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상윤 Sep 23. 2015

박氏연대기 2

제 1 부 고향

2. 서울 유학


이튿날, 동생은 열이 높아 학교도 가지 못하고 앓아누웠다. 형은 엄마의 회초리가 무서워 일찌감치 학교로 달음질쳐 버렸다. 그래도 학교 가는 길에 복숭아 몇 개를 따서 책보에 감추는 것은 잊지 않았다. 노랗게 잘 익은 복숭아 한 개면 구슬 서너 개는 바꿀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서울 유학을 갔다가 1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었다. 서울 생활은 따돌림의 연속이었다. 그들과는 피부색도 달랐다. 그는 까맣게 탄 피부에 하얀 이빨만이 유난히 반짝거렸다. 시골 촌놈이었던 그는 친구도 없이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나무도 없는 가파른 언덕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판잣집 사이로 전깃불만 신나게 널을 띄는 그곳이 너무 낯설어 그는 밤마다 훌쩍거렸다.


다음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동갑내기 사촌과 왕십리 시장까지 놀러 가거나 한강 공터에 들어온 서커스단에 몰래 들어가 구경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시장 입구에 있는 극장은 그들의 또 다른 일탈 장소였다. 능숙한 사촌은 매표소 근처에 서 있다가, 한 쌍의 남녀가 표를 사면 그들 뒤를 따라서 자연스럽게 걸어 들어갔다. 그는 그것이 참 신기했지만 붙잡혀서 혼이 날까 두려워 처음에는 극장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몇 번을 보고 난 후엔 그도 자연스럽게 어느 부부의 옷자락을 잡고 유유히 따라 들어갔다. 영화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멋진 배우들의 모습 때문에 커다란 화면 속에 빠져서 몇 번을 본 적도 있었다. 신나게 영화를 보고 나오면 어김없이 컴컴한 밤거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가 죽어 집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있으면 다락방에 있던 누나가 그들을 구해주곤 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주 옷을 벗기고 쫓겨나거나 회초리를 맞고 잠들어야 했다.


그가 유학을 포기하게 된 사건은 참 우연히 일어났다.


방과 후,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사촌이 병을 주어다 팔면 자장면을 사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둘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거리에서 병을 주어다 팔았다. 그들은 입 언저리가 새까맣도록 자장면을 사 먹고 영화까지 한 편 보고 나서야 집에 돌아왔다. 그 날 집에는 난리가 나 있었다. 장롱 속에 넣어 둔 돈이 없어진 것이었다. 그들은 그 날 무엇을 하고 돌아다녔는지 사실대로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병을 주어다 팔아 자장면을 사 먹고 영화를 보았다고 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자장면을 먹고 영화를 보려면 병을 얼마나 모아야 하는지 그는 계산해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 사건으로 그의 대단한 지원자인 외할머니가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그날 보따리를 싸서 고향으로 내려갔다. “니 애비를 서울로 보내야겠다.” 는 할머니의 푸념만이 그의 귓전에 맴돌았다.


<계속>


이전 02화 박氏연대기 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