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또 같이 이렇게 여행을 가겠니

회고의 마법

by 프로이데 전주현


우여곡절이 있던 기억도 꺼내면 꺼낼수록 내 입맛에 맞춰진다. 어떻게든 좋게 해석해보려 한다. 그 시간이 낭비되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기 위해서다. 자신의 삶이 의미 있기를 바라는 건 인간으로서 드는 당연한 마음일 테니까.




성격 검사를 할 때마다 자주 보이는 결과가 있다.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게 곧 정확한 결과를 의미하진 않겠지만, 정확도(확률)는 높여줄 거라 생각하며, 나를 소개할 때 그 결과를 종종 인용하곤 한다. 그 결과의 대표주자(?)는 바로 회고(回顧)다. 돌아올 회 자에 돌아볼 고.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한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은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어 두고서도 사진첩 들여다보는 일이 한 번도 없다는 반면에, 나는 수시로 사진첩을 뒤적거리고 지난 일기장을 펼쳐 보며, 다녀온 지 몇 달, 몇 년이 지난 여행에 관해 써보려고 브런치북을 만들곤 한다. 그러다 보니 쌓인 짧고 긴 여행기가 수두룩하다. 오죽하면 브런치에서 내 프로필에 '여행 분야 크리에이터'라는 타이틀을 달아 주었을까(그렇지만 유튜브나 다른 플랫폼의 여행 크리에이티브 콘텐츠를 보면, 나는 그저 추억팔이하는 여행가일 뿐이다. 난 그렇게 스펙터클하겐 못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 속의 비일상-비일상 속의 일상을 경험케 하는 여행을 돌아보게 하는 지면이 있다는 건 확실히 반길 일이다.


삿포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을 때가 임신 9주 차였는데(그러고 보니 2화의 '사람 넷, 캐리어 둘, 휠체어 하나'란 제목에 오류가 있다. 태 중에 있던 아기, 밤비까지 포함시켜 '사람 다섯, 캐리어 둘, 휠체어 하나'의 여행이었다.), 그때를 회상하며 여행기의 마지막 화를 쓰는 오늘은 임신 35주 차다. 이대로라면 완연한 봄에 새 생명을 마주 할 테고, 비행기를 굳이 타지 않고서도 집 안에서 하루하루를 여행처럼 보낼 일상을 맞이하겠지. 그러다 다음번에 연재하는 여행 브런치북에는 3대가 함께 하는 우당탕탕 대서사시를 적어볼지도 모를 일이다. 무엇이 되었건, 더 많은 모험과 시련이 가득할 거란 생각에 설렌다(그렇다. 나는 지금, 다가올 육아의 무시무시함보다는 글감이 더 많아지는 일상에 (좋은 의미로) 가슴이 벌렁벌렁한 상태다).


비록 게 요리에 한이 맺혀 있던 엄마를 보좌하느라 여행 준비 기간부터 여행을 마치는 순간까지 마음이 널빤지처럼 이리저리 뛰었지만, 그 때문에 삿포로에서의 마지막날 밤 일기에 '힘들었다.'부터 써두긴 했지만... 회고의 마법이 어찌어찌 계속해서 가족 여행을 추억하게 했다(회고의 마법: 우여곡절이 있던 기억도 꺼내면 꺼낼수록 내 입맛에 맞춰진다. 어떻게든 좋게 해석해보려 한다. 그 시간이 낭비되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기 위해서다. 자신의 삶이 의미 있기를 바라는 건 인간으로서 드는 당연한 마음일 테니까. 그 덕분에 오늘을 좀 더 감사하며 살 수 있으니까).


삿포로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날 저녁. 나는 엄마와 캐리어에서 기념품을 하나씩 꺼내 보면서 처음으로 회고의 마법 주문을 발동시켰다. 쇼핑의 여왕은 물건들을 내려다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거 정말 잘 샀다"하는 셀프 칭찬의 멘트 말고도, "이걸 왜 이렇게 조금 사 왔을까?" 하는 반성의 멘트까지 서슴지 않았다(역시 보법이 다르십니다 여왕님). 그러다가 벌건 국물의 순두부찌개 배달이 와서 잠시 기념품 구경을 멈추고 한국에 돌아온 걸 200% 실감할 수 있는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그때, 엄마가 순두부 한 술을 뜨다 말고 말했다.


"언제 또 같이 이렇게 여행을 가겠니."


와. 독백 같은 그 한 마디에 '힘들었다.'라 적은 날의 일기고, 털게 사건이고 뭐고 다 휘리릭 사라졌다. 혹시 엄마는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으로 삿포로와 오타루를 누볐던 걸까. 그런 거였다면... 이 딸내미는 울컥할 수밖에 없고 귀국날의 일기를 이렇게 마무리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잘 다녀왔다 싶다. (...) 감사하다.]


인내의 연속이었던 가족여행이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새로웠고 복잡했고, 회고의 마법 주문이 잘 들 여행이었다. 초면이었는데도 내게 낯을 가리지 않았던 계획도시, 삿포로에 고맙다.






엄마, 아빠. 건강히 지내다가, 다음번엔 봄의 아이, 엄마 아빠의 손주까지 함께 여행 가자.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좋아. 함께 시간을 보내기만 한다면 그곳은 단번에 멋진 여행지가 될 거니까.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