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부 고향
4. 봉천의 거부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한동안 그녀에게서 연락이 오길 기다렸다. 편지를 몇 번 더 보냈지만, 회신은 없었다. 그러던 중에 만주에 가 있던 그의 작은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왔다. 만주에 일자리가 있으니 급히 오라는 것이었다. 일본에서의 회신을 기다리다 지친 그는 우선 만주로 가기로 했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미찌꼬의 연락을 기다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15살 되던 해에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했다. 그보다 세 살 위인 아내는 그가 경성으로 떠나기 전에 딸을 낳았고, 박 씨 집안의 며느리로서 충실히 집안을 돌보았다. 그가 경성에서 학업을 마치고 일본 유학을 갈 때도 일언반구 없었다. 그가 일본에서 돌아와 한동안 얼이 빠진 사람처럼 살았지만, 가족들은 그에게 연유를 묻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존재하는 것으로 충분히 가치를 지니고 있는 듯했다.
그가 작은아버지의 연락을 받고 도착한 곳은 만주국 수도인 봉천이었다. 봉천은 일본이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부의를 앞세워 세운 만주국의 수도였다. 봉천이 만주국의 수도가 되면서 일본인들과 중국인들이 몰려들어 번창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 온 조선 이주민들이 많은 곳이기도 했다.
그는 작은아버지의 소개로 조선 아이들이 다니는 봉천실업소학교에 교사로 들어갔다. 그가 들어간 학교는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많은 조선인 학생들이 있었다. 그는 역사에 대해서 가르쳤다.
그가 봉천실업소학교에 부임하고 몇 주가 지날 즈음, 박찬우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가 몸담은 한인애국단의 일로 봉천을 들른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했지만 그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게 반가웠다.
“자네가 하려는 개혁이 이런 방식이었나?”
박찬우는 그가 교사가 된 것이 그가 말한 개혁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백성들을 깨치고 민족의식을 심어 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네.”
“물론이지. 여러 노선이 있지만, 어느 것이 답이라고 잘라 말할 수는 없지.”
“그래, 자넨 어떤 일을 하나?”
“우리는 소수의 인원으로 커다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일하지. 무력 투쟁 말이야.”
박찬우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참, 정월에 동경에서 난리가 났었는데 알고 있나?”
“그 일로 내래 경시청에 끌려가 고초를 좀 겪었디. 자네에 대해서 묻더구만. 이봉창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봉창 동지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아는가? 그는 목숨을 걸고 일황을 암살하려고 했지.”
“아 그런 일이 있었구만.”
그는 새삼스럽게 놀랐다. 그런 엄청난 일을 이 친구가 속한 단체에서 한다니 대견스럽기도 했다.
“항상 몸조심하시게.”
“물론이지. 하지만 우리는 입단할 때 서약을 했네. 단의 명령에 따라 민족 해방을 위해 목숨을 던지겠다고 말이네. 이미 내 목숨은 단에 바쳤네. 지금은 여벌로 사는 것이지.”
그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결코, 학창 시절 불만투성이의 그가 아니었다.
봉천실업소학교는 시설이 열악했지만 날로 아이들이 늘어 갔다. 교실과 부대시설이 턱없이 부족했다. 가르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는 봉천의 이름난 부자인 김창호를 찾아갈 결심을 했다. 그가 일본인을 등에 업고 토지를 매매하여 크게 돈을 벌었다는 것은 들었지만 조선인을 상대로 매국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서 그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한 것이다. 봉천역 근처의 땅이 모두 그의 소유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김창호의 집은 봉천 도심의 한가운데 서양식으로 잘 지은 푸른색의 3층 저택이었다. 정문에는 일본 군인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집의 내부도 서양 장식으로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었다. 그는 김창호를 그의 집 거실에서 만났다. 그는 두툼한 살집에 부리부리한 눈매를 한 사내였다.
“선생께서 저를 어찌 찾으십니까?”
그는 매우 거만스럽게 말했다.
“조선인들 사이에 사장님의 평이 아주 좋은 것을 듣고 찾아뵈었습네다.”
그는 정중하게 인사했다. 김창호는 그의 칭찬에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동경에서 유능한 선생 한 분이 오셨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과찬이십네다. 이제 처음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미숙한 점이 많습네다.”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이니 과중한 임무를 맡은 셈이군요. 좋은 지도를 바랍니다.”
그들은 이런저런 얘기로 차가 식을 만큼 대화를 나눴다. 김창호는 생각보다 의식이 깨어 있는 사람 같아 보였다. 비록 일본인을 통해 돈을 벌었지만 조선을 생각하는 것은 누구 못지않았다.
“내가 무엇을 도와주면 되겠소?”
그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학교에 아이들이 학습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합네다.”
“얼마나 크면 되겠소?”
“적어도 100명이 들어갈 자리는 있어야 합네다.”
그는 걱정하면서도 원하는 것을 말했다. 김창호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선뜻 대답했다.
“내가 땅과 자재를 들여 건물을 지어 학교에 내놓겠소.”
그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대신 조건이 하나 있소이다.”
“무엇입네까?”
“내게 자식이 둘 있는데 서양 문물을 잘 모르는 편이요. 그것을 좀 가르쳐 주시면 됩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 일은 동경에 있을 때도 많이 했던 터라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런 일이라면 내래 성심껏 가르쳐 보갔습네다.”
“그럼 성사된 것이오. 오신 김에 식사하고 가시기 바랍니다.”
그는 저녁을 얻어먹고 밤늦게야 숙소로 돌아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