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 마을 이야기
쾅!
조각가가 작업실로 쓰는 하숙집 창고 쪽에서 큰 소리가 났어. 방이란 말 대신에 창고라는 말을 쓴 건 그 공간이 부엌이나 안방이 있는 본채와 떨어져 있기 때문이었지. 잡동사니가 워낙 많았던 공간이기도 해서 창고라는 이름 말고는 딱히 어울릴만한 이름이 없기도 했어. 조각가가 들어와 살기 전엔 하숙집 아주머니가 이전에 쓰던 공예 도구들이 먼지 속에서 숨죽이고 있는 곳이었으니까. 이래 봬도 하숙집 아주머니는 갈매기 마을 1세대 장인 중 한 명이었거든.
“아이고, 또 뭐가 잘 안 되는가 보네.”
하숙집 아주머니가 말했어. 그 옆엔 나비 다리를 하고 앉은 금귤 아주머니가 있었지. 마당 한쪽에 10살 넘은 금귤 나무를 키우고 있어서 마을 사람들 모두 금귤 아주머니라고 부르는 사람이었어. 금귤 아주머니는 덜 익은 금귤이 퍼렇게 드러내는 껍질 색의 옷을 즐겨 입었어. 그런데 요즘은 금귤 아저씨를 이장 선거에 내보내 마을의 실세 노릇을 좀 해보겠다고 진한 원색 옷을 입고 다녔지. 그게 무슨 색이라고 적어두고 싶진 않아. 진영 싸움에 껴들고 싶진 않거든. 다만 그 진한 원색 옷이 아주 잘 익은 것도 모자라 너무 익어서 터져 버린 금귤에 꼭 어울리던 색이란 것만 언급해 두려고. 금귤 아저씨의 발그레한 광대뼈와 닮은 색의 옷이었어.
“저러다가 예술가 나리가 집 다 부수겠네. 뭔 소음을 저리 크게 내노! 이장 보고 여기 오라 해야겠네. 광장 분수대에 조각 하나 놓겠다고 뭔 난리를 이렇게 치는 건지 내 한 번 따져 봐야겠어. 우리 아저씨가 다음번에 이장이 되면 분수 들어설 그 일대에 상가 건물을 쫙 지어서 지역 상권이나 살려 볼라니까 괜히 힘 빼지 말라고 해야겠어.”
금귤 아주머니가 혀를 차며 휴대폰을 집어 들고 이장님의 번호를 찾기 시작했어. 금귤 아주머니와 어렸을 때부터 언니, 동생 하던 하숙집 아주머니는 어린 시절 그랬던 것처럼 금귤 아주머니가 씩씩 내뿜는 불평의 기운을 잠재워야 했지.
“그만해. 자네가 창작의 고통을 아는가?”
“아니 그럼, 형님은 창작의 고통을 안단 말이오?”
금귤 아주머니가 하숙집 아주머니에게 앙칼지게 되물었어.
“이거 왜 이래, 내가 이래 봬도 미술 성적은 좋았어.”
하숙집 아주머니가 입을 삐죽했지.
“그거 다 어렸을 때 이야기 아닌가?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대로 깔짝이다 말던 물감칠 아니냐고. 그리고 말마따나, 이 마을에서 형님이야말로 예술과 거리 두고 사는 사람 아닌가? 전에 쓰던 도구들이나 재료도 다 저기 예술가 선생 지내는 창고에 숨겨두고 말이야.”
금귤 아주머니가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말했어. 하숙집 아주머니는 양손으로 다듬던 고구마 줄기를 내려놓고 대꾸했지.
“예술은 어린아이가 아니면 못 해. 아름다움을 좇아야 하는데, 어른이 되어서 아름다움을 제대로 볼 수 있겠어? 그러니까 그 시절 깔딱대던 붓질이 오히려 가장 예술적이지. 꾸밈없이 그렸다고. 하지만 그때도 그리기 시작하기 전까진 우당탕탕 소리가 났지.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고민이 많다고. 그 소리나 저 소리나 비슷하지, 뭐. 나는, 이제 소리조차 못 내는 다 죽은 재주꾼이지만”
하숙집 아주머니가 엄숙하게 받아쳤어. 아마도 오래전 그만둔 자개 공예 일이 떠오른 모양이었지. 하지만 하숙집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실어 나른 말에선 고소한 우유 맛이 났어. 금귤 아주머니와 하숙집 아주머니가 소녀일 때 타 먹던 가루우유처럼 달았지. 어쩌다 조각가를 변호한 것도 모자라, 잊고 지냈던 꿈 비슷한 걸 드러낸 셈이었지. 하숙집 아주머니가 눈을 반짝이면서 자기주장을 펼치는 걸 보자 금귤 아주머니는 괜히 머쓱했어.
“그래도 매번 저렇게 시끄럽게 난리법석을 부리는 건 좀 제재를 해야 할 성싶은데.”
“평생 저러고 있을 것도 아니고. 분수 다 만들면 떠날 사람이잖아.”
금귤 아주머니도 눈치는 있었어. 집주인이 너그럽게 구는데 자신이 좀생이처럼 구는 건 아니다 싶었는지, 분을 삭였지. 그러다 타깃을 조각가에서 갈매기로 바꿨어.
“분수 다 만들고 떠나면 갈매기는 어쩌나?”
“글쎄. 데려가거나 두고 가거나 둘 중 하나겠지.”
“형님이 맡아 키우진 않고?”
“무슨 소리. 조각가 선생이 얼마나 애지중지하는데. 한 번도 나한테 갈매기 밥 부탁 한번 한 적도 없을 정도라고. 내가 새 뒷바라지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면 가만히 있었을까? 나 귀찮게 안 하니까 같이 사는 거지. 집에 갈매기를 어찌 두고 살아.”
“갈매기는 예술가 나리 없이는 못 살 텐데? 애들이 얘기하는 거 들으면 저 새대가리가 날지도 않고 예술가 나리 발등 위에 올라타고 있거나 품에 안겨 있다며.”
“갈매기한테도 뭐 응어리진 거나 사연이 있겠지. 원래 안 날던 애는 아니라니까. 그래도 지금은 선생님이 매번 안고 다니면서 가족처럼 챙겨주지 않는가. 그러다 보면 정도 들 만큼 들었을 테고, 서울로 다시 가더라도 웬만하면 데려가려고 하겠지.”
하숙집 아주머니는 평상 위에 놓인 금귤 하나를 덥석 집어서 손바닥으로 동글동글 굴렸다. 입안에 홀랑 집어넣고 깨어 물었어. 혀끝으로 씨앗을 발라내느라 한동안 입을 우물거렸지. 일종의 신호였어. 말을 그만하자는. 금귤 아주머니가 한번 나비 다리하고 앉으면 두세 시간은 하숙집 아주머니 옆에 앉아서 수다를 떨다 갔거든. 주로 검증되지 않은 것들 것 질문으로 갖고 와서는 이런저런 음모론을 펼치는 게 대부분이었지. 하숙집 아주머니는 대체로 금귤 아주머니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을 때가 많았지만, 경청과 침묵이 금귤 아주머니가 하는 말에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었어. 오히려 그 반대일 때가 많았지.
금귤 아주머니가 하숙집 아주머니를 찾아오는 건 주로 저녁 식사나 다음 날 아침 식사 재료를 다듬는 한낮이었는데, 하숙집 아주머니가 밥을 준비하는 내내 금귤 아주머니가 확실치도 않은 걸로 이렇게 저렇게 말을 부풀리고 있으면, 미간에 주름이 절로 지어졌다고 했어. 허풍 가득한 걸 옆에서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짓고 있는 밥이나 다듬고 있는 식재료에 의심의 씨앗이 알알이 심긴다고 생각했지. “에이, 밥맛 떨어지게 왜 그래!” 하면서 금귤 아주머니를 말리는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금귤 아주머니가 집에서 가져온 과일을 입어 넣는 걸로 시위 아닌 시위를 했어. 그런데 어쩐지, 그날의 금귤 아주머니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지. 아주머니의 이번 타깃은 조각상이었어.
“근데 뭐 대단한 걸 만든다고 저렇게 틀어박혀서 보여주지도 않나?”
하숙집 아주머니는 또 시작이냐는 듯 입안에서 우물거리던 금귤 씨를 손바닥에 뱉어냈어. 고 작고 동그란 열매에서 씨앗만 여섯 개가 나왔지.
“왜 또?”
“좀 그렇잖아, 십시일반 모아서 설치하는 조각이면 형님도 나도 마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점검할 수 있지 않느냐 이 말이야. 우리 마을이랑 안 어울리면 어쩌고? 마을의 역사나 신념에 반하는 걸 조각하는 거면 또 어떡하나? 작품이랍시고 완성될 때까지 기다려주었는데 영 꽝이면 어쩔 거야?”
하숙집 아주머니는 대꾸 없이 금귤 한 알을 더 집어 들었지. 그만하라는 뜻이었어. 금귤 아주머니라고 그 뜻을 몰랐을까? 하지만 무슨 일인지 금귤 아주머니는 이야기를 꾸역꾸역 계속했지.
"형님이라면 그래도 같이 살면서 밥도 해주니까 옆에서 슬쩍 볼 수 있지 않을까?”
“무슨 말이 하고픈…거…고?”
입에 금귤을 한 알 넣으며 하숙집 아주머니가 엉거주춤 대답했지. 성을 낸 거였는데 입안에서 잘게 다져지는 과육과 발라지는 씨앗들 때문에 화난 티가 전혀 안 나는 반응이었어. 금귤 아주머니는 옳다구나 싶어서 속삭였지. 혹여 자기가 하는 말이 창고에 가 닿을까 경계하는 눈치였어. 그때까지도 쾅하는 소리가 계속되고 있었지만, 금귤 아주머니는 아주 조심스러웠어. 하숙집 아주머니가 금귤 씨앗을 손바닥에 뱉을 때까지 금귤 아주머니는 이런저런 상황을 상상하며 하숙집 아주머니를 부추겼지.
“그러니까 … 매일 그렇게 산책하러 다닌다며? 그러면 형님이 개다리소반 하나 챙겨 두고 있다가 이때다 싶을 때! … 형님이 … 아니 뭐 어른이기도 하고, 선배 예술가로서도 충분한 자격이 있지 않느냐는 말이지.”
멀리서 들으면 웬 수수께끼 같은 제안이었어. 하숙집 아주머니도 그땐 왜 그걸 그렇게 가만히 듣고 있었을까? 금귤 아주머니는 한동안 평상 위에서 자신이 세웠다는 조각상 염탐 작전을 설명했어. 절대 짧지 않았던 수다가 끝난 건 창고 문이 열리며 조각가와 갈매기가 해안가로 산책을 나설 때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