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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세시 Nov 20. 2020

오랜만에 등산

201104

오래간만에 등산을 했다.

원래는 수리산을 가기로 했지만 동행의 일정이 늦어져 야트막한 산에 올랐다.


전날 밤, 잘 자리에 누웠는데 친구가 가을이 끝나간다고 아쉬워했다.


올 가을은 산에 한번 못 가고 끝나나 보다.


그러고 보니 나도 올해는 가을을 만끽할 기회가 없었다.

아파트 단지 산책만 해도, 사무실 앞만 나가도 가을을 알 수야 있지만, 일상을 벗어난 공간에서 가을 냄새를 맡아보질 못 한 것이다.

가기로 계획할 때마다 일이 생겨 못 갔던 화담숲을 올 해엔 꼭 가리라 했건만, 이번에도 두 차례나 어그러지고 단풍도 끝났다니 포기하고 있었다.


그럼 내일 반차 낼 테니 어디라도 가자.


아끼고 아껴뒀던 몇 안 남은 연차를 쪼갰다.

가을산, 정말 오랜만이라 야트막해도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 그 자체로 가을 정취가 제대로 났기 때문이다.


친구가 철없는 진달래꽃을 발견했다..


어머, 얘 좀 봐. 철도 모르고 피었네.


한낮에도 한 자릿수 기온을 기록하는 날씨인데, 이 녀석은 왜 이제야 피어서 사람 눈길을 끌까.

'참 철없네~' 해도 이 계절에 고운 분홍 꽃을 보니 눈이 흐뭇하다.


매년 그러하지만, 올해는 봄도 가을도 참 짧다.

코로나19 탓인지 제대로 그 계절을 즐기지 못해서일까?

하지만 그렇다기엔 여름은 길게 느껴졌는데...

예년에는 11월 중하순에 이르러서야 만추 느낌이 가득하더니

산에 올라보니 벌써 만추인 것 같다.


가지마다 잎이 죄 떨어져 바닥을 덮고 있다.

그나마 만추가 아니란 것을 느끼게 해 준 것은 이 바닥을 덮고 있던 갈잎들이다.

발밑에 드는 갈잎들의 소리가 아직은 사락거릴 뿐 바삭바삭하지 않다.

하루에 영하에서 영상까지 오가는 날씨와 바람이 있어야만 바삭하게 익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 아직 만추는 아니야.


이들은 아직 밟힐 준비가 되지 않은 낙엽들이다.

나는 사람들이 지나던 길로 다시 들어섰다.

아껴뒀다가, 이달 하순에 다시 와봐야지.

그때는 기분 좋은 소리가 날 거야.


천천히 구경하며 올랐다 슬슬 내려오기까지 두 시간의 산행을 마쳤다.

오래간만에 폐부 깊숙한 곳까지 시원해지는 날이었다.




진달래가 지금에서야 꽃을 피운 일이 정말 철없는 짓일까?

내 나이 벌써 불혹을 넘겨 '소싯적'은 지나갔는데, 

내 꽃은 언제 필까?


언제든, 피면 철이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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