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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Oct 24. 2024

2화. 바라다

갈매기 마을 이야기

  모델이라고 퉁 친 생명을 곁에 두고 산 지 2주 정도 지났어. 작업에 의외로 속도가 붙었지. 함께 지내다 보니 정말 갈매기를 모델 삼아도 괜찮겠다 싶어졌거든. 무엇보다 마을을 시각화하기엔 갈매기만 한 생명이 없었고, 외부 언론이 주목한 환경 이슈를 풀어내는 상징물로도 적합했지. 조각가가 담아내고 싶던 바다와 관련도 깊었고. 갈매기를 바닷가에서 데려온 그날, 갈매기를 그냥 내버려두고 싶지 않다고 고집을 부린 스스로가 마음에 든 것도 컸어. 조각가는 사적인 이야기가 있는 대상을 모델 삼아 작업할 때 집중을 좀 더 잘했거든.


  하숙집 아주머니의 잔소리를 피하려고 즉석에서 지어낸 말이 진심이 되었어. 그 마음을 스스로 인정하자 조각가의 방에 벽마다 갈매기 스케치가 빼곡히 붙기 시작했지. 조각가는 기뻤어. 손에 잡힐 듯 말 듯한 조각 작업에 적어도 양적으로는 진전이 있는 것 같았거든. 갈매기에게 고마웠고 어떻게든 그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지. 둘은 매일 바닷가 산책을 함께 했어. 산책 시작 전, 조각가는 작업실에서 갈매기를 무릎에 앉혀놓고 플라스틱 빗으로 깃털을 빗겨주었지. 마을 전체가 주목하는 조각상 모델의 품위 유지를 위한 거였어. 도심 속 비둘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곱진 않다는 걸 떠올렸거든. 사람들이 갈매기를 좋게 봐주길 바랐어. 갈매기 마을이 도시는 아니었지만, 갈매기 마을 주민들이 떠들기 좋아한다는 점을 생각해서 조심한 거지. 기왕이면 비둘기 보듯 갈매기를 보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겼던 거야. 그래서 매번 갈매기를 깔끔히 단장하고 산책하러 나가는 버릇이 생겼지.


  하지만 조각가가 가장 좋아하는 갈매기의 모습은 애써 빗어 놓은 깃털이 바닷바람에 살짝 흐트러졌을 때였어. 가지런히 정돈된 깃털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지. 헝클어진 모습을 하고 있어도 갈매기가 갈매기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게 마음에 들었어. 바닷바람이 갈매기의 깃털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면, 왜소해 보이기만 하던 갈매기의 몸집도 이전보다 커졌는데, 조각가의 눈엔 그 모습이 이제 막 출정식을 마친 어린 선장 같았지. 바다를 곁에 두고 사는 생명의 위용 같은 게 보였대. 조각가는 그 모습을 ‘바람 쪘다’라고 불렀어. 바람 찐 갈매기를 볼 때마다 영화 속 해적들이 선장의 말에 제창할 때 내지르던 감탄사 ‘아호이(ahoy)’를 연신 내질렀지. 믿거나 말거나, 그때마다 갈매기도 조각가를 보면서 눈을 끔뻑했어.


  한편으론 고민도 깊어졌어. 조각이 완성되기까지 갈매기가 자신의 곁을 지켜 주었으면 했지만, 갈매기가 자기 자신을 처음 만난 날처럼 바다 위를 날며 지내길 바랐지. 그도 그럴만한 게, 갈매기는 조각가와 함께 지낸 이후로 통 날지 않았거든. 조각가는 갈매기를 언제까지나 곁에 끼고 살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지. 분수 조각이 완성되면 원래 살던 곳, 갈매기 마을에서 기차로 네 시간 정도 가야 나오는 도시로 돌아갈 예정이었거든. 갈매기가 더 이상 날지 않긴 했지만, 바다 귀퉁이 하나 보이지 않는 빌딩 숲에서 데려가 같이 살자고 할 순 없다고 생각했어. 날든 날지 않든, 갈매기에겐 바다, 물이 필요해 보였거든. 혹 조각가가 자기를 대신하여 갈매기를 돌봐줄 마을 주민을 찾아보진 않았느냐고? 식성이 까다롭지 않고 집도 지켜주는 백구라면 모를까, 새우과자만 먹고 배변 훈련도 안 되는 갈매기를 데려가겠다는 사람은 없었지.


  갈매기가 취하는 자세는 딱 세 가지였어. 햇볕 아래 낮잠을 자는 고양이처럼 동그랗게 몸을 말고 조각가의 품에 들려있거나, 두 발을 조각가의 발등에 올리고 날개를 고이 접은 채로 등대처럼 쭈뼛쭈뼛 주변을 살피거나, 뒤뚱거리긴 하지만 탑탑탑탑 힘차게 걷는 거였지. 이전처럼 날개를 활짝 피는 자세는 아주 보기 힘들었어. 특히 좌우로 날개를 뻗어내는 듯한, 기지개라도 켜는 듯한 날개 자세는 거의 하질 않았지. '옆으로 나란히' 같은, 비행하는, 자유로운 느낌이 가득한 그 자세가 분수 위에 조각하고 싶은 포즈였는데 말이지. 그러거나 말거나 갈매기는 난롯가 앞 고양이처럼 두 날개를 몸통에 바짝 갖다 대고서 얌전을 떨었어.


  갈매기는 하늘을 나는 대신 육지 위를 걷고 싶었던 걸까? 자신을 살펴주는 조각가, 육지의 생명에 관한 거라면 뭐든 다 따라 하고 싶었던 걸까? 같아지고 싶었던 걸까?


  나는 갈매기를 조각하려는 사람과 더 이상 날지 않는 갈매기. 두 생명이 콤비를 이뤄 다니는 읍내 골목마다 아이들이 몰려다녔어. 시끌시끌했지.


  "선생님, 분수는 언제 완성되나요?”

  "얘가 정말 조각상 모델이에요?"

  “날개가 있는데 얜 왜 안 날아요?“

  “많이 다쳤대요?"

  "저 어제 바닷가에서 얘랑 닮은 애들이 엄청 빠르게 날아다니는 거 봤어요!”

  “아저씨, 저도 한번 발등 위에 올려봐도 돼요? 한 번만요.”


  그때마다 갈매기는 아이들의 관심이 귀찮다는 듯 깃털 품을 한껏 부풀리고서 조각가의 팔에 안겼어. 조각가는 가늘고 긴 눈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지. 일종의 묵비권이었어. 하지만 그런다고 호기심이 꺾일 아이들이 아니었지. 읍내 골목에서 삼십 분이 넘는 하숙집 작업실 앞까지 따라오는 녀석들이 늘 너다섯 명은 되었어. 그 때문에 주인 아주머니께서 아이들 집마다 전화를 돌려대는 게 일이었지. 늦기 전에 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가라고. 낮이 긴 여름이라지만 가로수가 몸집을 잔뜩 키운 시골길이라 돌아가는 길이 금세 어두워질 수 있다고. 조각가는 전화를 돌리느라 정신없는 하숙집 아주머니께 양해 인사를 하고, 갈매기는 조각가의 품에서 잠이 든 채로 작업실로 쓰이는 창고 안으로 같이 들어갔지. 아이들에게도 인사를 잊지 않았어.


  "나중에 광장으로 조각상을 보러 오렴."


  갈매기와 덩그러니 둘이 작업실에 들어오자, 조각가는 실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갈매기를 책상 옆에 내려놓았어. 그리고 아이들이 한 말을 되뇌어보았지.


  ‘그러게. 날 수 있을 텐데 말이지.'


  갈매기는 바람 찐 상태로 또 눈을 끔뻑하며 조각가를 쳐다보았어. 끼룩하는 소리 하나 없었지. 조각가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샀던 새우과자 봉지를 하나 뜯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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