 여태 따라온 현서에게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말했지.
“아저씨는 이제 숙제해야 하는데.”
“저도 여기 있으면 안 되나요? 얌전히 있을게요.”
조각가는 이장님의 말을 떠올렸지. 분수 공개 행사를 따로 준비 중이니, 그때까진 조각상을 비밀리에 작업해 달라던 거였는데, 골목대장 현서가 곁에 있어도 괜찮을지 확신이 서질 않았어. 그렇지만 현서의 부탁을 거절하긴 쉽지 않았지. 현서가 눈을 반짝이고 서 있었거든. 갈매기를 처음 만났던 날 반짝이며 부서지던 파도처럼. 그 옆에 있는 갈매기도 계속 꾸르르르 소리를 내는 게 꼭 현서의 동행을 반기는 것 같았고.
“심심하진 않겠니?”
“어쩌면 저도 다음번에 비누 조각 말고 진짜 조각을 할 수도 있잖아요? 그때를 위해서 아저씨가 하는 조각도 한 번 보고 싶어요. 엄마가 좋아하는 선행 학습 그거처럼요. 얌전히 있을게요. 구경해도 되나요? 제발요.”
“그럼, 오늘 여기서의 일은 우리 셋만의 비밀로 하는 거다?”
조각가는 아이를 다룰 줄 알았어. 아이들은 비밀이란 말에 어깨를 움찔하고 눈을 반짝이기 마련이거든. 현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어. 오른쪽 주머니에서 아까 전의 노트와 연필을 다시 꺼내 들었지. 그림일기라도 그릴 것처럼 분수 쪽으로 연필을 대보더니, 무언가 감이 잡힌다는 듯, 화가 놀이를 시작했어. 조각가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분수대 쪽으로 돌아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