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시대
이성의 빛과 차가워진 믿음
삼십 년의 길고 참혹한 전쟁이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막을 내리자, 유럽은 피 흘리는 신앙에 지쳐 있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교리의 차이로 서로를 죽이는 일을 원치 않았다. 그 결과, 루터교와 칼뱅교, 그리고 가톨릭교회는 각자의 영토 안에서 자기들의 신앙고백을 더욱 정교하고 딱딱하게 만드는 데에만 힘을 썼다. 신앙은 뜨거운 가슴의 체험이 아니라 차가운 머리의 동의가 되었고, 교회는 생명력을 잃은 채 형식적인 정통 신앙의 껍데기만 남게 되었다.
이처럼 교회의 빛이 희미해진 틈을 타, 세상에서는 '이성'이라는 새로운 빛이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더 이상 성경이나 교회의 권위에 의지하지 않고, 인간 자신의 이성을 통해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볼테르와 같은 철학자들은 교회를 미신과 억압의 상징으로 여기며 "사악한 것을 부수라!"고 외쳤고, 많은 지식인은 하나님을 단지 세상을 창조만 하시고 더 이상 간섭하지 않는 '시계공'처럼 여기는 이신론에 빠져들었다. 이 계몽주의의 물결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 신앙의 기초를 뿌리부터 흔들었다.
경건을 사모하는 마음
그러나 주께서는 이성의 차가운 빛이 온 세상을 뒤덮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 성령께서는 교회의 형식주의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의 마음에 새로운 불을 지피셨으니, 바로 경건주의 운동이었다. 독일의 목사 필리프 야코프 슈페너는 신앙의 회복을 위해 '경건의 모임'이라는 소그룹을 만들어, 성도들이 함께 모여 성경을 읽고 삶을 나누게 하였다. 그의 제자 아우구스트 헤르만 프랑케는 할레 대학을 중심으로 고아원과 학교를 세워, 경건한 신앙이 어떻게 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이 경건주의의 가장 아름다운 열매는 진젠도르프 백작과 모라비아 교도들을 통해 맺혔다. 진젠도르프는 가톨릭의 박해를 피해 망명한 모라비아 성도들을 자신의 영지인 헤른후트에 받아들였다. 그들은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살며, 주후 천칠백이십칠 년에 시작된 24시간 연속 기도회는 무려 백 년 동안이나 꺼지지 않고 계속되었다. 이 작은 공동체는 불타는 기도와 선교의 열정으로 가득 차, 당시 어떤 교단보다도 더 많은 선교사를 세계 곳곳, 그린란드에서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파송하였으니, 이는 초대교회 이후 가장 위대한 선교 운동의 시작이었다.
이상하게 뜨거워진 가슴
독일에서 경건주의의 불길이 타오를 때, 잉글랜드에서는 존 웨슬리와 그의 동생 찰스 웨슬리를 통해 위대한 부흥이 일어났다. 옥스퍼드 대학 시절, 그들은 친구들과 '거룩한 모임'을 만들어 규칙적인 신앙생활에 힘썼고, 사람들은 그들을 조롱하며 '감리교도'라 불렀다. 성공회 사제였던 존 웨슬리는 아메리카 선교에 실패하고 낙심하여 돌아오던 중, 배에서 풍랑을 만났을 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라비아 선교사들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주후 천칠백삼십팔 년 오월 이십사 일, 런던의 올더스게이트 거리의 한 집회에 참석하여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듣고 있던 존 웨슬리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꼈다"고 고백하였다. 그는 마침내 믿음을 통해 구원받는다는 복음의 진리를 체험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영국의 탄광촌과 공장 지대를 찾아다니며, 교회로부터 버림받은 노동자들에게 야외 설교를 통해 복음을 전했다. 수많은 사람이 그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고, 웨슬리는 그들을 '속회'라는 소그룹으로 좇아 신앙을 양육하였다. 이 감리교 운동은 잉글랜드 사회를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완전히 새롭게 바꾸어 놓았다.
바다 건너 임한 큰 각성
성령의 역사는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식민지에도 동일하게 임하였다. 뉴잉글랜드의 목사 조나단 에드워즈는 당대 최고의 지성을 갖춘 설교가였다. 그는 "진노하신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죄인들"이라는 설교를 통해, 인간의 비참한 상태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을 강력하게 선포하였다. 그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죄를 깨닫고 통회하며 주께로 돌아왔다.
웨슬리의 친구였던 조지 휫필드는 천둥과 같은 목소리를 지닌 위대한 부흥사였다. 그는 일곱 차례나 대서양을 건너며 아메리카의 모든 식민지를 순회하였다. 그의 열정적인 야외 설교를 듣기 위해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고, 그의 설교는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식민지 사람들을 하나의 거대한 영적 체험으로 묶어주었다. 이 '대각성 운동'은 훗날 미국이 하나의 독립된 국가로 탄생하는 데 중요한 영적 기초가 되었다.
혁명의 불길과 이성의 제단
계몽주의 사상은 마침내 프랑스에서 거대한 정치적 폭발을 일으켰으니, 바로 프랑스혁명이었다.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친 혁명은 낡은 왕정과 귀족 제도를 무너뜨렸을 뿐만 아니라, 그들과 결탁했던 가톨릭교회를 향해서도 칼을 겨누었다. 혁명 정부는 교회의 재산을 몰수하고, 성직자들을 추방하거나 살해하였다. 그들은 심지어 기독교를 완전히 없애기 위해 달력을 바꾸고,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 '이성의 여신'을 세워 숭배하는 일까지 벌였다.
이 극심한 혼란의 끝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라는 영웅이 등장하여 권력을 잡았다. 그는 무질서를 수습하고 로마 교황청과 협약을 맺어 교회의 활동을 다시 허용하였으나, 교회는 이제 국가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로써 수백 년간 유럽의 질서를 지탱해 온 '왕관과 제단'의 연합은 완전히 무너졌고, 교회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세속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필리프 야코프 슈페너(Philipp Jakob Spener), 『경건한 열망』(Pia Desideria) 독일 경건주의 운동의 시작을 알린 선언문과 같은 저작. 당시 교회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성경 공부 소그룹 활성화 등 구체적인 개혁 방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존 웨슬리(John Wesley), 『일기』(The Journal of John Wesley) 웨슬리가 수십 년에 걸쳐 기록한 방대한 일기. 특히 그의 올더스게이트 회심 체험과 영국 전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던 부흥 운동의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1차 사료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진실한 이야기』(A Faithful Narrative of the Surprising Work of God) 에드워즈 자신이 목회하던 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대각성 운동의 부흥의 양상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분석한 보고서입니다.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An Answer to the Question: What is Enlightenment?) 계몽주의의 정신을 "과감히 알려고 하라(Sapere aude)!"라는 말로 요약하며, 인간 이성의 자율성을 강조한 계몽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철학 문서입니다.
유스토 L. 곤잘레스(Justo L. González), 『종교개혁사』(The Story of Christianity, Vol. 2) 종교개혁 이후 시대의 '정통주의' 형성, 그리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난 경건주의, 감리교, 대각성 운동의 흐름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W. R. 워드(W. R. Ward), 『18세기의 복음주의 부흥』(The Protestant Evangelical Awakening) 독일의 경건주의, 영국의 감리교, 미국의 대각성 운동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범대서양적인 부흥 운동으로 발전했는지를 분석한 연구서입니다.
미셸 보벨(Michel Vovelle), 『프랑스혁명과 종교』(The Revolution against the Church: From Reason to the Supreme Being) 프랑스혁명 시기에 일어난 급진적인 '탈기독교화' 운동의 과정과 그 의미를 상세하게 다룬 연구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