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 7개월 11일, 영영 살아있어요.
우편배달부 플로렌티노 아리사.
플로렌티노는 어느 부잣집으로 전보 심부름을 갔다가 페르미나 다사라는 여자를 보게 된다. 두 사람의 시선이 찌릿찌릿-. 그렇게 간단한 일이 운명을 흔들 줄이야.
플로렌티노는 밤새도록 준비한 연애편지를 그녀에게 전해주지만 답장은 오지 않고 애간장이 타들어간다. 극심한 상사병을 앓고 난 이후 다행히도 답장이 도착했다. 남자가 고백하고 여자가 반응했으니 가속도가 붙는 건 당연지사. 하지만 페르미나의 아버지가 그들의 연애를 가만히 두고 볼리 없다. 장사꾼이었던 그녀의 아버지는 어떻게든 신분상승을 하고 싶은데 한낱 우편배달부와 연애질이라니. 아버지는 딸을 데리고 길고 고된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그동안 애지중지 금지옥엽 귀한 딸로만 대하던 그녀에게 살림살이를 맡기기 시작하고, 한집안의 안살림을 도맡게 된 페르미나도 서서히 현실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사랑은 허상일 뿐이구나.
페르미나가 다시 마을로 돌아왔을 때는 예전의 그 마음이 아닌데, 플로렌티노의 사랑은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녀가 의사를 만나 결혼하고, 좋은 가문의 귀부인이 되어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플로렌티노의 마음은 더욱 굳건해진다. “괜찮아. 난 얼마든지 기다릴 거야. 그녀의 남편이 죽을 때까지만 기다리면 되는 거잖아!”
그녀의 남편이 (언젠가는) 죽기를 기다리며, 플로렌티노는 돈을 열심히 벌며 자신의 입지를 굳혀갔다. 오직 그녀에게 다가갈 그날을 기다리는 것만이 그 남자 인생의 전부였다. 스무 살의 청년이 노인이 되는 과정 속에 음악이 하나 흐른다면, 이 노래가 좋겠다.
[아이유 / 마음]
나를 알아주지 않으셔도 돼요, 찾아오지 않으셔도.
제게 대답하지 않으셔도 돼요, 달래주지 않으셔도.
다만 꺼지지 않는 작은 불빛이.
여기 반짝 살아있어요
세상 모든 게 죽고 새로 태어나
다시 늙어갈 때에도
감히 이 마음만은 주름도 없이
여기 반짝 살아있어요
영영 살아있어요
영영 꺼지지 않는 마음 하나로 오랜 세월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그녀의 남편이 드디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얼마나 기다렸던 굿뉴스인가! 플로렌티노는 아직 슬픔에 빠져있는 그녀를 찾아가 눈치도 없이 고백한다.
“51년 9개월 4일을 기다렸어요. 영원히 당신에게 성실할 것과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맹세해요”
물론 거절당한다. 남자들이란 어쩜 이렇게 타이밍을 못 맞추는지. 쯧쯧. 왜 그렇게 눈치가 없을까.
스토커 같은 남자의 눈치 없는 고백에 치를 떨긴 했지만, 남편을 잃은 뒤에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보던 페르미나는 그동안 살아왔던 인생이, 자신을 위한 삶이라기보다는 남들을 의식하면서 세상이 바라보는 기준에 맞춰서 살아왔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플로렌티노의 제안에 따라 배를 타고 긴 여행을 떠난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한 지 53년 7개월 11일 만에 드디어 사랑을 맺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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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다.
플로렌티노는 그녀를 기다리면서 ‘순결’을 지키는데 그 방법이 참으로 독특하다. 50여 년 동안 오로지 그녀만을 기다리면서 622명의 여자를 만나 사랑을 나눈다. 622명의 여자 이름을 모두 기록하면서도 오직 마음만은 페르미나에게 향해 있었으므로 그것은 순결을 지켰다고 믿는 건 순수한 것인지 비겁한 것인지-.
어찌 됐건 플로렌티노의 첫사랑은 이루어졌다. 남의 일이니까 쉬워 보이는 거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움과 질투를 참으며, 사랑하는 이의 안녕을 기원하며, 그 사람과 다시 만났을 때 나 자신이 초라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북돋으며 살아간 다는 것. 나이가 들어도 주름조차 생기지 않는 반짝이는 마음. 그것이 바로, 우리가 기대하는 사랑이 아닐까.
* 남의 사랑, 한 줄 요약
: 플로렌티노라는 남자는 53년을 기다려서 결국 첫사랑을 이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