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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우라 고리유 Jan 31. 2024

제53화, 장래희망=매일 씻는 나 (feat 류이치)

"제일 중요한 것은 씻김이 아닐까 싶네요. 방청소하는 느낌인데…"



장래희망(將來希望)은 자신이 희망하는 미래의 모습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직업만이 아녜요.


하루 일상 중에 가장 신나는 일은 아마 샤워할 때가 아닌가 싶네요. 그것만큼 정갈해지는 순간이 없을 것 같아서지요.


씻을 때면 무슨 세례를 받는 것 마냥 갑자기 숭고미가 샘솟습니다. 여러분도 그런가요?


저는 씻을 때 정말 많은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더라고요. 오늘 하루를 정리할 때가 보통 많고요. 예를 들자면 이런 겁니다. 오늘 어느 시점에서 내가 힘들었었지? 내가 오늘 무슨 음식들을 많이 먹었지? 밀가루였던가? 오늘 말실수했던 게 무엇이 있었지? 내가 지금 해결 못한 문제들이 뭐가 있지?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희한하게도, 정말 놀랍게도, 무슨 퍼즐이 맞혀지듯이 정리가 됩니다. 테트리스라는 게임 아시죠? 그 빈 공간들이 하나씩 채워지면서 제 채증도 확 떠밀려내려 가는 기분이 듭니다. 그럴 때가 아마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카타르시스(?) 같은 게 아닐까 싶네요.


 제 일과 중 제일 중요한 것은 씻김이 아닐까 싶네요. 방청소하는 느낌인데, 공간이 뇌로 바뀐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일 즐거운 부분도 생길 때가 있는데요. 갑자기 책이나 사설이나 기사에서 읽었던 어느 한 구절이 생각나는 겁니다. 그것도 제가 좋아하는 말러의 노래와 함께요. 지휘자는 당연히 번스타인이고요.


그러면 희한하게 위로를 받아요. 

어제 일어났던 일입니다. 제가 바로 죽은 사람들의 평전이나 자서전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요. 그런 맥락에서 지금은 류이치 사카모토를 알아보는 게 제 취미가 된 셈입니다. 


그의 마지막 책인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에서 제가 좋아하는지도 몰랐던 구절이 생각나더라고요. 사카모토의 너무 유명한 곡인 '미스터로렌스 메리크리스마스' 탓에 방황하던 시기가 있었데요. 그런데 어느 날인가 본인이 좋아하는 뮤지션의 콘서트에 갔는데, 자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뮤지션의 대표곡을 절대 부르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너무 짜증이 났데요. 그러곤 사카모토가 스스로 깨달은 게 있었데요. 


"내가 가진 너무 뻔한 것을 바꾸려고 남은 여생을 쓰고 싶지 않다"라는 거였어요.


생각해 보면 엄청 별거 아닌 것 같잖아요. 그런데 제가 그를 너무 좋아해서 그런지 이 말이 얼마나 크게 다가왔는지 여러분은 상상도 못 하실 거예요.


한정된 시간에 본인의 콤플렉스에 얼마만큼 신경을 쓸 것인가.라는 전제는 흔히들 생각해 보지만 쉽게 잊어버리잖아요. 늦잠이거나 잔업이거나 택시가 온다거나 전화가 온다거나 카톡이 온다거나 배달이 온다거나 하는 이 유로부터요. 그런데 이걸 책에서 발견하게 되니, 참 놀랍더군요. 


라고, 샤워를 하면서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적 없으신가요. 저는 이렇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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