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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Oct 24. 2024

1화. 만나다

갈매기 마을 이야기

  옛날 옛적에, 갈매기 마을에는 평화 광장 분수 설치를 위해 거액을 기부한 이장님이 계셨어. 이장님은 조각가 한 명을 불렀지. 유명하진 않았지만, 실력 하나는 확실한 애제자였대. 이장님은 이전에 유명 조각가이자 대학교수로 살았었거든. 이장님은 조각가에게 분수 맨 위를 장식할 조각을 부탁했지. 조각가도 일찍이 대학 동기를 통해 대학 시절 은사님이 은퇴 후 갈매기 마을에 사신다는 소문을 전해 들었다고 하더라. 하지만 이장직을 맡고 계실 줄은 몰랐대. 그런 분이 덜컥 전화까지 해서 작품 의뢰를 하실 줄은 상상도 못 했지. 짧고 굵게, 그리고 간곡히 부탁하시니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 그렇게 덜컥 타지 생활을 시작했대.


  조각가는 세 달간 마을에 머물렀어. 하숙집을 구하자마자 무엇을 조각할지 살피려고 마을을 구석구석 다녔지. 막막했다고 하더라. 이장님이 말끝마다 “넌 내 애제자였으니까,” 하면서 조각상에 관한 구체적인 구상을 삼간 탓도 있었지. 하지만 무엇보다도 작업 기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어. 석 달이라니. 압박감이 컸지. 그때마다 조각가는 머리를 비우려고 바닷가 산책을 많이 나갔대. 그 길 따라 깔아 둔 노란 벽돌길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을 정도야. 마을에서 만든 관광 상품이었지. 말했잖아, 갈매기 마을이 워낙 유명해져서 관광객도 찾아오게 되었다고. 이장님이 프랭크 L. 바움의 <오즈의 마법사>를 좋아해서, 에메랄드 시로 가는 노란 벽돌길을 모티브 삼아 해변 벽돌 산책로를 깔았다는 설도 돌더라.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이장님만 알겠지 아마.


  갈매기 마을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어. 조각가는 바닷가를 산책하고 있었어. 이상하게 그날만큼은 생각이 정리되지 않고 오히려 마구 튀어 오르더래. 그리고 그 튀어 오른 생각의 중심엔 물이 있었지. 조각가는 분수 조각상 제작이 수채화를 그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보았어. 어떤 형상을 만들어서 비치하든 간에 자신의 작품이 결국 물에 젖을 거라는 점에 주목했지. 이전부터 물에 관한 생각은 조각가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어. 어린 시절, 시간만 나면 그리던 수채화와 중고등학생 때부터 해양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던 취미 덕분이었을까? 물론 조각가가 물이 피부에 닿고, 피부 안으로 파고드는 감각을 그저 좋아했던 이유도 있었지. 하지만 나중에 듣기로는 기억에도 없을 유약한 태아 시절이 요인으로 작용한 것 같았다고 어디서 인터뷰를 했더라고. 물을 가까이하면 인간이기 이전에 생명의 씨앗이던 시절, 양수 속에서 느꼈던 모체와의 유대감과 안전감이 생생해지고, 오래도록 자신의 무의식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물의 기억을 되살리는 기분이 든다고 했지. 조각가에게 물은 끊을 수 없고, 끊고 싶지 않은 물질 중 하나였대.


  ‘물속에선 안전해. 물이 묻은 자리엔 울어도 티가 나지 않아. 오롯이 호흡만이, 방울방울 제대로 티를 내면서 거품으로 사라지지.’


  이렇게 생각에 마침표를 찍으면서 조각가는 조금씩 작업 부담을 덜어냈대.


  그로부터 계속, 조각상의 모델을 찾아다녔지. 기왕이면 마을의 남쪽을 지키는 바다를 담아내고 싶다면서 매일 바닷가를 산책하면서 파도를 관찰했어. 파도가 쓸어서 가져간 육지의 것과 파도가 쓸어서 가져온 바다의 것을 파악해 보려고 했지. 모래사장 위를 맨발로 다닌 것도 그 일환이었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발로 해변을 걸으면 이전보다 조금 더 바다를 이해하는 기분이 들었대.


  딱 그렇게 한 달이 지났어.


  우리가 그날이라고 부르는 날이 다가왔지. 대단한 날은 아니었어. 그저 평범한 산책 날이었지. 그날도 조각가는 맨발 차림으로 바닷가를 걷고 있었어. 우락부락한 발가락에 콤플렉스가 있어서 평소 목이 긴 양말만 챙겨 신던 사람이었지만(내가 봐도 참 못생긴 발이었어), 바닷가에선 그러지 않아도 된다면서 긴장을 풀었지. 모래알과 파도가 상시 조각가의 발을 적당히 덮어주었거든. 살포시 가려주었거든. 파도 한 겹을 발등에 얹고 모래알 몇 천 덩이로 발을 감싸면, 한없이 울퉁불퉁한 그의 발도 꽤 미끈해 보였어. 그런데 그날은 파도가 좀 셌나 봐. 조각가의 발에 붙은 모래알을 사방으로 퍼뜨릴 정도로 조각가의 발등을 철썩 때렸나 봐. 노랗고 작은 알갱이 알알이 조각가의 발에서 튀었지. 그게 또, 갈매기 마을 위를 나는 그 갈매기에겐 새우과자 부스러기 같아 보였나 봐.


  그 갈매기가 끼루루룩 울면서 하늘에서 내려왔어.


  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센 바닷바람을 맞으면서도 흐트러짐 없이 날갯짓하고 있던 녀석이었지. 그 갈매기는 황조롱이처럼 정지 비행을 하며 보통 갈매기들에게서 느껴지지 않던 위용까지 풍겼어. 남들보다 좀 더 삐쭉 어긋나 있는 날갯죽지 아랫부분 때문인지 몰라도 양 날개를 펼치고 날 때도 뭔가 달라 보였지. 신중해 보였어. 폼이 딱 그랬거든. 지상이나 해수면 위의 목표물을 정하고 그 목표물을 취득하기까지의 갖은 계산을 마치고 나서야 땅으로 내려오는 녀석이었어. 그리고 그날의 목표물은 조각가의 발등 위에서 튀어 오르는 모래알이었어. 모양새가 꼭 새우과자 부스러기 같은 모래알이었지.


  새우과자는 갈매기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갈매기들이 좋아하게 된 먹거리 중 하나였어. 힘들여서 물고기를 잡는 것 대신, 육지 근처에서 부리를 텁텁대고 있으면 바삭한 새우과자를 던져 주는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지. 갈매기가 좋아할 수밖에 없었어. 그 갈매기도 조각가 곁으로 내려오는 내내 눈을 날카롭게 반짝였지. 끼루루룩 하는 영감님 소리에 어울리지 않는 급강하 비행을 보자 조각가는 입을 떡 벌렸어. 그러면서도 그 갈매기의 새하얀 깃털이 어제 막 세탁을 마친 하얀 솜이불처럼 폭신해 보인다고 생각했지.


  ‘비행은 날카로워도 외모는 부드럽구나.’


  모순적인 조합이 괜히 마음에 들었지. 그런데 그 갈매기가 육지로 내려온 것도 모자라 그의 발에 털썩 앉는 게 아니겠어! 조각가는 옴짝달싹도 못 하고 굳어버렸지. 그러거나 말거나 그 갈매기는 조각가의 발등 위에서 모래가 튀어 나간 쪽으로 부리를 텁텁 움직여댔어. 헛부리질이었지. 새우과자인 줄 알고 먹으려 했던 모래가 생각보다 입에 담기질 않자, 성질이 난 모양이었어. 조각가는 흠투성이인 자기 발 위에 아무렇지 않게 내려앉은 그 갈매기를 내려다보았어. 그 갈매기는 바닷가에서 사람을 본 게 놀랄 일은 아니라는 듯, 발의 주인의 참견을 아랑곳하지 않고서, 발에서 튀어 오른 노랗고 작은 알갱이를 찾으려고만 했지. 그런데 찾을 수가 있나, 사방이 모래알인데. 조각가의 발에 붙어 있었던 모래알이 무엇인지 어떻게 구별해 내겠어.


  안 되겠다 싶었는지 그 갈매기는 닥치는 대로 주변의 모래알을 부리 안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어. 바닷가를 비행하는 도중에 보았던 모래알, 곱게 솟아오르고 반짝이며 튀어 올라 좌우로 퍼졌던 그 모래알들을 선별해 내지 못할 바에야 주변의 모래알을 닥치는 대로 가지기로 했나 봐. 이 중에 한 알이라도 있겠지, 하면서. 컵컵, 헛구역질하면서 모래를 먹었어. 모래를 퍼먹는 갈매기라니. 조각가는 그 광경이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어. 더욱이 자신의 발 위에서 부자연스러운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지. 조각가는 조심스레 등을 웅크려 그 갈매기를 두 손으로 들어 올렸어.


  “네가 무얼 찾느라 내 치부 위에 내려앉았는지 모르겠지만, 마구잡이식은 몸에 좋지 않단다.”


  자신을 덮친 사람의 두 손에 그 갈매기는 컵컵, 끼루루룩 소리를 번갈아 가면서 냈지. 그러는 내내 입에서 모래를 뱉어냈어. 더 이상 토해낼 모래가 없을 때쯤에는 진이 빠졌는지 조각가의 품에서 잠이 들었어. 조각가는 망설였어. 그 갈매기를 살포시 모래사장 위에 올려두고 가도 될지. 맥없이 축 늘어진 그 갈매기가 파도에 휩쓸려 가기라도 하면 어쩌지. 그러다 결론을 내렸대.


  생명을 두고 가고 싶지 않다고.


  그날, 조각가는 평소보다 산책을 빨리 마치고 하숙집으로 돌아왔어. 품에 갈매기 한 마리를 안고 오니 하숙집 아주머니 눈이 휘둥그레졌지. 조각가는 에둘러댔어. 아무 이유 없이 갈매기를 애완동물처럼 들고 왔다고 하면 하숙집 아주머니가 반기지 않을 거로 생각했거든.


  “제가 조각할 대상입니다. 모델이지요. 아주머니께 불편함 없도록 제가 잘 보살피겠습니다.”


  마을 사람들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광장의 분수를 기다리고 있던 때였어. 조각가가 갈매기를 참고 자료로 삼겠다는데 집주인도 끽소리 내기가 쉽지 않았지. 그렇게 조각가와 갈매기의 동거가 시작되었어. 두 사람은 마을 아이들도 다 알 정도로 유명한 짝꿍이 되었지. 갈매기에게 따로 이름이 있었냐고? 아니. 아무리 갈매기 마을이라지만 사람과 같이 사는 갈매기는 유일무이했어. 그래서 모두들 갈매기야, 갈매기야, 하고 불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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