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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윤 Sep 23. 2015

박氏연대기 3

제 1 부 고향

3. 일본 유학


그의 아버지는 평안도 안주 박천 사람이었다. 그는 전통적인 교육을 받았지만 개화파에 관여했던 작은아버지의 주선으로 경성사범학교를 거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당시 일본은 연합군이었던 미국과의 외교적인 문제로 불만이 많았고 1931년 관동군이 일으킨 만주철도 폭파사건을 계기로 국제연맹에서 탈퇴하고자 하였다. 제국주의에서 군국주의로 노선을 바꾼 일본은 그동안 미뤄왔던 군비 확충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동아시아의 식민지에서 징용에 물자까지 긁어다 댔지만 모든 것이 부족했다.


그의 사정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집에서 보내주는 돈으로 학비를 대신했지만 생활비는 벌어서 써야 했다. 하숙집 아이들 교습을 해주기도 하고 가게의 배달을 도와주고 용돈을 벌어서 썼다. 유학생 중에는 부호의 자식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학병을 피해 왔거나 공부에는 관심이 별로 없는 자들 이어서 허랑방탕했기 때문에 뜻 맞는 몇 사람과의 교류뿐이었다. 그중에 박찬우와 친하였는데 그는 의친왕의 며느리인 박찬주의 동생이었다.


“박형, 같이 만주로 가지 않겠어?”


박찬우는 그에게 조선의 독립을 위해 만주로 함께 갈 것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공부를 핑계로 이런 곳에서 편하게 지내는 것이 그에게는 괴로운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형과 아버지가 총독부에 협조하는 것을 늘 불만스럽게 이야기했다.


“내래 내 방식으로 하가써."


그는 자신의 소신을 말했다. 만주에 가서 그들과 같이 직접 독립운동을 하면 좋겠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여건이 안 되는 사람들은 독립운동을 물질적으로 지원하거나 잃어버린 주권을 찾을 수 있도록 백성들을 계몽하는 것도 독립운동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이곳에서 꼭 해야 하는 일인가?”


“그렇티는 않지만 이곳에서 시작할 수야 있디.”


그들은 틈이 나는 대로 만나서 개혁과 독립에 대해서 격론을 벌였다. 그 시기에 유학생들끼리 모여서 하는 이야기는 대체로 문학이나 예술 같은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그들에게 그것은 도피자들의 모습으로 비쳤다. 1930년을 전후해서 당대의 지식인이던 최남선, 이광수 등이 독립운동을 포기하고 자치권을 인정하며 창씨개명을 하는 등 일제에 협조하면서부터 지식인들 간에도 일본을 조국으로 인정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었다. 더욱이 신세대라 할 수 있는 유학생들은 일본에 대하여 자신이 살아가는 조국으로 알고 황국신민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나는 김구 선생이 조직한 한인애국단에 참여하기로 했네.”


얼마 후, 박찬우는 선언하듯 말을 하고는 동경을 떠났다. 박찬우가 떠난 후, 그와 사귀던 일본 여학생이 임신하였다. 그녀는 동경 경시청 간부의 딸이었는데 그 일로 그녀는 자주 그의 하숙집을 들락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학교에서 나오다가 형사들에게 붙들려 경시청으로 끌려갔다. 그곳에는 이미 여러 명의 유학생과 조선인들이 끌려와 있었다. 맞은편 방에는 겉옷이 벗겨진 젊은이가 결박된 채 혼자 앉아 있었다. 그는 며칠 동안 이유도 없이 끌려나가 고문을 당했다.


"너 저놈 알지? 저놈에게 무엇을 지원했는지 말해!"


형사는 짧은 봉을 무차별적으로 휘두르며 말했다.


"나는 모르는 자요"


"다 알고 있는데 어디라고 오리발이야? 이 자식, 너 박찬우 잘 알잖아?"


그는 깜짝 놀랐다. 만주로 간 박찬우를 이들이 어찌 아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면 벌써 그가 일을 벌이다 잡힌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디 있습니까?"


"그걸 니가 알지, 내가 어떻게 알아!"


형사는 비아냥거리며 그의 머리를 후려쳤다. 머리가 깨져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는 어이가 없었다. 만주로 떠난 그가 어디 있는지 어찌 안단 말인가. 아직 그가 무사하다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에게 박찬우의 소재와 그 젊은이에게 무엇을 제공하였는가 하는 내용을 반복해서 고문하며 그를 괴롭혔다. 그러나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었다. 거짓으로 꾸며댈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 친구가 만주로 간다는 소리만 들었지 모릅니다."


그는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고 기절하도록 얻어맞아도 결국 자신의 결백이 밝혀질 것이라 믿었다. 하숙집에 있는 여자 친구가 걱정되었지만 차라리 이 기회에 집으로 돌아가길 바랐다. 그와 같이 잡혀 있던 유학생과 조선인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도 며칠이 지나면 이곳을 나가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그는 다시 불려 나갔다. 그리고 형사가 내미는 문서에 서명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것은 진술서라는 문서였는데, 심문 조서의 내용과 같이 그가 이봉창과 박찬우와는 관계가 없다는 것을 적어 놓은 것이었다. 그는 이봉창이라는 사람도 모르고 박찬우와도 관계가 없으니 진술서에 서명했다. 그러자 형사들은 그를 경시청 건물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그는 자기의 후견인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경시청의 보안과장이었다.


"자네가 박철인가?"


"그렇습니다."


그는 어리둥절해서 대답했다.


"나는 미찌꼬의 아비일세. 지금 나가는 즉시 짐을 챙겨서 조선으로 돌아가게"


그는 대충 짐작을 했지만, 그의 단호한 모습에 그가 화가 많이 났으며 자신과 미찌꼬를 떼어 놓으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 어떻게 지금 떠납니까?"


"그 조건으로 자네를 후견 한 것이네. 미찌꼬가 부탁하지 않았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네"


그는 그녀가 아버지를 졸라서 자신을 구명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조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조건은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공부를 마치지 못한 것도 그렇고 그녀를 이대로 두고 떠난다는 것도 용납이 안 되었다.


"집에 가 미찌꼬와 상의해 보겠습니다."


"아니 미찌꼬는 만날 수 없네. 직원들이 자네를 동경 항까지 데려다줄 걸세"


그는 형사들에게 질질 끌려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집으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녀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지만 형사들은 그 말을 무시했다. 그들은 강제로 그의 짐을 챙기게 하고는 그를 데리고 항구로 향했다. 그는 그녀에게 편지를 써 주면서 전달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순순히 편지를 전해주겠다고 하고는 그가 배를 타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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